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제주로 이사 갔어야 했다

[제주와 서울,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중 ③]

등록 2016.04.25 15:57수정 2016.05.2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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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글 '제주에 살기', 이상주의자의 헛소리라고?에서 이어집니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몰랐다면 검진기관에서 시키는 대로 상급병원에서 재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평정심을 유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게는 췌장암으로 아버님을 잃은 지인이 한 분이 있었다.

그리고 이 분을 통해 췌장암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그 진행 과정이 어떠한지 수도 없이 들어왔다. 설상가상으로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사망함에 따라 췌장암의 무서움에 대한 뉴스가 인터넷에 차고 넘칠 만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듯한 두려움이 나를 덮쳐왔다.

어설픈 의학지식은 오히려 불안감만 증폭시킨다

인터넷에 수없이 올라와 있는 의학정보는 나를 더 큰 어둠 속으로 밀어넣었다. 다른 장기와 달리 췌장에 생긴 종양은 단순 물혹일 확률이 거의 없으며, 경계성 종양이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얘기부터, '경계선이 불분명한데, 췌장 머리에 있는 종양은 최악'이라는 정보까지.

긍정적인 시그널은 단 하나도 없었고, 모든 나침반은 절망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건강검진기관에서의 결과를 받아 든 후 대형병원 검진을 예약하고, 그곳에서 다시 재검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 때까지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짜증나기만 했다.


서울의 썩어빠진 대기오염을 욕하고, 매일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쓰레기에 가까운 가공식품의 유해성에 분노하고, 그동안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만든 인간관계, 정확히는 인간들에 대해 저주에 가까운 마음을 품고 지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나의 우유부단함을 증오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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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서울 상공에 들어서는 순간 거짓말처럼 시야가 뿌옇게 변한다. 이런 공기를 마시고 살면서 건강하길 바라는 건 무리 아닐까. ⓒ 이영섭


결국 이렇게 될 것을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하게 살아왔던 걸까. 대체 뭘 얻겠다고 하고 싶은 거 하나도 못하고 참기만 하면서 지내왔던 걸까.

분노와 공포에 사로잡혀 지내온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아내의 재검진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 나는 마음 속으로 결심했다.

"우리에게 기적이 찾아와 이번 일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다면…. 이제는 정말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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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지막에 가면 인간은 누구나 혼자 세상과 맞닥뜨리게 된다. 성산 앞 바다에 홀로 떠있는 저 낚시 배처럼 ⓒ 이영섭


"종양이 아닙니다"
"네?"
"췌장과 다른 기관 사이의 가스로 인한 그림자를 건강검진기관에서 종양으로 판독해서 오진했나 봅니다. 아무것도 없으니 안심하세요."

지난 시간 동안 우리를 괴로움의 나락으로 몰아넣었던 오진에 대한 분노보다는 그저 감사하다는 생각만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그랬다. 그저 아무 일도 없다는 것만으로, 췌장암이라는 무서운 병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감사했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이 지옥 같은 서울을 벗어나 삶의 터전을 제주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만이 나를 지배했다.

하지만 아내의 완전한 동의 없이는 제주 이주를 추진할 수 없었다. 당사자이기에 나보다 더 큰 걱정과 공포에서 이제 막 벗어난 아내에게 뭔가를 강요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리란 결심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때 제주로 갔어야 했어... 결국 갈팡질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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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지만 결국 내 것이 될 수 없기에 제주에 있어도 제주가 그립다 ⓒ 이영섭


이제 와 생각하면 그때 일어난 일련의 해프닝은 제주 이주에 대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던 우리의 등을 운명이 대신 떠밀어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때 고민하던 그 일을 실행에 옮겨야만 했다. 지금보다 능력은 부족했지만 보다 어리고 용기가 있던 그때, 제주로 이주를 했더라면 비록 경제적으로는 어려워졌을지라도 삶의 만족도는 훨씬 높았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운명이 장난처럼 등을 떠밀어주던 그때 짐짓 모른 척 실행에 옮겼어야 했다. 아직도 우리는 그때의 선택에 깊은 아쉬움을 갖고 있다.
#제주이주 #제주도 #제주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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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 : 제주, 교통, 전기차,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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