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학대 받은 사체'를 먹고 있다

'공장식 축산 반대' 거리 캠페인 1년

등록 2016.04.12 11:38수정 2016.04.1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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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많이 먹으란다."
"고기 먹지 말라는 소리네. 그래도 어떻게 안 먹어?"
"어, 돼지가 움직인다!"
"맞다 맞아. 좀 줄이기는 해야지."

거리 캠페인 1년. 주말 휴일, 집에서 가까운 부산 번화가에서, 혼자 또는 지인들과 '공장식 축산'을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하며 만난 행인들 반응이다.

여전히 '공장식 축산'을 모르거나, 알아도 모른 척 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장식 축산'은 이름 그대로 우리가 먹는 동물들을 공장에서 대량으로 '물건'처럼 사육하고 죽이는 시스템이다. 전 세계 해당 농가 또는 업체 99% 이상이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니까 애써 '동물복지농장'이나 '가정식 농가'의 고기를 찾아 먹지 않고(이 또한 도축 과정은 대부분 공장식에 의존한다) 일상에서 쉬이 사먹는 모든 고기는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반생명적인 대우'를 받은 동물들의 사체이다.  

내가 돼지탈을 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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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탈을 쓰고 보는 세상 ⓒ 이명주


나도 내 인생 2/3 이상 육고기를 즐겼다. 아무 생각 없이. 특히 개인적으로 술을 좋아하고 수년간 다닌 회사도 회식이 잦았던지라 족발에 소주, 삼겹살과 소맥, 치킨에 맥주 등의 메뉴를 질리도록 접했다. 그때는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지만 사실 '선택권'이 없었다.     

하지만 7년 전 한 마리 길고양이를 입양하면서 길 위의 다른 동물들에도 관심이 미쳤고, 점차 우리가 먹는 동물, 구경하는 동물(동물원)에게까지 마음이 열렸다. 그리고 '공장식 축산'이란 불편함을 넘어 무시무시한 실체와 마주했다.     


그 충격으로 절로 몇 달간은 육식을 못했다. 하지만 다시금 '익숙한 맛'이 그리워져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습관의 무서움'을 절감했다. 그러나 공부를 거듭해 무뎌진 마음을 깨우려 노력했고, 대체 가능한 음식들을 찾아 먹기 시작했으며, 동물보호활동에도 동참했다.  

그러던 지난해 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상에서 운동을 하자' 결심이 섰다. 그래서 돼지 의상을 사고 현실감 있는 돼지 탈은 모 동물보호단체에서 빌렸다. 어렵고 불편한 주제이니 만큼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싶었고, 무엇보다 스스로 빨리 지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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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식 축산 폐지를 위한 피켓 시위 ⓒ 이명주


"어, 돼지가 움직이네?"

행인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다채로웠다. 유동 인구가 많은 지하철역 앞에 피켓을 들고 서 있으면 사람임을 모를 리 없음에도 깜짝 놀라 한참을 바라보거나, 신기한 듯 와서 만져보기도, 때로 정말 '돼지 취급'을 하기도 했다. 

"진짜 사람인가?"하며 내가 쓴 돼지탈 코를 눌러보기도, "어, 돼지가 움직이네?"하며 의아해하거나 뒤늦게 웃기도, 때로 진심 놀라 뒷걸음질 치거나 무언가 깨달은 듯 고개를 돌리는 이들도 있었다. 한 번은 극장가 벤치에 앉았는데 한 상인이 "여긴 사람 앉는 데야"라고 했다.

피켓 내용과 상관없이 식당 홍보로 착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 복날에는 명함 달라는 요청 때문에 피곤했다. 하지만 진중한 표정으로 메시지를 읽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엄지를 들어 응원을 전하고, 사진을 찍는 행인들도 서서히 늘어났다.

가장 최근의 일이다. 한 아이가 처음엔 "야! 돼지"하고 장난을 걸더니 만류하는 엄마로부터 '공장식 축산'에 대해 듣고 와선 "미안해, 돼지야"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때 생각했다. 아이의 말을 동물들에게 전해줄 수 있다면, 하고. 신기한 건 나 역시 언제부터 돼지 복장 안에서 진짜 돼지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는 것. 

고무 재질의 탈은 갑갑하다. 특히 여름엔 숨이 턱턱 막히고 땀으로 샤워를 한다. 그런 중에 사람들의 비웃음 또는 냉담 섞인 표정 혹은 무관심을 경험할 때, 평생 어둡고 차가우며 답답한 공장에서 무생물 취급을 받는 동물들의 심경을 만분의 일쯤, 혹은 그 이상을, 짐작하게 된다.

돼지는 원래 움직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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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식 축산 반대' 거리 캠페인 ⓒ 이명주


1년간 캠페인을 하며 체감한 몇 가지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거의 매일 먹는 돼지, 소, 닭 등을 일상에서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정확히 살아있는 그들을)과 그것을 이상히 여기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또 하나, 지금과 같은 무자비한 식생활이 대부분 무의식적인 편승이란 점도 그렇다.

여기서 내가 비판하고 개선하고자 함은 육식 자체가 아닌 '육식 문화'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잡식성으로 태어난 인간이 다른 동물을 먹는 행위에 대해 나는 아직 가치중립적이다. 하지만 21세기, 문명인이라 자처하는 우리가 그 동물을 '먹는 방법'에 있어선 결코 중립일 수가 없다. 

너무 당연하지만 우리가 먹는 모든 동물은 한때 살아 있었다. 사람과 다름없이 부모의 몸을 빌려 태어나 서로의 품을 그리고, 자유와 자연을 좋아하고, 고통을 싫어하고, 살 수만 있다면 살고자 하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까지도 똑 닮았다.

그런데 이러한 동물들을 태어나 죽을 때까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시설에 가두고, 다만 우리의 입과 허영을 채우기 위해 그들의 몸을 함부로 자르고 키우며, 죽이는 순간까지도 그들의 고통을 줄여주고자 노력하지 않는 것이 바로 '공장식 축산'이기 때문이다.

백인이 흑인을, 남자가 여자를,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괴롭히는 것이 도리에 어긋난다면 인간이 또한 우리가 속한 동물계의 다른 생명을 고통스럽게 하고, 그 행위를 방관하는 것 또한 안 될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분명 그들 방식으로 사고하며 감각하는 존엄한 생명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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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미만 강아지 판매 불법' 사실 알고 계세요? ⓒ 이명주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슬로우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거리캠페인 #일상 #공장식축산 #동물복지 #FACTORY F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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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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