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서화는 '비밀' 암호 덩어리

[서평] 추사 글에 대한 또다른 해석 <추사코드>

등록 2016.05.09 09:10수정 2016.05.0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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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가 쓴 '애愛 자' 추사가 그려낸 ‘애愛자’는 ‘발톱爪’ 대신 ‘선비士’가 쓰여 있습니다. “바른 행실로 존경 받는 선비” 혹은 “성리학을 따르는 정통 선비”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추사코드> 222쪽- ⓒ 도서출판 들녘


위 사진은 추사가 남긴 글 중 '사랑 애' 자입니다. '公有私乎 偏愛竹 客無能也 秖看書'(공유사호 편애죽 객무능야 지간서, 공께서는 거듭하여 (저에게) 존경받는 사림과 함께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시는데, 저에겐 사림과 함께 할 능력이 없습니다(왜냐하면 저는 이제야) 성인들이 남기신 책들의 숨은 뜻을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라는 글에 쓰인 '애' 자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애(愛)자가 틀렸습니다. 추사가 애자를 몰라 이렇게 틀리게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부러 틀리게 썼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추사가 남긴 글 중 '애' 자 하나면 다르게 썼다면 있을 수 없는 실수나 착각의 흔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추사가 남긴 글에는 원래의 글자와는 상관없거나 변형된 글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목(木)자로 써야 할 부분을 미(未)자로 쓴 글도 있고, 심지어 읽기조차 곤란한 글도 한둘이 아닙니다.

'추사가 그려낸 '애愛자'는 '발톱爪' 대신 '선비士'가 쓰여 있다. "바른 행실로 존경 받는 선비" 혹은 "성리학을 따르는 정통 선비"라는 의미로, 추사의 여타 작품 속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표기법이다.' - 222쪽

그렇다면 추사가 남긴 글들은 어떤 의도를 갖고 틀리게 썼거나 변형해 그렸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추사가 남긴 글씨들 중 일부는 그 자체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비밀코드이자 암호 덩어리입니다.

더하거나 뺀 획 하나, 길거나 짧게 뻗은 삐침, 덧칠을 해 잇거나 끊어 연결한 긋기, 삐딱하게 기울여 쓴 글씨, 크거나 작게, 굵거나 가느다랗게 그은 획, 심지어 바꾸어 넣기까지 한 괘 하나하나 마다 의미와 상징이 숨겨져 있고 뜻과 의도가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서화에 숨겨둔 조선 정치인의 속마음 <추사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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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코드> (지은이 이성현 / 펴낸곳 도서출판 들녘 / 2016년 4월 11일 / 값 22,000원) ⓒ 도서출판 들녘

<추사코드>(지은이 이성현, 펴낸곳 도서출판 들녘)는 이처럼 추사가 남긴 글 가운데, 그동안 헤아리지 못했던 숨은 뜻을 암호를 해독하듯 낱낱이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은 추사가 모질도(耄耋圖)에 심어 놓은 코드(의미)를 풀어내면서, 유홍준이 한 해석이 오역일 수 있다는 것을 선방처럼 날리며 시작합니다. <모질도>는 고양이 한 마리를 그린 그림입니다.

저자 이성현은 '유홍준 선생이 <모질도>에 대해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를 가는 도중 남원 고을에서 그린 작품으로 귀양살이를 무사히 마치고 천수를 누리고 싶은 바람을 담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무슨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지 묻고 싶다'고 따집니다. 유홍준 선생이 <모질도>를 해석한 설명에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말입니다.

'모질도'의 모耄와 질耋은 노인을 뜻하는 것으로, 보통 나비와 고양이를 그려 장수를 축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추사가 그린 <모질도>는 앙칼진 시선을 하고 있는 고양이만 있습니다.

고서화에 등장하는 쥐들은 부패한 관리들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고, 고양이는 그런 쥐들을 잡아먹는 천적입니다. 이에 저자 이성현은 <모질도> 속 고양이는 제주로도 귀양을 가던 중 남원에서 하루 묵어가게 된 추사가 마음병을 다스릴 보약 한 채를 준비하는 심정으로 늙은 고양이 한 마리를 그려 품에 간직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유홍준 선생이 해석한 '천수를 누리고 싶은 바람'이 아니라, 심약해져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한 결기쯤으로 해석하고 있으니 천양지차 해석입니다.

추사는 예술가? 단언컨대 정치가

오늘날 대개의 사람들은 추사를 예술가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추사는 단언컨대 정치가'라고 합니다. 정치가로 키워졌고, 정치가로 살았으며, 눈을 감을 때까지 단 한순간도 정치가의 길을 포기 한 적이 없는 정치가라고 합니다. 이런  추사라면 그가 남긴 글과 그림 중에 정치적 의도나 의미가 담겨 있을 거라는 건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그랬습니다. 추사는 추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감탄케 하는 '그림 같은 글씨' 속에 은밀히 전하고자 하는 뜻, 은근히 건네고 싶은 의도, 역성혁명으로 취급될 만큼 엄청난 정치적 내심까지도 이렇게 담아 건네거나 저렇게 심어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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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가 71세 되던 1856년 10월 7일 쓴 봉은사 <판전> ⓒ 임윤수


추사가 남긴 글 중 '일독이호색삼음주(一讀二好色三飮酒)'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하나 책을 읽고 둘 여자를 탐하고 셋 술을 즐긴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홍준 선생이 펴낸 <완당평전>에서도 이렇게 소개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추사가 글씨 속에 암호처럼 심어 놓은 뜻을 새기게 되면 전혀 다른 뜻이 됩니다.

'단서는 항시 현장에 있게 마련이라 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추사가 남겨두었을지 모를 흔적을 찾아 작품을 면밀히 살펴보니, '읽을 독讀'과 '마실 음飮'자 속에 괘卦가 그려져 있다.

추사는 '읽을 독讀'의 조개 패貝' 부분을 변형시켜 불(火)을 상징하는 이괘離卦(☲)를 그려 넣었고, '마실 음飮'의 '먹을 식食' 부분에는 산을 상징하는 간괘艮卦(☴)를 숨겨 두었다. 두 개의 괘를 확인했으니 이괘離卦(☲)를 상괘로 하고 간괘艮卦(☴)를 하괘 삼아 <주역>을 통해 읽어내면 추사가 무슨 이야기를 남겼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362쪽

하지만 숨겨진 코드를 찾고 뜻을 새기며 일독一讀과 이호색二好色을 연이어 읽으면, "조정의 개혁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려는 꿈(화풍정, 상괘☲ 하괘☴)을 위해 조정에 출사하고자 하나 이는 혼자의 생각일 뿐 실행에 옮길 방도를 찾지 못하고 망설이던 차에 뜻을 함께 할 동료가 생겼으니 나의 생각은 비로소 몸[己]을 얻게 되었다[二好色]"가 되고, 삼음주三飮酒는 뜻을 함께 하다 죽어간 조인영 영전에 술 한 잔을 올리자 귀객이 된 조인영이 추사에게 당부한 소리를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계산무진, 조화첩, 산승해심 유천희해, 사서루, 잔서완석루, 죽로지실, 일로향실, 신안구가, 설백지성, 지란병분, 공유사호편애죽, 경경위사, 황룡가화, 황화주실, 숭정금실, 춘풍대아능용물 추수문장불염진, 일색이호색삼음주, 일광출동여왕월 옥기상천위백운… 추사가 글 어딘가에 비밀코드를 숨겨 놓은 글로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글들 중 일부입니다.

그동안 무심코 읽거나 봐 왔던 추사의 글과 그림에 대한 설명들이 이렇듯 본래의 뜻이 아닐 수 있거나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신비로울 만큼 뜻 깊고 무겁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 추사의 글과 그림을 대하는 이라면 요소요소에 담긴 코드를 읽고 해석하려 노력하느라 사고의 시간은 길어질지언정 새겨 알아가는 뜻은 신묘할 만큼 깊고 깊어질 거라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추사코드> (지은이 이성현 / 펴낸곳 도서출판 들녘 / 2016년 4월 11일 / 값 22,000원)

추사코드 - 서화에 숨겨둔 조선 정치인의 속마음

이성현 지음,
들녘, 2016


#추사코드 #이성현 #도서출판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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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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