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짝퉁' 백록담 사진 SNS에 올린 이유

홀로서기 1년만에 처음으로 주어진 3박 4일간의 휴가

등록 2016.03.31 14:32수정 2016.03.3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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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완전한 '홀로서기'를 시작한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은 '뭐 먹고 살거냐'고 걱정의 쓴소리를 해댔다. 하지만 그로부터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나는 아직도 굶어죽지 않고 살아있다.

지난해 3월 8일부로 직장을 나와 '자유시간'을 만끽하며 서른넷이라는 늦은 나이에 처음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요즘 학생들은 수학여행으로도 잘 가는 곳이 제주도인데 서른넷이나 먹도록 제주도 한번 가보지 못한 채 오롯이 일만 하며 살아왔다. 그런 내가 처음 방문한 3월의 제주는 여유롭고 한산하고 행복했다.


1년이 지난 2016년 3월 16일. 나는 다시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지난 1년간 어디를 가든 항상 가지고 다니던 노트북도 챙기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내 일을 시작하면서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과 노트북만 있으면 일을 할 수 있다며, 자유를 얻었다고 좋아했지만 반대로 나는 어딜 가든 일을 할 준비를 하고 다녀야 했다. 이번 여행은 나 스스로의 족쇄를 풀고 1년 동안 '굶어죽지 않고' 잘 살아온 나에게 주는 첫 번째 휴가였다.

지난해 제주 여행에서는 제주의 해안도로를 따라 한 바퀴를 돌면서 여기 저기 구경을 다녔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주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한라산'을 올라가 보겠노라 결심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한라산 등반 시간과 코스를 공부하고 한라산을 오르기 위한 일정을 짰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날씨의 제주는 이번에도 나를 한라산에 오를 수 없게 했다.

제주에서의 3박 4일은 첫날 저녁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들어가 마지막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일정이다. 따지고 보면 제주에서 온전히 보내는 시간은 이틀이 전부다. 출발 당일 스마트폰으로 제주 날씨를 검색해봤는데 가운데 이틀이 몽땅 비가 내린다는 예보였다. 한라산 등반을 계획하고 있던 나는 그 날씨를 보면서 난감해졌다.

둘째날 아침, 일기예보와 다르게 날씨가 아주 좋았다. 첫날 숙소가 제주시 함덕 해안도로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였는데 바로 앞에 펼쳐진 함덕 앞바다를 보니 내가 제주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숙소에서 만난 장기 여행자분이 추천해준 전복죽을 아침으로 먹으며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에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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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최근 제주에서 핫하다는 동네인 월정리에서 브런치로 수제버거와 제주당근쥬스를 먹었다 ⓒ 강상오


평소엔 아침을 먹지 않는데 전복죽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고 또 바로 브런치를 먹겠다며 제주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월정리 해변으로 갔다. 제주가 고향인 우리 매형은 제주에 살 때 '월정리는 죽어도 개발되지 않을 땅'이라고 생각했었다는데 지금 월정리는 평당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도착한 월정리 해변은 3월, 게다가 평일의 제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월정리 해변의 예쁜 바다를 바라보며 카페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고 그 옆으로는 계속해서 새로운 카페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잠시 해안가 풍경을 감상하다 '브런치'를 먹기 위해 한 카페로 들어갔다.

평소에 아침도 안 챙겨 먹는 내가 아침에 전복죽 다 비우고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또 브런치를 먹으러 왔다. '브런치=여유'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꼭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제주에서의 여유로움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 찾은 곳이다.

탁 트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2층 테라스에 앉아 사장님이 먹을 수 있겠냐며 주문할 때 계속 걱정하시던 제주당근쥬스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그리고 내 앞에는 엄청난 크기의 수제버거와 감자튀김이 놓여져 있었다. '이거 먹으면 3일은 굶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주는 나 자신의 모든것을 내려놓게 만들었고 이내 그 버거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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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소깍 물속에 훤히 다 보이는 아름다운 쇠소깍 ⓒ 강상오


브런치를 먹고 한참을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차를 몰고 간 곳은 '성산일출봉'이었다. 여기는 지난번 제주여행의 마지막 코스였는데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려서 올라가보지는 못했던 곳이었다. 그 아쉬움을 1년만에 말끔히 풀어냈다. 최근 운동부족으로 오르막길에 접어들자마자 숨이 차올랐지만 금세 정상에서 시원한 봄바람을 즐길 수 있었다.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마을 곳곳에는 노란 유채꽃이 피어있었다. 아직 일러서 해가 잘 드는 곳에서만 노랗게 만개한 유채꽃은 다시금 '여기가 제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난해보다 일주일 정도 일찍 제주에 왔더니 아직 유채꽃 구경을 실컷 하기에는 일렀지만 군데 군데 노란빛의 유채꽃은 두말할 것 없이 아름다웠다.

성산일출봉을 내려와 SNS를 통해 알게된 제주의 또 다른 명소인 쇠소깍으로 갔다. 쇠소깍은 '투명 카약'으로 유명한 곳이다. 해가 비치면 물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잔잔한 계곡에서 바닥이 투명한 카약을 타고 노는 곳이다. 나는 투명 카약 대신 '태우'라고 하는 전통 뗏목을 탔는데 딱 내가 탈 시점에 날씨가 흐려져서 물속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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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집 주문후 2시간을 기다려야 맛 볼수 있는 김밥집의 벽에는 수많은 연예인들의 싸인이 붙어 있었다 ⓒ 강상오


아침에 전복죽과 수제버거를 배터지게 먹었더니 하루종일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생각하다 제주도에서 아주 유명하다는 김밥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 김밥집은 주문을 하면 2시간이 걸리는 특이한 김밥집이다.

전화로 주문을 하면 김밥이 나오는 시간을 알려준다. 그 시간에 맞춰 김밥집에 도착하면 주문한 김밥을 찾을 수 있다. 전화 주문을 하고 2시간 후에 김밥집을 찾아갔는데 앉아서 먹을 곳도 없이 테이크 아웃만 하는 아주 조그만 김밥집이었다.

대체 김밥이 맛있어봐야 얼마나 맛있길래 제주도까지 와서 2시간이나 기다려가며 김밥을 먹는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게 안에 들어서니 벽면 한가득 다녀간 연예인들의 사인과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뭔가 싶었다. 전화로 주문했다고 말하고 잠시 김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여러 사람들이 김밥을 사러 왔다가 2시간 걸린다는 말에 돌아갔다.

어렵사리 산 김밥을 가지고 숙소로 갔다. 기대하며 먹어본 김밥의 맛은 보통의 김밥들 보다 좀 더 고소한 맛이 강했다. 뭐가 들었나 가만히 살펴보니 유부튀김이 들어있었다. 제주에서 가장 맛있다는 김밥집의 김밥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은 드디어 한라산을 오르기로 마음 먹은 날이기 때문에 체력을 비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쉬움에 '짝퉁' 백록담 사진을 SNS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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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설록 드넓은 오설록의 녹차밭에 자욱한 안개가 끼었다 ⓒ 강상오


오전 7시에는 한라산 입구에 도착해야 했기에 6시가 안되서 일어났다. 창문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렸다. 야속하게도 한라산은 가지 못할 것 같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도 여유롭게 보내자는 생각에 좀 더 자고 10시가 넘어서야 숙소를 나왔다.

비가 많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안개가 아주 많이 낀 날이었다. 차를 몰고 다니는데 가시거리가 20미터도 채 안 되어 비상등을 켜고 달렸다. 이런 날은 아쉽게도 차창 밖 경치를 구경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은 옆길로 새지 않고 아침에 숙소 사장님께 추천을 받은 장소만 꼭 집어서 다녀야 했다.

한라산 일정이 취소되면서 오늘은 제주 서부지역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가는길에 있는 오설록에 들러 녹차밭 구경을 했는데 내륙에 있는 녹차밭에도 한번 가보지 않아서 그런지 드넓은 녹차밭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평소 녹차를 잘 마시지 않는데 여기서 마셔본 녹차는 하나도 떫지 않고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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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 환상숲 곶자왈 환상숲에 사는 고양이. 사람의 손길이 익숙한지 가까이 다가가서 사진을 찍고 만져도 도망가지 않았다 ⓒ 강상오


오설록을 나와 곶자왈 환상숲으로 갔다. 이름이 신기한 곶자왈. 곶자왈은 화산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지대로 숲과 덤불 등 다양한 식생을 이루는 곳을 말한다. 곶자왈도립공원이 있는데 사장님이 추천해준 곳은 도립공원이 아닌 환상숲이라고 하는 곳이었다.

곶자왈 환상숲은 숲해설을 들으며 650m 가량의 산림욕을 할 수 있는 공원이다. 숲 해설을 들으면 평소에 몰랐던 숲의 신비한 현상을 알 수 있게 된다. 나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세월이 흐르면서 숲이 어떻게 변하는지, 숲을 보며 옛 조상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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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인척 SNS에 올린사진 제주여행중 한라산을 못간 아쉬움에 조그만 돌에 고인 물 사진을 찍어 백록담처럼 SNS에 올렸다 ⓒ 강상오


곶자왈 환상숲을 나와 다음으로 간 곳은 협재해수욕장과 한림공원이었다. 한라산을 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는 가운데 한림공원을 구경하는 도중 조그만 현무암 사이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가까이에서 크게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한라산 백록담인척 SNS에 올렸다. '장난인 걸 다 알겠지'라는 생각으로 올린 사진이었는데 사람들은 아무도 진짜 백록담이냐고 묻지 않은채 연신 '좋아요'만 눌러댔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 되었다.

이번 제주 일정의 마지막 코스는 협재 해수욕장이었다. 지난해 제주여행에서 아름다운 바다풍경으로 첫 감동을 선물해준 곳이다. 그 협재 바다를 1년만에 다시 찾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제주를 다시 찾은 지난 1년간 나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멋지게 독립했다. 그리고 진정으로 하고 싶을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제주를 여행한 3박 4일 동안 영업을 하지 못해 일부 매출 기회가 날아갔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소중한 긍정의 힘을 채우고 돌아왔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제주에서 얻은 이 긍정의 힘으로 또 다시 1년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내년 3월, 다시 한 번 한산한 제주를 찾아 올 것이다. 물론 그때는 지금보다 좀 더 행복하고 성공한 모습으로 말이다.
#제주도 #여행 #쇠소깍 #맛집 #백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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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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