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이, 사실은 효녀가 아닐지도

[서평] 뒤집어 보고 거꾸로 본 <파격의 고전>

등록 2016.03.23 16:43수정 2016.03.2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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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동무들이 놀려대는 게 겁나 그랬을 겁니다. 그냥 '너 좋아해' 하고 잘해 줬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속마음과는 달리 기회만 되면 놀리고 틈만 나면 괴롭혔습니다.

어려서 내가 그 아이에게 한 행동은 분명 잘못 된 거였습니다. 선생님들이 하지 말라는 행동이었고, 다른 사람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틀을 벗어나는 못된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도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쟤는 나만 보면 괴롭히는 나쁜 아이라고.


하지만 내가 그 아이를 유독 놀리고 괴롭혔던 행동을 뒤집어 보면, 사실은 좋아하는 마음을 감추고 있는 또 다른 고백이었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유독 그 아이만 놀리는 걸 눈치 챈 어른들은 그러지 말라고 야단을 치면서도 '너 걔 좋아하지?'하고 물었습니다.

분명 나쁜 짓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 '너 걔 좋아하지?' 하며 묻는 엉뚱한 말은 얼굴을 빨갛게 하는 진실, 좋아하는 마음을 못된 짓으로 드러내고 있는 속내를 일찌감치 눈치 챘다는 파격적 해석이었습니다.

이렇듯 좋아하는 마음을 감추고 못되게 행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겉 다르고 속 다른 또 다른 행동, 속으로는 미워하면서 겉으로는 좋아하는 것처럼 처신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다른 시각 다른 느낌으로 읽는 <파격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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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의 고전>(지은이 이진경 / 펴낸곳 (주)글항아리 / 2016년 3월 7일 / 값 22,000) ⓒ (주)글항아리

<파격의 고전>(지은이 이진경, 펴낸곳 (주)글항아리)은 고전 속에 드리워 있는 진실,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던 의미, 고전 속에 드리워 있는 또 다른 진실을 두루 살피는 내용입니다.  


오래된 책이라고 다 고전은 아닙니다. 저자는 문학이나 예술에서 탁월하다고 간주되는 확고한 책,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누구나 마땅히 읽고 배워야 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내용, 사물이나 세상을 보는 올바른 틀을 습득하게 해 주는 책이 '고전'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 고전 중 하나인 <심청전> 주인공 심청이 앞에는 '효녀'라는 수식어가 아주 당연한 접두어처럼 들어갑니다. '효녀'라는 수식어는 주인공 심청이가 어떤 인물인지, <심청전>이 어떤 성격의 내용인지를 가늠하게 해 주는 가늠자 같은 틀이 됩니다.

하지만 그런 틀, 심청이가 한 행동을 '효'라는 가치로만 해석하던 일방통행식 틀을 벗어나 해석해 보면 그건 효가 아니라 효에 대한 다른 개념을 제안하는 텍스트라고 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심청이, 사실은 효녀가 아닐지도

<심청전>이 묻는 것이 바로 이런 물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바다에 던져질 제물로 몸을 판다면, 그걸 효라고 할 수 있을까? - 025쪽

심청은 효라는 이상을 구현하고자 목숨을 거는 게 아니라, 부친의 어이없는 실수로 벌어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목숨이라도 팔아야 하는 난감한 처지에 몰려서 몸을 파는 것일 뿐이다. - 033쪽

<심청전>은 '효'라는 잘 알려진 '답'을 엽기적 사례로써 설파하고 강권하는 텍스트가 아니라, 효이기를 중단한 효, 집 밖으로 끌려 나간 효를 통해 효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텍스트, 효에 대한 다른 관념을 제안하는 텍스트라고 해야 할 겁니다. - 049쪽

책에서는 그동안 관행처럼 학습되고, 관습처럼 전해지며, 상식이라는 틀에 맞춰 해석되고 있는 고전을 뒤집어 보기도 하고, 거꾸로 보기도 하고, 비틀어 보기도 하며 속마음처럼 고전에 드리워 있는 어떤 이면(진실)을 찾아 설명하고 있습니다.

효의 대명사처럼 알고 있던 <심청전>이 효가 아닌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는 건 어쩜 상식의 틀을 깨트리는 파격적 내용입니다. 아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상식을 벌떡 놀라게 하는 반전이라서 저절로 관심이 가고 흥미로워집니다.

굳이 '내재적 발전론'으로 국한하지 않아도 고전소설에 대한 그간의 연구를 보면, 여러 방향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니셔티브를 갖고 있는 것은 신분 같은 전근대적 인 제도가 와해되는 징표나 왕을 비롯한 봉건체제에 대항해 싸우는 투쟁의 단서를 찾는 것, 혹은 상업과 부에 대한 근대적 경제 관념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446쪽

책에서는 <심청전>뿐 만이 아니라 <흥부전> <홍길동전> <콩쥐밭쥐전> <허생전> <토끼전> <사씨남정기> <구운몽> <변강쇠가> <금오신화>처럼 제목만 들어도 그게 어떤 내용인지를 어림할 수 있는 고전들을 이리 뒤집어 보고 저리 비틀어 해석해 가며 기존의 해석으로는 드러나지 않던 내면, 고전에 드리워 있던 속뜻을 하나둘 펼쳐냅니다.

그동안 너무나 뻔해 지루하고, 너무 상식적이어 별다른 재미를 느낄 수 없던 고전이, 사실은 좋아하는 마음을 괴롭히는 행동으로 나타내야만 하던 '겉 다르고 속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상식이라는 격을 깨고, 도덕과 통념이라는 틀을 넘어 파격으로 읽는 고전은 흥미진진한 재미로 독서하는 재미를 더해 주고 보태 줄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파격의 고전>(지은이 이진경 / 펴낸곳 (주)글항아리 / 2016년 3월 7일 / 값 22,000)

파격의 고전 - 심청은 보았으나 길동은 끝내 보지 못한 것

이진경 지음,
글항아리, 2016


#파격의 고전 #이진경 #(주)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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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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