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재규 장군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서평] 김재규 혁명기념사업회 회장 김성태가 쓴 <의사 김재규>

등록 2016.05.16 13:37수정 2016.05.1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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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장군(전 중앙정보부장)의 마지막 유언 "나는 기쁘게 갑니다,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꽃 피우고 편안히 사십시오.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 ⓒ 이정민


5월은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역설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과 같이 기쁨의 날도 있지만 5.18민주화운동처럼 슬픈 역사도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부처님 오신 날도 있어 생의 희로애락의 덧없음과 존재의 이유도 함께 되새기는 의미 있는 달이다.

또 기억해야 할 인물이 있다. 1979년 독재와 유신의 심장을 쏘고 기꺼이 미완의 혁명가를 자처했던 고 김재규 장군이 그러하다. 누구보다 민주주의와 국민을 사랑했던 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날이 1980년 5월 24일이다.


역사는 만약이라는 게 없다. 하지만 만약 김재규 장군의 역사적 테러가 없었다면 과연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굴욕의 친일과 제국의 역사를 단칼에 끊어놓은 고 김재규 장군의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김재규의 모습에서 안중근 의사를 떠올리다

"김재규 장군은 이토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 의사와 마찬가지로 봐야 한다"(윤보선 전 대통령)

박정희의 심장을 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기억하는가. 스스로도 독재 권력의 최상층에서 '나는 새도 떨어트릴 만큼' 모든 것을 누렸던 3성 장군이 왜 대통령 암살자로 이름도 없이 사라져갔는지 그 이유가 문득 궁금했다.

무작정 인근 도서관에 찾아가 30분 만에 발견한 책 <의사 김재규>가 그 해답을 명쾌히 밝혀준다. 이 책은 '김재규 혁명기념사업회' 회장인 김성태씨가 여러 언론에 나온 기사와 기고문 등을 엮어 만들었다. 2012년 10월 26일 김재규 장군의 거사를 기념하며 초판이 발행됐지만 여론은 냉담했다.


저자는 김재규 장군 10.26 거사 관련 기념행사도 상당 부분 잊힌 것을 아쉬워했다. 그만큼 이 책은 이전의 다른 평전과는 달리 '의사 김재규'를 특정해 기리는 숨은 공로를 상당 부분 부각시켜 담아냈다.

'나의 희생은 민주주의의 회복이었다.'

책은 김재규 장군의 옥중 마지막 유언을 필두에 배치했다. 유언의 대부분은 '민주주의 회복', '자유민주주의의 고마움', '나의 희생'이란 단어로 점철됐다. 죽음을 하루 앞둔 테러리스트이자 민주주의 혁명가로서의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묻어났다.

저자가 부제로 밝혔듯 이 책은 '민주주의로 가는 지름길을 개척한' 고독한 혁명가의 지난한 과정을 되짚었다. 단순 팩션에 머물지 않고 당시 상황을 목도했던 유명 인사들의 증언과 취재를 토대로 진지하게 구성했다. 김재홍 전 국회의원, 한상범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 손석춘 건국대 교수, 지승호 인터뷰 전문작가 등의 기록이 뒷받침했다.

더불어 김재규 장군의 옥중일기, 최후진술, 변론요지서, 항소이유서, 변호인단 발언 등이 그대로 발췌되어 역사적 사실감이 더해졌다. 그동안 온갖 추측과 의혹, 무성한 루머로만 떠돌던 김재규 장군이 말하고 싶었던 진심이 그대로 전해졌다.

특히나 장준하·문익환 목사와의 운명적 만남,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필연적 운명,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숙명론적 관계를 되짚는 대목에서는 희비가 교차했다. 그리고 박정희 서거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쿠데타 음모와 광주 민간인 학살 등을 예언한 김재규 장군의 절절한 심경에서는 안타까움도 묻어났다. 

고독한 혁명가에서 의사 김재규로

'패륜인가 혁명인가', '김재규는 암살자인가, 의인인가', '우발적 살인인가, 우국적 거사인가', '안중근과 김재규' 등 철저히 이분법적인 시각에서만 논의되어 왔던 김재규 장군을 재평가하자는 논리를 책은 제시한다.

또한 김재규라는 한 인간의 절절한 휴머니즘도 다시금 되짚어보자고 저자는 강조한다. 일례로 자신의 심복이었던 박흥주 대령을 비롯한 부하들의 극형만은 피하게 해달라는 기도, 비록 암살은 했지만 법정 진술에서 끝까지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지켰던 발언, 4.19와 부마항쟁을 목도하며 국민 한 사람의 생명까지 소중히 지켜야 한다며 서슬 퍼렇던 독재 대통령에게 직언했던 그의 소신 등이 그러했다.

"박 대통령 각하는 동향 출신으로, 나에게 은인이며 상관이다. 친형제 간도 그럴 수 없을 만큼 가까운 관계다. 그러나 많은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 대통령 한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김재규 장군이 왜 그의 전부였던 박정희를 꼭 죽음으로 끝내야 했는지, 당신도 기꺼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토록 위험한 거사를 선택해야만 했는지, 이 책은 그 시점부터 시대적 상황을 철저히 되짚어보라고 강조한다. 즉 단순한 역사적 사실에만 그치지 말고 그 숨은 진실에 더 천착하라는 저자의 진심어린 성토가 전해진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던가. 김재규 장군을 포함해 장렬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박흥주 대령, 박선호 의전과장, 유성옥 운전기사, 이기주 경비과장, 김태원 경비원, 그리고 멸문지화를 당했던 유가족들의 생애를 다시 짚어봐야 하는 이유다.

<나와 자유>
나를 만일 신이라고 부를 때는
자유의 수호신이라고 부르겠지
나를 만일 사람이라고 부를 때는
자유대한의 국부라고 부르겠지
독재의 아성 무너뜨렸네
나의 내 목숨 하나 바쳐
자유민주주의 회복하였네
나 사랑하는 3700만 국민에게
자유를 찾아 되돌려 주었네
만세 만세 만만세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만만세

- 1979년 11월 30일 변호인과 접견 중 김재규 장군이 어머니에게 전해달라는 시.

의사 김재규 - 민주주의로 가는 지름길을 개척한 혁명

김성태 지음,
매직하우스, 2012


#의사 김재규 #박정희 유신 #민주주의 회복 #고독한 혁명가 #안중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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