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엄마 옆에서 <태양의 후예>를 봅니다

유시진 대위의 꿋꿋함이 주는 위로... 엄마도 그 어려운 걸 해낼 수는 없는지요?

등록 2016.04.16 22:16수정 2016.04.16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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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송중기. ⓒ KBS 2TV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냅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언니와 난 눈물을 닦았다. <태양의 후예> 드라마의 잔잔한 배경음악이 이어폰을 통해 들려왔다. 그러나 눈길은 손에 쥔 작은 휴대폰 화면을 벗어나 병상에 누워 있는 엄마에게 향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내가 그 어려운 걸 해냈다"며 일어나 서시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순간 언니와 나의 생각은 같았으리라.

우리 엄마가 폐암 3기라네요

작년 연말 일흔넷의 엄마는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 환절기 통과의례로 겪던 알레르기성 기침인 줄 알았는데, 작년 가을의 그것은 급이 달랐다. 항암치료 후유증은 엄마를 쇠약하게 만들었고 그 틈을 타 암세포는 척추와 흉추에 전이돼 결국 엄마는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급하게 진행돼 우왕좌왕하는 사이 지금은 처음 2년 정도에서 몇 개월로 확 줄어든 예상 수명표를 받아들었다. 계속 투여되는 마약성 진통제도 움직일 때마다 전해지는 고통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하고 있다.


"심각할 때 심각하면 심각하기 밖에 더합니까?"

웃음 한 번에도 죄스럽던 맘, 말 한마디라도 조심스럽던 시간, 아무렇지 않게 웃는 것이 그리워 엄마가 알세라 조심조심 휴대폰으로 즐겼던 드라마 시청 시간이다. 심각할 때 심각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아는 주인공 유시진 대위의 그 위트가 얼마나 부럽던지....

"어미 아픈 게 그리 좋아 죽겠냐."

아파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딸내미는 무엇이 좋은지 계속 키득거리며 웃었다고 했다.

"좋아 죽겠지는 않아. 쪼금 좋지."

기껏 생각해낸 나의 유머 수준은 이랬다.

"설마 웃으라고 한소리는 아니지?"

나의 말에 언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차라리 하던 대로 심각하자."

결론은 그랬다. 그래도 어떻게든 유머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아직까지 엄마가 반응을 보이는 유머를 찾지는 못했다.

죽었다가 살아오는 주인공, 엄마일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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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태양의 후예> ⓒ KBS


드라마 속 주인공은 위험한 상황에도 잘 견뎌내고, 사망했다고 여겨지는 순간에도 다시 살아왔다. 그런 주인공의 멋들어짐은 순간순간 언니와 내가 서로를 격려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우린 평소 생각이 달라 많은 의견 차이를 보였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심각해져 돌아설 때가 많았다. 틈틈이 나누는 주인공에 대한 환상은 심각하기만 해선 이 상황을 견뎌낼 수 없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했다. 서로의 힘듦과 크기를 이해하게 되는, 고마운 시간들이기도 했다.

엄마의 고통은 점점 심해질 것이고 드라마는 곧 떠날 것이다. 처음 유머는 병살타였지만 계속하다 보면 잠깐이라도 고통을 잊을 수 있는 홈런성 유머를 구사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래서 그 어려운 일을 우리 엄마도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먹먹한 병실에서 적어본다.
#엄마 #태양의 후예 #폐암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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