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세 대딩의 카톡 하나, 스무살 동기들은 '난리'

간호학과 미션을 먼저 해결한 아내, 동기들과 공유했다

등록 2016.03.28 15:29수정 2016.03.2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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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에서 내 아내(49)의 세 번째 대학 입학식 이야기를 썼다(관련 기사 : 49세 아내의 세 번째 대학 입학식에 다녀왔다). 이런 아내에게 지난 25일은 동기생들로부터 '완전 포텐(잠재력) 터진 날'이었다.


빡센 공부 그리고 어린 동기들 앞에서 작아지는 아내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간호학과 공부가 얼마나 빡센지. 내가 옆에서 봐도 엄청 빡세다. 오죽하면 "간호학과에서 그 정도로 공부할 거면 차라리 의과대학을 가는 게 낫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떠돌까.

이런 상태에 놓인 아내는 요즘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50이 다 된 나이에 도전하다 보니, 자꾸만 '나이탓'을 한다. '내가 괜히 이 나이에 여기 왔나, 나이 때문에 못 따라 가겠다'라면서 좌절하는 듯하다가, 학교 과제 하나를 잘해내면 '이 정도면 할 만하다'라고 마음을 추스르곤한다.

아내가 무엇보다 힘들어 하는 건 동기생들과의 관계다. 우리의 딸이 올해 23세다. 말하자면, 16학번 동기생(올해 스무살)들은 딸보다 어리다. '딸보다 어려서 어른입네' 하며 어려운 게 아니라, 아내의 입장에서 조심스럽다는 이야기다.

'혹시나 동기생들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까, 나이 들었다고 싫어하지는 않을까, 과제를 위해 조를 짜면, 팀워크에 폐가 되지는 않을까, 말은 못하고 눈치 주면서 쉬쉬하지는 않을까….' 이런 걱정들이 앞선단다. 물론 이러한 마음도 나이탓이라면 나이탓일 게다.


'지옥주간'은 흘러가고, 디데이는 다가오고...

이런 아내에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과 같은 일이 하나 생겼다. 아내로선 동기생들에게 '포텐'이 터진 사건이 찾아 왔다.

이 사건은 그 어렵고 힘들다는 <해부생리학> 과목에서 시작됐다. 지난 20일부터 시작된 한 주간은 아내와 동기생들에겐 '지옥의 주간'이었다. 그것은 담당교수가 내준 과제 때문이었다. 과제의 내용은 프린터로 내준 과제물(인체 해부도)에다가 영문 의학명과 한글명, 그리고 색칠까지 하라는 거다.

20페이지에 가까운 인체해부도에다가, 각 의학용어를 영문으로 찾아 일일이 적고, 그것을 한글로 번역하고, 그것도 모자라 해당부위별로 각각 다른 색깔을 칠하는 것이라니. 과제가 그것만 있어도 힘든데, 날마다 다른 과목 과제는 쌓인다. '갈수록 태산'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게다.

해부학 참고서적을 몇 개나 놓고 대조해가며 겨우 영문명을 찾아도, 책마다 동일하지도 않고, 정확한 부위 지적이 출판사 그림마다 달랐다. 그뿐인가. 번역한 한글명도 제각기고, 어떤 것은 아예 나오지도 않고, 학생들끼리 수소문해도 답도 안 나오고…. '미치고 팔딱 뛰기 일보직전'이다.

과제를 제출하는 날은 3월 28일.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속은 타들어가고, 입술은 바짝바짝 마른다. 그렇게 두원공대 간호학과 16학번 동기생들은 '국가계엄'에 준하는 '비상사태'로 한 주간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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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정보 이것이 그 위대한 고급정보다. 해당 과제의 인체해부도의 번호에 따라 의학용어 영문명과 한글명이 차례대로 적힌 정보다.이런 사진 20여장을 단톡으로 공유했다. 이것들만 있으면 순서대로 적기만 하면 된다. 신의 한수였다. 하하하하 ⓒ 송상호


아내의 발 빠른 대응과 해결의 실마리

그렇게 하다가 동기생 중 누군가가 담당 교수의 과제물이 그대로 담긴 책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내는 재빨리 인터넷 서점에 해당 책을 거금을 주고 주문해놨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었다. 택배가 빨리 와야 해당 과제를 마친다. 월요일엔 다른 과목 시험도 있다.

"어! 여보 책 왔네!"
"그러네. 그래도 빨리 왔네!"

학교에서 함께 하교한 우리의 발 밑에 놓인 택배를 보고 나눈 대화다. 난 요즘 아내를 차로 통학시키느라 바쁘다. 낮엔 공부하고 밤엔 병원에서 야간근무를 하는 아내를 조금이라도 쉬게 하려는 나의 배려다.

하여튼 아내는 무슨 이산가족 상봉하듯 그 책을 마주했다. 책을 열었다. 아내는 목마른 유목민이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덩달아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이때, 흐뭇한 얼굴로 보던 아내가 갑자기 미소가 싹 사라지고는 한마디 한다.

"영문명 명칭은 나와 있는 대로 쓰면 되겠는데, 한글로 번역한 게 안 나오니 일일이 검색해서 또 어떻게 찾나? 힝…."

재빨리 그 책을 입수한 또다른 동기생 하나도 마찬가기 난관에 봉착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난 터였다. 누군가 먼저 책을 찾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것을 번역하는 일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미심쩍은 생각... "드디어 심봤다"

순간 드는 나의 미심쩍은 생각 하나. 아내로부터 책을 빼앗아와 뭔가를 찾았다.

"이상하다. 왜 없지?"
"뭐가?"

아내의 물음을 뒤로 한 채, 잠시 책에서 뭔가를 찾던 내게 "심봤다"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한글 번역명'이 맨 뒷장에 주르륵 나와 있는 게 아닌가. 옛날 중·고교 시절 참고서의 답안지가 뒤에 딸려 있듯 순서대로 예쁘게 붙어 있었다(여기서 잠깐. 먼저 책을 입수한 다른 동기생 한 명은 뒷장에 '번역 한글명'이 순서대로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글 찾았다. 찾았어"
"어디, 어디?"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실 때도 이렇게 기뻤을까 싶다. 우린 언제 심각했느냐는 듯 100년 된 산삼을 손에 쥔 심마니처럼 해당 부분을 넘기며 보고 또 봤다. 이때, 아내와 내게 스친 이심전심 하나.

"우리 이거 보내자."

어디로 보낼까. 그랬다. 해당 부분을 카메라로 찍은 뒤 아내의 간호학과 '단톡'(단체 카카오톡)에 공유하기로 했다. 그때가 금요일 저녁,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사진을 보냈더니... 휴대전화에 불이 났다

나는 해당 페이지를 찾아 책을 붙들고, 아내는 해당 부분을 하나하나 휴대전화로 찍었다. 찍고 나면 페이지를 찾아 넘기고, 또 찍고…. 흡사 첩보 영화의 스파이처럼 몰래 적진에 잠입해 비밀서류를 찍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부리나케 찍은 사진을 '단톡'으로 전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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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반응 보시다시피 간호학과 단톡에 불이 났다. 아내의 어린 동기생들이 아내에게 찬사와 감사를 보내고 있다. 그 중 일부를 스크린 샷해서 올리고 있다. 아내의 이 '포텐'이 아내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며, 앞으로도 서로 나누는 것의 본이 되기를 우리는 기도했다. 늦깎이의 살아남는 예쁜 한수다. ⓒ 송상호


잠시 후 '단톡'에 불이 났다. 물론 그 많은 사진을 보내느라 처음에 불이 났고, 그 사진에 대한 동기생들의 반응에 불이 났다. 그것은 '지옥 주간의 종말'과, 앞으로 계속 나올 '동일한 과제에 대한 걱정'을, 한방에 날려버린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감사합니당, 정말 짱이에요" "아~ 감동입니다." "대단하세요…."

아내는 불이 난 '단톡'을 보며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어떤 반응이 올까 조마하던 아내로선 당연하다.

아내는 "여보, 고마워"라고 했다가, "내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라고 했다가, "당신 정말 똑똑해"라고 했다가, "아, 나도 아이들에게 기여를 하다니"라는 등…. 그 후로도 아내는 한참을 '기쁨의 중얼거림'을 해댔다. 평소 침착한 아내와 사뭇 다른, 귀여운 모습이었다.

4년 내내 서로를 보살피는 공유 문화가 있기를

사실 우리는 정말 고마웠다. 이 고급정보를 다른 누구보다 먼저 발견한 것도, 그것을 동기생들과 나누려는 마음을 먹은 것도, 그 공유를 진심으로 감사해주는 아내의 동기들도.

무엇보다 상대평가의 압박에 못이긴 학생들은(고교에서 공부 꽤나 하는 우등생들이 모인다는 간호학과 학생들), 어쩌면 정보를 공유하는 것보다 독점하는 것에 익숙할 수도 있을 법하다. 그런데 아내가 먼저 공유하는 모범을 보여서 동기생으로부터 점수를 얻은 게 정말 기쁘다. 

아무튼 우리는 "'세월호 세대'인 지금의 스무살 청년들에게 뭔가 나눌 수 있어 고맙다"라면서 자축했다. 그리고 4년 내내 동기생들 간에 서로를 보살피는 공유 문화가 있기를 기도했다. 아무튼 앞으로 4년이 편안할 예정이다. 하하하하.
#대학 #늦깎이 #도전 #포텐 #더아모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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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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