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20대 국회를 흔드는 손

[여의도본색] '원내대표만 3선' 정치 고수... "최종 목표는 당 대표"

등록 2016.05.01 19:56수정 2016.05.0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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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지난달 27일 새벽, 경기도 양평의 한 리조트 7208호에는 밤새 기자들이 들락거렸다. 전날부터 진행된 국민의당 당선자 워크숍 저녁 만찬이 끝나고 당 관계자들과 기자들은 각자 방으로 돌아가 삼삼오오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친분이 있던 기자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오전 2시경, 박지원 의원이 자신의 방에서 기자들과 함께 있다는 소식이었다. 20대 국회 당 원내대표로 추대가 유력한 박 의원 방에 기자들이 몰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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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자 워크숍 참가한 박지원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이 26일 오후 경기도 양평 한화리조트에서 열린 국민의당 당선자 워크숍에 참석해 발언을 듣고 있다. ⓒ 이희훈


곧 박 의원의 방을 찾았다. 박 의원은 검정색 면티에 회색 운동복 바지를 입고, 막 잠자리에 누우려 했던 모습으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한쪽 팔을 침대에 걸치고 여유있는 모습으로 새로 들어오는 기자들을 맞았다. 그는 호남 민심의 실체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호남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원내대표를 맡을 생각이 있는지,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열정적으로 답했다.

무엇보다 관심사는 원내대표 추대 여부였다. 국민의당은 총선에서 38석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얻어 한껏 고무돼 있었고, 기존의 양당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보였다. 총선 이후 다른 정당들은 선거 책임론과 지도체제 문제로 시끄러운 반면, 국민의당은 안철수-천정배 체제를 연말까지 이어가기로 결정하며 안정감을 취했다. 박 의원의 원내대표 추대론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신생정당의 원내대표는 박 의원에게 급이 맞지 않는 옷으로 보였다. 그는 18대, 19대 국회에서 제1야당의 원내대표를 지냈고,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더민주 전신)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후보로 나서 문 전 대표와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 그런 그가 다시 신생정당의 원내대표를 한다? 그는 "원내대표가 아니라 당권에 도전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기자 질문에 "맞다, 최종목표는 당권"이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꼭 원내대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추호도 없다. 최종 목표는 당권이다. 전당대회에 출마해 국민의당을 반드시 집권할 수 있는 정당으로 만들겠다. 하지만 그 전까지 당에서 나에게 원내대표로서의 역할을 요구한다면, 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원내대표가 큰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추대가 된다면, 안철수 대표가 물러날 때 나도 깨끗이 물러날 생각이다."

결국 박 의원은 그날 오전 20대 국회 국민의당 초대 원내대표에 추대됐다. 유성엽 의원이 적극적으로 원내대표 출마 의사를 밝혔지만, 당 전반의 흐름은 이미 박 의원 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박 의원은 김관영 의원을 수석부대표에, 김성식 의원을 정책위의장에 지명했다. 또 현 19대 국회 마지막 원내대표인 주승용 의원이 워크숍 이후 활동을 중단하면서 사실상 내정자신분으로 원내대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보력과 전투력 발군... 쉽지 않은 대항마 찾기

'정치고수'라는 말의 원조격인 박 의원은 그동안 상당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높은 전투력을 발휘했다. 특히 18대 원내대표로 있었던 2010년 5월부터 2011년 5월까지 1년 동안 박 의원은 민주당 원내대표로 김태호 당시 국무총리 후보,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내정자, 이재훈 전 지식경제부 내정자, 정동기 전 감사원장 후보,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 등 총리와 장관 후보 5명을 인사청문회에서 낙마시켰다.

19대 국회 민주통합당의 초대 원내대표로 당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원구성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인 끝에 주요 상임위로 분류되는 국토교통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따냈다. 이 같은 원구성 협상 경력은 20대 국회 초대 원내대표로서 국회의장, 상임위원장, 간사 등 원내 구성 협상에서 다시 한 번 주목받을 전망이다. 그 외에도 박 의원은 법제사법위원회, 정보위원회 등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수차례 보여줬다.

이런 박 의원이 조기등판하면서 다른 정당들은 '대항마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박 의원과 가까운 한 정치권 인사는 "사업가 출신으로 어떠한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망설임이 없고, 판단을 내리고 나면 일관되게 추진하는 힘이 엄청나다"라며 "협상파트너가 누가 되더라도 몇 수는 앞서 나가 주도할 거라고 본다, 다른 정당들은 지금부터라도 '박지원'을 연구해야 그나마 협상 비슷한 거라도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경원, 유기준 의원과 정진석 당선자가 3파전을 벌이는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세 후보 모두가 박 의원에 비하면 경험과 경륜, 협상력과 전투력 전반에서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원유철 대표 권한대행도 앞서 "국민의당의 선택이 국회 운영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우리도 거기에 걸맞은 정치력과 경험이 있는 분이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더민주의 경우 조금 더 곤란한 상황이다. 박 의원이 탈당해 무소속으로 나서기까지 10년 가까이 몸담으면서 당의 생리나 의원들의 성향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더민주 원내대표 경선에는 4선에 강창일, 이상민 의원, 3선에 노웅래, 민병두, 우상호, 우원식 의원이 출마해 경쟁한다. 한 핵심 당직자는 "후보 모두가 나름의 경쟁력이 있지만, 그것이 박 의원과 협상에서 얼마나 발휘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독주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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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자리로 향하고 있다. 아래는 안철수 천정배 공동대표. ⓒ 남소연


앞서 언급한 박 의원의 발언에 따르면, 그는 오는 연말까지 '한시적 원내대표'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초대 원내대표는 원 구성 등 향후 국회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결정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다르다. 박 의원이 원내대표 추대를 수락한 것 역시 국회 초반의 성과를 바탕으로 당 대표에 도전하고, 향후 대선에서도 입지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실제 그는 몇 번의 발언으로 초반 주도권을 쥐려 하고 있다. 박 의원은 지난달 28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태도를 바꿔서 협조 요청을 해오면 국회의장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협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조건부 새누리당 국회의장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또 지난 국민의당 당선자 워크숍에서 취재진과 만나 "더민주의 유력한 국회의장 후보가 자기 좀 도와달라고 전화가 왔다, 내가 '당신은 안돼, 당신은 친노 아니냐'고 말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민주를 비롯해 정치권을 흔들고 있다.

문제는 박 의원의 이런 발언들이 정국의 흐름에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노련함이 너무 과한 나머지 이미 역작용 조짐이 있다. 김홍걸 더민주 국민통합위원장이 박 의원의 '조건부 새누리당 국회의장' 발언에 "삼권분립 위반"이라고 지적하자, 박 의원은 "국회의장 선출은 국회 권한"이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자는 취지"라고 한 발 물러섰다. 더민주 국회의장 후보와 통화를 공개한 것도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부분은 국민의당에 향후 불안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박 의원이 정국을 주도하면 할수록 무게중심이 쏠리게 되고, 박 의원의 실수나 실언이 곧 국민의당 전체의 실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박 의원이 내정되고 나서 당의 모든 뉴스가 박 의원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안철수 대표도 사라졌다"라며 "박 의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당 내에서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더민주 #국회의장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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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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