하루하루가 짜증이 난다는 게 요즘 사람들의 탄식이다. 정치가 국민을 평안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되려 고통과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날선 목소리를 높인다. 자신이 미래 한국정치의 희망을 가져오겠다며 나서는 정치인들은 넘쳐나지만 선뜻 우리 국민을 대표할 지도자라고 할 인물도 부재하다. 대통령마저 국민의 대통령이라기보다는 특정 집단을 대변하는 대통령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냉소는 그 심각함을 넘어선 지 오래다. 지도자에 대한 갈증을 넘어 우리와는 딴 세상 사람이라는 포기는 민주주의의 기본 철학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국민을 대표하는 자가 아니라, 국민을 섬기고 나라를 위해 고민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이익과 정파에 따라 국민위에서 특권을 누리며 국민과의 약속보다 정파에 대한 의리를 먼저 따지는 자로 통용되는 정치인에 대한 이미지는 진정한 '지도자'가 부재한 대한민국의 현실이자 아픔이기도 하다.
지도자의 약속은 품격이자 국민을 향한 신의(信義)다. 신중하고 무거우며 때로는 생명과도 같다. 약속을 남발하는 것도 문제지만 헌신짝 뒤집듯 지키지 않는 것은 더 무서운 일이다. 정치 지도자의 약속은 국가의 발전과 밀접하고 그에 따라 많은 국민들의 사람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정치인을 외면하고 냉소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 때만 되면 머리를 조아리며 표를 구걸하면서 금배지를 달고 나면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처럼 권력의 '사루비아 같은 달콤함'에 취해 약속의 무게보다 힘이 들어간 목과 어깨를 치장할 품위 유지의 무게를 더 중시 여기는 천박함은 우리 정치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반동(反動)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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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을 생명으로 삼았던 도산 안창호 선생 ⓒ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약속'을 생명처럼 여겼던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선생은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왕 생신축하식에 폭탄을 투척한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될 위기에 몰렸으나 한국인소년동맹의 5월 어린이 행사에 내기로 한 기부금 금2원의 전달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소년동맹 위원장 이만영군의 집을 방문했다 결국 체포되고 만다. 충분히 도피할 시간이 있었지만 선생은 한 소년과의 약속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안창호 선생은 바보였을까?
선생은 '약속'이 국가의 신뢰와 사회의 신용을 위한 매우 중요한 행위이자 시스템임을 강조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도 말고, 약속을 지키지 않기 위해 거짓을 행하는 것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주범이라고 이를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라고까지 한 안창호 선생.
3월 10일은 안창호 선생이 순국한 지 78주기다. 목숨을 걸고 한 소년과의 약속을 지키려 했던 그가 추구했고 동경했던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 약속에서 시작하고 약속 안에서 이루어진다. 입만 열면 상대방을 헐뜯기 바쁜 작금의 이 혼란한 정치판에서 안창호 선생의 '약속'의 의미가 새삼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은, 지도자의 약속에 목말라하는 국민들의 눈물과 탄식이 우리 사회에 휘몰아 소용돌이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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