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소설로 쓴 이유

[서평] 소재원 저 <균: 가습기 살균제와 말해지지 않는 것>

등록 2016.05.11 14:12수정 2016.05.1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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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이가 여섯 살 때였습니다. 어느 날 오후, 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저녁이 되면서 열이 펄펄 끓어올랐습니다. 해열제를 사다 줬으나 잠시 열이 내리는 듯싶더니 다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헛소리까지 했습니다. 밤에 아이를 데리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병원에서는 아이가 장염이라며 계속 해열제 처방을 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사흘을 내내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하며 병실에 누워 있습니다.

"엄마, 배가 너무 아파요."

얼굴을 찡그리며 여섯 살 아이가 말할 때, 엄마인 저는 대신 아파해 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습니다. 의사들이 저렇게 열심히 돌보는데 왜 차도가 없는지 답답하고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병원은 아이가 전혀 차도가 없자 다시 검사를 했고, 그제야 장염은 오진이었으며 맹장염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미 맹장은 터져 아이가 호소하는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급히 큰 병원으로 옮긴 뒤 네 시간에 걸쳐 대수술을 했습니다. 수술을 준비하기 위해 아이 옷가지 등을 챙기러 집에 잠깐 들렀을 때 아이에게 집에 같이 들어가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뇨, 엄마. 다 낫고 나서 집에 갈래요."

아이는 제가 짐을 챙길 동안 차에서 기다렸습니다. 지금도 저는 가끔 그때 아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립니다.

이제는 건강해져 청소년이 된 제 아이의 배에는 어른 손가락 만한 수술 자국이 있습니다. 저는 아이가 밤에 잘 때 가끔 이불을 덮어주려 들여다보다가, 아이 배에 있는 수술 자국을 가만히 만져봅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죽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기도 하고, 다행히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 고맙다는 생각을 합니다.

당시 한 달여 병원에 입원했을 때(수술 후유증이 도져 입원이 길어졌습니다), 소아병동의 같은 병실에는 불치병이거나 가망이 없어 보이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제 아이가 아프니, 아픈 아이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는데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습니다.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안아 밤잠을 설쳐 본 엄마아빠들이라면, 아이가 아팠을 때 부모의 심정이 어떨지 알 것입니다. 부모 마음 다 같다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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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균; 가습기 살균제와 말해지지 않은 것> ⓒ 새잎줄판사

저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아이 아빠가 있습니다. 채 백일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 아빠인 젊은 작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족들의 고통에 눈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소설을 썼습니다. 그 책이 <균: 가습기 살균제와 말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소재원 작가는 불의가 판치는 세상, 억울하게 아이나 아내를 잃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진실이 규명되지 않는 세상에 분개했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작가는 결연히 말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진실과 정의가 승리하는 순간을 단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다.'

스물여섯 살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 작가는 몇몇 영화화된 소설 작품들을 썼습니다. 영화 <소원>의 원작소설 <소원:희망의 날개를 찾아서>와 올해 개봉을 앞둔 영화 <터널>의 원작 <터널:우리는 얼굴 없는 살인자였다> 등이 그의 작품입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현실에서 약자들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활동에 참여하고자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해, 작가가 소설로 그린 방식은 섬세함이 좀 아쉽습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90일 된 아기와 아내를 연달아 잃은 주인공 민지아빠가 제조사를 상대로 오랜 싸움을 벌입니다. 누구도 신경쓰지 않던 이 사건을 야당 국회의원이 총선을 앞두고 피해자를 이용해 정치적 발판을 마련해 가는 과정을 다이내믹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 민지아빠를 돕는 (늘 약자의 편에 섰다가 패소하는) 정의로운 젊은 변호사가 있고, 이 사건을 둘러싸고 검찰, 질병관리본부, 환경부가 등장하고, 피해자 가족 모임, 시민단체, 언론, 예술가들이 모두 얽힙니다.

소설에서 특이한 점은 검찰이나 질병관리본부, 환경부, 기업의 소속된 모든 이들을 '누구 아빠' 혹은 '누구 엄마'로 시종일관 표현한다는 점입니다. 참사의 책임을 은폐하거나, 기업의 돈을 받고 묵인해주거나 혹은 잘리지 않기 위해 일해야 하는 누군가도 결국 누군가의 아빠이고 엄마라는 점, 그럼에도 자기 아이의 안위와 미래를 위해, 다른 아이의 죽음은 애써 외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소설은 마치 정치 드라마처럼 긴박하게 전개되고, 선악의 구도가 분명하게 그려지다 보니, 민지아빠만 순진한 피해자이고, 그 외는 모두 가해자 편이거나 욕망(돈이나 권력)의 편으로 그려지는 점은 소설의 한계입니다.

비록 소설은 허구의 형식이지만, 지금껏 피해자를 도왔던 시민단체, 사회적 이슈에 적극 참여했던 행동하는 예술가들, 또한 가족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피말리는 싸움을 해왔던 피해자 가족 모임까지도, 허구의 형식 속에서 다 한통속처럼 이야기가 전개되는 부분은 위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아빠인 작가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분노했기에 이 소설을 썼습니다. 이 세상의 한 사람이라도 더 이 참사를 알고 연대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지금도 다른 아이 엄마 아빠들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아기들을 위한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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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고 여행하는 삶을 삽니다. 책이나 영화, 연극을 텍스트 삼아 일상의 삶을 읽어내고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북클럽 문학의숲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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