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진순 교수의 이육사 시 <청포도> 재해석

계간 <역사비평>에 발표 ... "해방의 혁명가를 위한 향연 노래"

등록 2016.04.13 16:24수정 2016.04.13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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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7월은 /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 먼 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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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 자료사진

시인 이육사(陸史, 1904~1944, 본명 원록(源祿))가 쓴 "청포도"로, 경북 안동 출신인 그를 대표하는 시다. 이 시를 두고 많은 해석이 있는 가운데, 도진순 교수(창원대)가 '청포도' '청포' '윤세주'와 관련해 재해석한 논문을 발표해 관심을 끈다.


도 교수는 최근 나온 <역사비평>(봄호)에 "육사의 청포도 재해석-청포도와 청포, 그리고 윤세주"에 대해 발표했다. 육사의 대표작 "청포도"를 그의 독립과 혁명운동, 한시(漢詩)와 연계해 검토한 것이다.

도 교수는 "육사의 시는 그의 행동인 삶과 분리시키기 어렵고, 기실 육사는 평생 독립혁명운동의 삶과 문학 두 세계를 넘나들었으며, 이 두 세계 사이에는 내밀한 연관관계가 있다"며 "그는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검열 때문에 마음 놓고 '목 놓아' 노래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암호 같은 '은유의 상징'을 즐겨 사용했다"고 보았다.

"청포도"를 이해하려면 육사가 1941년 1월 <조광>에 발표한 산문 "연인기(戀印記)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산문에 보면, 육사는 1933년 7월 15일 상하이에서 귀국하기 직전 열린 '최후의 만찬'에서 'S'에게 '빈풍칠월'이 새겨진 인장을 선물로 주었다고 해놓았다.

도 교수는 영문 이니셜 'S'가 육사를 난징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로 이끈 석정 윤세주(石正 尹世冑, 1901~1942, 독립운동가)라 했다. 도 교수는 "육사가 인장에 'S'라는 이니셜을 새겼는지, 실제로는 '석정'이란 윤세주의 가명을 새겼지만 보안상의 문제로 'S'로 표기한 것인지 불명하나, 아마도 후자인 듯하다"고 했다.

도 교수는 "육사의 시세계에 내밀하게 자리하고 있는 'S', 즉 석정 윤세주의 이미지는, 조선혁명정치군사학교에서 매일 부른 <혁명군가>의 '생사를 갓히(같이)하자'처럼 이후에도 계속된다"며 "'연인기'가 인장을 통해 고향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는 것으로 시작하여 혁명동지에 대한 연대와 애정으로 귀결되었다면, 시 '청포도'도 '내 고장'으로 시작하여 혁명동지를 위한 '향연'으로 끝난다. 두 글에는 배경음악처럼 '빈풍칠원'이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육사 고향에는 청포도가 있었을까?

육사 고향에는 청포도가 있었을까. 도 교수는 "육사 고향 원촌(안동)에는 일제강점기는 물론 지금도 청포도가 없다"며 "육사가 청포도의 시상을 얻은 장소는 포항 동해면 도구리의 미쯔와포도원이라는 주장이 있다.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1936년 7월, 1938년 초여름 등 혼선이 있지만, 육사가 이 포도원에 간 것은 사실"이라 했다.

그리고 도 교수는 "포도는 육사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향수를 상기시키는 과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포도주라는 근대문명과 결합되는 새롭고 귀중한 것이었다"며 "'내 고장'은 육사가 나고 자란 원촌 고향을 특정한 것이 아니라 더 넓은 공간, 즉 조국으로 확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 해석했다.

도 교수는 "청포도는 품종으로서 '청'포도가 아니라 익기 전의 '풋'포도여야 시 '청포도'가 제대로 독해된다"며 "당시에는 일반 포도도 아주 귀했다. 품종으로서의 청포도는 당시 미쯔와포도원에서 와인용으로 재배되긴 했지만, 손님을 위한 식용으로는 거의 재배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강희자전>에 의하면 '청(靑)'이란 접두어는 '생물이 태어날 때의 색상'의 의미로도 쓰이고, 우리말 '풋'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도 교수는 "1943년 7월 육사는 이식우(李植雨)에게 자신의 시 '청포도'에 대해, '내 고장은 조선이고 청포도는 우리 민족인데 청포도가 익어가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익어간다. 그리고 일본도 끝장난다'고 회고했다"며 "청포도를 아직은 미숙하고 준비 중인 '풋포도'로 해석해야 '익어간다'는 의미가 온전해진다"고 했다.

시 2연의 "이 마을 전설이 … 들어와 박혀"에 대해, 도 교수는 "육사는 협애한 민족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조선의 해방이 조중합작 및 세계혁명과 결합되어 있다고 믿었고, 그의 호(육사)는 한국을 포함하여 아시아 대륙의 역사를 새로 쓰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며 "육사가 하늘을 유달리 사랑한 것도 국경의 한계를 넘어서는 그의 꿈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풀이했다.

'청포(靑袍)'에 대해서도 재해석했다. '청포'는 '조선시대 고위 벼슬아치가 공복으로 입던 푸른 도포'다. 이에 시 '청포도'에 대해 '사치스럽고 투쟁 없는 기다림'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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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순 창원대 교수. ⓒ 창원대학교

그러나 도 교수는 "전통적인 한시에서 청포는 고급스런 이미지와는 반대다. 청포는 고급 옥빛이 나는 푸른 도포가 아니라, 짙은 남색에 가까운, 세탁을 하지 않아도 표시가 잘 나지 않는 옷으로, 흔히 미관말직이나 지방 관리의 복장이거나 벼슬을 하지 못한 비천한 사람의 복장을 의미한다"며 "또 중국에 망명한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입던 복장이기도 하다. '청포도'의 '청포'는 고급 관복이나 예복이 아니라, 바로 비천한 사람들이나 혁명가들이 입던 곳으로 해석해야 시가 온전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학'과 관련한 해석도 있다. 도 교수는 "청포가 혁명군의 이미지로 활용된 적이 있는데, 바로 동학의 청포다"며 "동학은 청포 또는 청포의 남색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나아가 동학민요 <파랑새>에 나오는 '청포장수'도 '푸른 옷을 입은 청포장수'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도진순 교수는 "식민지 독립운동의 해방전사를 꿈꾸었던 육사는 일제와의 전쟁을 원했고, 혁명동지들과 연대하고 행동으로 참여하고자 했다. 육사의 시는 그러한 행동의 일부였다"며 "문학적으로 청포 입고 오는 고달픈 손님이 윤세주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청포도'가 윤세주로 대표되는 해방의 혁명가를 위한 향연을 노래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 해석했다.
#이육사 #도진순 교수 #청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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