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주의 시스템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법

[서평] 데이비드 그레이버 런던정경대 교수의 <관료제 유토피아>

등록 2016.03.15 00:33수정 2016.03.1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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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근 학교 '김유연(가명)'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다.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입력 문구들 중의 '-하였습니다'를 '-함'으로 바꾸고, 문장 끝에 누락된 마침표('.')를 반드시 써 넣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어느 학교 '이원칙(가명)' 선생님과 두 시간 가까이 실랑이를 벌였다고 한다. 한 학생의 전출 처리 과정에서 생긴 일이었다. 일과 후 선생님들과 함께 한참 동안 갑론을박 했다고 한다.

지난 주 전체 교무회의 시간이었다. 학생부 기록 문구의 '-다' 종결체를 '-음/함' 따위의 명사형 종결체로 해야 하며, 각 문장 끝에는 '반드시' 마침표에 해당하는 온점('.')을 찍어야 한다는 교무부장의 부탁이 있었다. 기간을 표기할 때 '~'이 아니라 '-'를 써야 한다는 당부도 있었다. 김유연 선생님과 이원칙 선생님 사이의 갈등담을 들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오늘 오후 4교시 뒤 쉬는 시간이었다. 전출입 담당 선생님이 내 자리로 찾아왔다. 지난 1일자로 전출한 우리 반 아이의 1학년 학생부 정정 문제 때문이었다. 들어보니 예의 문장 종결체와 구두점이 화근이었다. 정정 상신 한두 건으로는 턱도 없어 보였다.

속으로 폭발했다. 어디에 근거를 둔 '정정'이냐고 물었다.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어떤 '지침'이 있다고 한다. 문장 종결에 관한 최소한의 상식적인 유연함조차 불허하는 관료주의 행정의 폐해라고 말하면 지나칠까. 이건 행정이 아니다. 경직된 관료주의 시스템이 일방적으로 행하는 '폭력'이다.

'주인이 자신의 노예를 채찍질 할 때, 그는 중요한 의사전달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의문의 여지없는 절대적인 복종의 필요성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절대적이고 독단적인 권력의 무시무시한 신화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 한다.'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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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제 유토피아: 정부, 기업, 대학 일상에 만연한 제도와 규제에 관하여>(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김영배 옮김 / 메디치 / 2016.3.1. / 359쪽 / 1,9000원) ⓒ 메디치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데이비드 그레이버 런던정경대 교수는 <관료제 유토피아>에서 관료제와 자유주의, 시장 사이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자유주의가 심화할수록 나타나는 관료화의 역설은 무엇 때문인가. 관료제는 필요악인가. 시장의 출현에 관한 저자의 분석을 중심으로 관료제의 문제를 살펴보자.

시장은 국가 권력과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영역으로 출현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시장은 대개 정부의 활동(특히 군사적인 활동)에서 비롯된 부작용의 결과였다. 군 부대 이동, 도시 약탈, 공물 탈취, 전리품 처리 등이 시장의 목적이었다.


처음 군인들에게 물자를 공급하는 수단으로 만들어진 동전(화폐)이 널리 퍼진 것도 이러한 시장 확대와 맞물려 있다. 그레이버 교수에 의하면 현대적인 중앙은행 제도는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시장은 정부의 반대편에 서 있고, 정부로부터 독립적이라는 생각은 19세기 이후부터 널리 퍼져 사람들에게 익숙해졌다. 이런 생각은 정부의 역할을 줄이도록 고안된 자유방임주의 경제정책들을 정당화하기 위함이었다.' (25쪽)

그레이버 교수는 그러한 정책들이 실제로 효과를 내지 않았다고 보았다. 영국에서는 개인들 사이의 자유로운 거래 세상이라는 자유주의적 꿈을 실현시켜 줄 법원 서기, 관청의 호적 담당자, 감시원, 공증인, 경찰 공무원들이 끊임없이 늘어났다고 한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절대왕정 때보다 1천배나 더 많은 서류작업이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해졌다. 자유주의는 국가 관료제의 약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자유주의의 철칙(the iron law of liberalism)'이라는 사회학적인 일반 법칙을 제안한다. 자유주의의 철칙은 관료주의를 줄이고 시장의 힘을 키우기 위한 의도로 추진된 시장개혁이나 정부의 주도권 행사가 결국 전반적인 규제의 숫자, 전체적인 서류작업의 분량, 정부에 고용된 전체 관료 집단의 숫자를 늘리는 효과를 내는 것을 뜻한다.

그레이버 교수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전면적 관료화(total bureaucratization)'의 시대다. 1970년대가 기점이었다고 한다. 그 시기는 역설적으로 관료제에 관한 논의가 감소하기 시작한 때였다. 이후 관료제는 현대사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그레이버 교수는 "관료주의적 관행, 습관, 감성이 우리를 집어 삼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청서와 결재서류는 규칙과 절차의 얼굴을 취한다. 그레이버 교수는 권력이 그러한 규칙과 절차를 통해 사람들에게 당연한 듯이 복종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전면적 관료화 시스템의 노예가 된 현대인들이 성찰해 보아야 하는 대목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 것'이 의미하는 것-어떤 상황에 대한 노예의 이해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채로 남아 있는 주인의 능력, 주인의 추론 속에 있는 일부 심각한 실질적 결함을 그 노예가 알게 되었을 때조차 말을 할 수 없는 노예의 무력감, 그에 뒤이어 생겨나는 맹목성과 우둔함, 이런 것들 탓에 그 노예가 주인의 혼란스러운 인식 상태를 이해하고 예상하려고 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는 사실-에 관해 계속해서 탐구하지 않는다면, 약하게나마 어떤 면에서는 우리도 채찍질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은 채찍질을 당하는 희생자들의 입을 열게 하려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들의 입을 틀어막는 과정에 가담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155~156)

<관료제 유토피아: 정부, 기업, 대학 일상에 만연한 제도와 규제에 관하여>(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김영배 옮김 / 메디치 / 2016.3.1. / 359쪽 / 1,9000원)
덧붙이는 글 정은균 시민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렸습니다.

관료제 유토피아 - 정부, 기업, 대학, 일상에 만연한 제도와 규제에 관하여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김영배 옮김,
메디치미디어, 2016


#<관료제 유토피아> #데이비드 그레이버 #자본주의 #전면적 관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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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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