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내보내기, '비박계 결집' 자충수

[분석] 친이계 재결집 양상... 총선 생환이 세력화 관건

등록 2016.03.24 05:18수정 2016.03.2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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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23일 저녁 대구 동구 용계동 선거사무소에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밝히며 잠시 눈을 감은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지난 21일 '비 박근혜계'로 4·13 총선 공천에 탈락한 전직 새누리당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천 탈락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이 전직 국회의원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힘이 있었다. "총선 뒤에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정치 말고 재미난 일을 찾았느냐'는 물음에 이 인사는 "다음 대선이 있지 않느냐. 지금 핍박받고 있는 분을 도울 것"이라고 했다. 요약하면, 새누리당이 공천을 주지 않아 결국 무소속 출마한 유승민 의원을 다음 대선 새누리당 후보로 만들겠다는 얘기였다.

"무도한 자들"

이번 새누리당 공천을 주도한 세력에 이 같은 반응을 보인 이는 이명박 정부 당시 정부 고위직을 지낸 친이계 인사로, 이번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지난 15일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유 의원의 낙천을 시사한 뒤 장장 8일 동안 공천 여부를 결론내지 않고 유 의원의 탈당을 요구한 데에 격분해 있었다.

그는 "내가 유승민과 친하진 않지만 저런 식으로 해선 정치에 도의가 없어진다"며 "이번 총선은 관망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나서서 도와야겠다"고 했다. 비박계가 한 사람이라도 더 당선되도록 힘을 모으겠다는 얘기였다. 친박계가 유 의원의 탈당을 압박한 8일은 비박계의 비분강개를 끌어내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갈라섰던 친이계의 결집... 김무성의 역공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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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이 22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천관련결정을 앞두고 공관위와 지도부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이희훈


공개 비판은 이미 시작됐다. 정두언 의원은 "이번 공천을 한 사람들은 책임을 지는 건 물론이고 동시에 역사에 비루한 간신들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고, 정태근 전 의원은 '국민을 무시하는 정치' '자해 정치'라고 이번 공천을 비판했다.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2008년 2012년 부당한 공천 때에 침묵했다"고 반성하면서 "다시 침묵한다면 4년 후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재오 의원은 자신이 포함된 '비박계 공천 학살'에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았지만, 유 의원의 탈당 직후 탈당계를 제출했다. 무소속 출마해 승리한 뒤 새누리당으로 돌아간다는 구상이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18대 총선 직후 '형님 권력'을 비판한 정두언 의원이 권력 핵심에서 밀려나는 등 이런 저런 일을 계기로 각자의 길로 흩어졌던 친이계들이 이번 '비박계 공천 학살'에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본래 자기 계파가 아닌 유승민 의원의 공천 배제에 대해 이같이 일치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친이계뿐 아니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수백번 국민 여러분에게 공천권 돌려드리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사과 말씀드린다"고 했다. 당의 대표라면 공천 과정의 이런 저런 잡음에도 '우리 당이 공천한 이들은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지지를 호소 해도 모자랄 판인데 '우리 당 공천이 잘못됐다'며 사죄한 것이다.  

이 사죄는 사실 사죄가 아니라 '책임 소재 분명히 하기'다. 친박계의 전횡으로 100% 상향식 공천 약속도 못 지켰고,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비박계에 대한 공천학살이 벌어졌다는 얘기다. 여기서 더 나아가 총선 패배시 역공을 펴겠다는 예고이기도 하다.

일단 당선이 비박계 세력화의 관건...복당 막을 명분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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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월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총선 뒤 '비박계 세력화'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미 경선을 통과해 본선에 오른 비박계 후보들이 새누리당 우세 지역인 서울 강남권, 부산, 경남 등에 상당수 포진해 있어 당선자 수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세력화의 핵심은 탈당 및 무소속 출마자들이 얼마나 살아남느냐다. 유승민 의원은 물론 탈당·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조해진, 권은희, 류성걸, 이재오, 주호영, 강길부, 안상수, 임태희 등 전·현직 의원들이 얼마나 살아남느냐가 '비박계 학살 공천'에 대한 민심의 척도가 되고, 이는 곧 새누리당 복당의 명분이 될 수 있다.

친박계는 탈당 무소속 출마자들의 복당을 저지하고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비박계의 세력화를 막아야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을 줄이고 향후 대선 후보 경쟁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친박계엔 탈당 무소속 당선자들의 복당을 막을 명분이 없다. 지난 2008년 총선 때 '친박계 공천학살'로 탈당했던 친박연대 의원들을 복당시킨 경험이 있고, 지난 2013년 10월 재보선 때엔 '부정부패로 최종 형 확정시 공천을 불허한다'는 당규를 외면하면서까지 친박 핵심 서청원 최고위원을 공천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유승민 #무소속 #비박계 #세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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