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여고에서 일어난 '꿈 같은 일'

생각하고 소통하는 힘 키워주는 청소년 독서동아리

등록 2016.03.31 23:11수정 2016.03.3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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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여고 독서동아리 발표회 홍천여고 독서동아리 학생들이 모여 함께 읽었던 책 내용과 생각을 나누면서 어떤 유익이 있었는지 우리친구들의 '끼'를 한껏 담아 발표하는 자리였다. ⓒ 고영준


입시 준비로 바쁜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책을 읽고 자기 삶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꿈같은 일에 홍천여자고등학교(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서현숙, 허보영 두 선생님이 팔 걷고 나섰다.

두 사람은 교직생활 초기부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꾸준히 학교 안팎에서 독서모임에 참여해왔다. 특히 허 선생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서석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도서관을 맡아, 독서동아리 활동을 펼치도 했다. 마음과 뜻이 맞았던 두 사람은 홍천여고에서 2015년 의기투합했다.

홍천여자고등학교 허보영, 서현숙선생님(왼쪽부터) 홍천여자고등학교 서현숙, 허보영 두 선생님이 학생들의 자발적 책읽기를 꿈꾸며, 두 팔 걷고 나섰다. ⓒ 고영준


"2015년 1학년 국어를 함께 담당하면서 독서동아리를 꾸려 '청소년 독서활동'을 활성화시켜보기로 했어요. 혼자 읽고 자기 만족하는 취미로서의 책읽기가 아니라, 함께 읽고 자기 생각과 고민을 나누며 더 나아가 삶을 변화시키는 책읽기에 목표를 두었지요.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질문하는 능력을 키우고, 스스로 삶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주체적 인간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책읽기를 권하기 시작했어요." - 서현숙

"'기-승-전-독서의 중요성'이라 할 정도로, 학기가 시작된 3월 내내 독서동아리 홍보에 열을 올렸어요. 요즘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데, 교사 말에 순순히 설득당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있겠어요. 그래서 EBS 다큐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를 함께 보면서, 정답만 강요하는 한국교육에서 점점 질문을 잃어 버린 우리 학생들의 모습, 그리고 세계 여러 대학에서 책읽기와 생각하고 질문하는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주었지요. 당면한 문제와 관련해서 서로 협력해서 토론해서 문제를 해결해가는 시대라는 것도 강조했어요." - 허보영

점심밥 먹기 바쁘게 달려가는 곳

홍천여고 독서동아리 발표회 홍천여고 독서동아리는 41개, 총 180여명이 활동해 왔다. ⓒ 고영준


다양한 노력 속에 학생들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1학기 초에 무려 24개 동아리 모둠(약 90여 명)이 결성된 것이다. 홍천여고 점심시간은 1시간 10분으로 다소 긴 편인데, 이때를 이용해 도서관에 모여 책을 소재로 자기 생각과 속에 있는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나눈다. 도서관에 90여 명 되는 학생들이 모여 매일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벌이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매일 점심시간, 7개의 도서관 탁자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채워 앉은 아이들이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참으로 가슴 벅찬 경험이에요. 저도 동아리 모둠마다 맞춤식으로 지도하려다 보니, 점심시간에는 도서관에 늘 있어요. 도시락 싸고 다니면서 독서 지도활동을 벌였지요." - 서현숙


어려움도 있었다. 인문계 고등학교라 8시 20분 학교 와서 4시 10분까지 점심시간 빼곤 수업으로 가득하다. 다시 방과후수업과 야간자율학습으로 빼곡한 일상에서 독서는 뒷순위로 밀리기 일쑤다. 특히 중간・기말고사 기간에는 개점 휴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독서모임을 '자율적'이고도 '지속적'으로 가져가기 위해, 두 선생님은 소소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무더운 여름 시험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 힘내렴! 시험 끝나면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오렴! 도서관은 늘 너희를 기다리고 있단다.' 이런 의미를 담아 도서관 냉장고에 간식을 준비해두었지요." - 허보영

친구들과 생각나누기, 너무 좋았다

우리에게 독서동아리란 홍천여고 독서동아리 학생들이 동아리 활동의 의미를 설명해 놓았다. ⓒ 고영준


학생들이 달라졌다. 애정을 가지고 생명을 살필 줄 아는 교사에겐 큰 감격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아마 교사가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이것이 아닐까?

"아이들이 말하고 표현하고, 생각하는 역량이 1년을 보내면서 확 달라진 것을 볼 때, 큰 보람을 느껴요. 아이들이 더 성장한 것 같아 감사했어요."- 서현숙

"교실에서 하루 종일 말은 할까 싶었던 아이가 친구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고,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책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음 모임까지 읽어올 부분을 결정하고, 역할을 나누는 과정을 보며 정말 기특하고, 이런 것이 더불어 성장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돼요. 교사의 가르침보다 열심히 하는 친구들 모습을 통해 더 큰 배움이 일어났던 것 같아요." - 허보영

학생들도 만족도가 높았다. 독서동아리 활동 소감을 살펴보면, 책 읽고 생각을 나눌 수 있어 좋았던 것은 기본이고, 다른 사람의 생각도 다양하다는 것,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끝까지 듣고 존중해주고 난 후 내 의견을 차근차근 말해야 서로 기분이 좋고 대화를 잘 이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등학교 1학년 낯선 환경 속에 친구들과 서먹서먹했는데, 동아리 활동을 통해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관계도 많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홍천여고 독서동아리 발표회 함께 읽기를 넘어선 독서토론, 학생들이 서로서로 연결되는 신비한 경험을 맛보았다. ⓒ 고영준


모둠별로 개성 뽐내며 발표회도

학기 말에는 각 모둠에서 자원을 받아 10개 모둠이 발표하기로 했다. 다양한 주제로 자신들 색깔에 맞는 활동을 한 동아리들이 각자의 개성을 뽐낸 발표회는, 발표하는 학생들에겐 뿌듯함을, 듣는 학생들에게는 다음 학기엔 어떻게 해갈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는 시간이 되었다. 동아리 발표회 덕분이었을까? 2학기에는 180여 명이 41개 모둠의 독서동아리를 결성했다. 참고로 홍천여고 1학년 학생 수는 약 260명이다.

이들은 어떤 책을 함께 읽었을까? <아이, 로봇(I, robot)>을 읽고 기술과 윤리에 대한 고민을 했고, <삐딱해도 괜찮아>라는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 보고 들은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스스로 해석할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여덟, 너의 존재감>을 읽으며, 같은 상황을 보는 다른 시선에 대해 이해했다. 또 <우아한 거짓말>, <전태일 평전>, <사막의 꽃>,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굿바이 동물원>, <더불어 교육혁명> 등을 읽고 토론하며, 나와 너, 우리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인식을 넓혀갔다.

홍천여고 독서동아리 발표회 홍천여고 독서동아리 학생들이 모여 학교 동아리 활동의 장점을 이야기 하고 있다. ⓒ 고영준


덩달아 흥이 난 사람이 있다. 바로 홍천읍 서점 사장님이다. 참고서와 문제집만 살 줄 알았던 학생들이 인문사회교양서적을 사가다니, 무슨 일인가 싶었을 것 같다. 학생들이 얼마나 기특했을까? 그래서 동아리 발표회 때 도서상품권으로 후원까지 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서석에 세워질 도서관 역시 우리 아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갈 수 있는 도서관, 책 읽고 시를 읽는 농부들이 있는 도서관이 되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책읽기가 청소년들 삶 속에 스며들어 문화가 되는 것을 꿈꾼 두 선생님을 만나면서, 성적이나 계량화된 수치로 보이진 않지만, 학생들 영혼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올해도 이어질 홍천여고의 독서동아리 활동이 꾸준히 학교 문화로 정착되길 소망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아름다운마을신문(http://admaeul.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홍천여고 #독서동아리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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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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