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쌀 농가소득의 약 70%가 보조금?

[시골에서 책읽기] 윤석원, <쌀은 주권이다>

등록 2016.03.16 10:34수정 2016.03.1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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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언제나처럼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서 차립니다. 미리 쌀을 씻어서 불려 놓고, 국이랑 밥을 함께 끓이면서 다른 반찬을 마련합니다. 국이 제법 끓었다 싶으면 불을 여리게 맞춘 다음에 뒤꼍으로 가서 쑥을 뜯습니다. 봄에 실컷 누리는 쑥으로 국을 마무리지을 생각입니다. 앞으로 쑥이 더 오르면 밥에도 쑥을 넣어 쑥밥을 짓고, 쑥버무리도 빚으려고 해요.

밥을 거의 다 지을 즈음 아이들을 부릅니다. 아이들은 방이나 마루나 마당이나 고샅이나 뒤꼍에서 놀다가 "밥 먹을 사람?" 하고 부르는 소리에 "야, 밥이래! 밥 먹으러 가자!" 하고 웃으며 소리칩니다. 나는 이 소리를 들을 적마다 괜히 더 즐겁습니다. 밥 한 그릇을 맞이할 적에도 기쁘게 웃으며 노래하는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밥짓는 보람을 물씬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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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콩나물시루

'미국이나 유럽, 캐나다, 호주와 같은 소위 선진국들은 식량파동을 겪지 않고 있다. 이들은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막대한 투자와 보조정책으로 농업이라는 산업을 유지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쌀 농가소득의 약 70%가 보조금이고 EU농가 소득의 약 절반 이상이 각종 명목의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33쪽)

'쌀 농가 소득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고안해야 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 이러한 논의를 먼저 진행하면서 쌀시장 개방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순서이다.' (79쪽)

중앙대학교에서 농업경제학과 교수로 일하다가 정년을 두 해 반 남기고 미리 그만둔 뒤에 강원도 양양에서 올해(2016년)부터 '농민'으로 바뀐 삶을 누리려 한다는 윤석원 님이 쓴 <쌀은 주권이다>(콩나물시루, 2016)를 읽습니다.

중앙대학교에서는 일곱 해 앞서 '농업경제학과(산업경제학과)'를 구조조정해서 경제학부로 통합했다고 합니다. 이때에 윤석원 님은 매우 크게 충격을 받았고, 강단에서 물러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때부터 깊이 헤아렸다고 합니다.

이제 강단에서 물러났으니 '교수' 아닌 '농민'이라는 이름이지요. 앞으로는 '교수님' 아닌 '시골 아재'나 '시골 할배'라는 이름이 익숙한 나날이 될 테고요. 글이나 책이 아닌 온몸으로 흙을 말하는 삶이 될 테며, 목소리나 학문이 아닌 땀방울하고 열매로 시골살이를 말하는 살림이 될 테지요.


현재 쌀 가격 기준으로 쌀 한 가마에 현재의 16만 원에서 3만 2천 원이 떨어져 12만 8천 원이 된다면 수입쌀과 가격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가. 10년 후 쌀 가격이 12만 8천 원이 된다면 그동안 물가는 오를 것이 뻔한데, 그 가격으로 농사나 지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120쪽)

정부와 국회가 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왜 이리 현장농민들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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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를 마친 뒤 논에 자리를 잡은 모습. 여름에는 온 들이 푸른 빛깔로 넘실거립니다. ⓒ 최종규


<쌀은 주권이다>를 읽으면서 그동안 잘 몰랐던 대목을 새삼스레 배웁니다. 무엇보다도 '미국, 유럽, 캐나다, 호주' 같은 나라는 정부가 농업보조금을 무척 많이 댄다고 하는 대목을 처음으로 배웁니다. 미국만 하더라도 농가수입에서 약 70%가 농업보조금이라 하니, 한국 농업하고 대면 한국은 도무지 '경쟁력'이 생길 수 없구나 싶습니다. 한국 농업에 보조금이라 할 만한 돈을 시골 농사꾼한테 주거나 베풀기나 할까요? 이런 생각을 하는 정치인이나 행정관료는 있기나 할까요?

그래도, 한국에서 녹색당은 '기본소득'을 사람들이 누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농업 기본소득'을 조금 더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골에서 땅을 부치는 사람도, 앞으로 시골에서 살며 땅을 부치고 싶은 사람도, 농업 기본소득으로 50만 원이나 70만 원을 누릴 수 있다면 그야말로 한국 농업은 크게 탈바꿈할 만하리라 생각해요.

농업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시골사람 누구나 농약을 덜 쓰는 한결 정갈한 농업으로 바뀔 수 있고, 도시에서 고단한 나날을 보내는 이들도 시골에서 새로운 꿈을 키우는 살림으로 거듭날 만하리라 봅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한테도 농업 기본소득을 보장해 주면, 도시에서만 문화나 예술이나 교육을 펼치려 하는 젊은이도 시골로 하나둘 찾아가서 시골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새로운 꿈을 지피는 몫을 맡을 수 있을 테고요.

'우리 사회는 어찌하여 전 농지의 약 50%, 수도권의 농지는 약 70∼80%가 부재지주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니 정작 농지가 필요한 농민은 농지가 없고, 농지가격은 엄청나게 비싸 농민이 소유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190쪽)

'2005년에 도입한 쌀 정책은 한마디로 실패다. 실패한 정책을 지속한다는 것은 정책당국의 직무유기 아닌가. 얼마나 더 쌀 농업이 무너져야 깨닫겠다는 것인가… 쌀 실질소득이 지난 8년여 동안 25%가량 줄었는데도 기껏 2∼3% 인상한다는 것을 쌀농업 포기정책을 넘어 쌀농업 말살정책이라 할 만하다.'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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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를 마치고 길에 널어 햇볕에 말리는 나락. 햇볕을 먹고 자란 나락을 예부터 햇볕에 말렸고, 우리는 쌀밥뿐 아니라 햇볕을 함께 먹습니다. ⓒ 최종규


밥을 맛나게 먹은 아이들은 새롭게 기운을 내면서 즐겁게 놉니다. "오늘 밥은 무엇이야?" 하고 묻는 아이들한테 "오늘 밥은 맛있는 밥."이라 말하거나 "오늘 밥은 즐거운 밥."이라 말하거나 "오늘 밥은 신나는 밥."이라 말합니다. 밥상맡에서 마지막 밥풀까지 삭삭 훑어먹으면서 "오늘도 고맙게 잘 먹었구나. 이 고마운 기운을 몸에 기쁘게 받아들여서 활짝 웃고 뛰놀자." 하고 이야기합니다.

밥심으로 놀고, 밥심으로 일하지요. 고기를 더 먹든 풀을 넉넉히 누리든 모두 밥입니다. 빵을 먹든 떡을 먹든 우리는 언제나 '밥을 먹는다'고 말해요. 몸을 살리는 밥이요, 마음을 새롭게 일으키는 바탕이 되는 밥입니다.

경제발전이라는 틀에서는 논이 아닌 공장이나 관광단지나 발전소나 고속도로나 골프장이나 아파트가 들어서야 돈이 된다고 하지만, 삶과 살림이라는 눈길로 바라본다면, 논을 둘러싸고 조촐한 마을하고 아름드리 짙푸른 숲이 있을 적에 아름답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어요. 돈이 있어도 쌀이 없으면 밥을 못 먹어요. 돈이 있어도 숲이 없고 냇물이 망가져서 바람이 깨끗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다 아프지요. 돈이 있고 자동차가 있고 고속도로가 있어도, 맑은 바람과 따스한 햇볕과 싱그러운 냇물과 빗물이 있는 터전이 없으면, 삶이 삶답기 어렵습니다.

중앙정부와 지역정부에서 정치와 행정을 맡은 일꾼들이, 그러니까 우리 삶을 아름답게 북돋우는 일을 맡은 '심부름꾼'들이 <쌀은 주권이다>를 함께 읽으면서 한손에는 호미나 쟁기나 괭이를 쥘 수 있기를 빕니다. 손수 흙을 일구어 보지 않는다면 흙과 쌀과 풀과 숲과 나무와 냇물과 바람과 햇볕이 우리 삶을 어떻게 북돋우는가를 제대로 알기 어려울 테니까요.
덧붙이는 글 <쌀은 주권이다>(윤석원 글 / 콩나물시루 펴냄 / 2016.2.22. / 13000원)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쌀은 주권이다

윤석원 지음,
콩나물시루, 2016


#쌀은 주권이다 #윤석원 #쌀정책 #농업정책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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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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