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주장] '조심하라'가 아니라 '살인하지 말라, 강간하지 말라'라고 말해야 한다

등록 2016.05.19 15:19수정 2016.05.2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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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 묻지마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히거나 헌화를 했다. ⓒ 이희훈


"그 누구도 빼앗긴 당신의 꿈을 묻지 않는다."
"저는 17일날 새벽 1시에 귀가했고 살아남았습니다."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작은 추모공간이 마련되었다. 곳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붙이고 간 포스트잇에 글들이 적혀있다. 살아남았다는 말이 다수 보인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의 한복판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한 30대 남성은 관계도 없는 20대 여성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서 살해했다. 피해여성과 일면식도 없다는 그는 "여성들이 나를 무시했다"라며 범행 동기를 밝혔다. 여성이 먼저 무시했기 때문에 그는 죽였단다.

가해자에게 주목하는 사회

사건이 발생한 이후,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기사에는 가해자인 30대 남성의 사연이 주로 소개된다. 사회에서 자주 여성들에게 무시를 받았던 남성이라든지, 목회자를 꿈꿨던 청년이었다는 식으로 소개된다. 목회자를 꿈꿨으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단 말인가.

사건의 초점은 가해자의 범행 동기에 집중된다. 그리고 '여성에게 무시 받았기 때문'이라는 비겁한 변명은 범행 동기로 포장된다. 이번과 같은 사건에서 가해자의 범행 동기에 집중하고, 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오히려 가해자를 옹호하게 될 수 있다. 가해자는 여성들에게 무시를 받았기 때문에 화가 났고 그렇기 때문에 살인이라는 최악의 행동을 하게 됬다는 것이다. 결국, 여성들에게는 남성을 무시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교훈이 남는다.

물론 범행동기는 중요하다. 왜 그랬는지 알아야, 제대로 법적인 처벌을 내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범행동기가 가해자에게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변하지 않는 것은, 가해자는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질렀고 피해자는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


사회가 가해자에 주목하는 사이, 피해자인 여성은 철저하게 외면된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에 써져있던 글처럼 그 누구도 빼앗긴 여성의 꿈을 묻지 않는다. 아니, 궁금해하지도 주목하지도 않는다. 피해자를 두번 죽이는 꼴이다.

도대체 여성은 어디까지 조심해야만 하나?

일각에서는 "조심하자", "치마를 입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까 밤길에 다니지 말아라"라는 반응도 보인다. 소름이 돋게 한다. 피해자는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지만 어느새 조심하지 않아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변질된다.

"조심하자"라는 말이 담고 있는 속성은 가해자에게는 명분을, 피해자에게는 잘못을 부여한다. 가해자는 상대방이 조심하지 않았기에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고, 피해자는 조심하지 않은 잘못을 했기 때문에 범죄를 당한 사람이 된다.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에게 왜 강력하게 저항하지 못했는지, 왜 조심하지 않았는지, 왜 치마를 입었는지 따지는 모습이 이제는 살인 사건에서도 반복된다.

"불과 몇달 전 대한민국 여성들은 공중화장실에서 몰카에 찍힐까봐 얼굴을 가리고 볼일을 보거나 휴지통과 나사, 변기를 살펴봤다. 근데 어제 이후로 대한민국 여성들은 공중 화장실에서 목숨을 잃을까봐 공포에 떨고 있다. 이게 대한민국 여성들의 현주소이다."

온라인에서는 많은 네티즌들의 분노의 반응이 보인다. "세상은 여성에게 너무 많은 잣대를 들이민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 "이제 여성들은 공중화장실에서조차 목숨을 잃을까 공포에 떨고 있다" 등의 글이 보인다. 한 네티즌은 이것이 대한민국 여성들의 현주소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여성은 끝없이 조심해야 한다. 밤 늦게 다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누군가 성적인 마음을 먹을까 옷 차림을 조심해야하고, 이제는 공중화장실조차 조심히 다녀야 한다. "조심하자"라는 말은 여성들에게 끝없는 족쇄를 채운다.

이번 살인사건은 여성이 조심하지 않아서 생긴 사건이 아니다. 그녀는 단지,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었고 화장실을 이용하려 했던 것뿐이다. 그녀는 아무 잘못없는 평범한 우리나라의 국민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그녀는 평범한 우리나라의 국민이다.

그렇기에 '조심하라' 말하는 당신들에게 말하고 싶다. 조용히 하라. 그리고 남성을 범죄자와 일반화 한다고 억울해 하지도 말라. 당신들에게 여성을 족쇄로 채울 권리는 없다. 밤길을 다니는 것도, 입고 싶은 옷을 입는 것도 모두 여성의 자유다. 그러니 '조심하라' 말하지 말라. 아니, "살인하지 말라, 강간하지 말라"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조심하라 #살인 #강남화장실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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