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할 게 너무 많다, 왜 이렇게 됐을까

물물교환으로 득템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등록 2016.05.19 10:41수정 2016.05.1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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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게 필요 없는 옷가지, 책들을 블로그에 올려 '개미시장' 같은 걸 한다.

"사(얻어)놓고 어쩌다 보니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내겐 필요 없는 물건들이니 필요하신 분들은 손을 드시오. 내게 필요한 목록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니 줄 수 있는 분들은 바꿉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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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나무

극도의 자기 절제 속에서 자연주의적 삶을 살았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은 그렇게 해서 얻은 책이다. 작가나 작가의 책이 전하는 뜻에 손톱의 먼지만큼 통하는 일이라 뿌듯하다.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를 한동안 즐겨 봤다. 자연인들은 세상에서 받은 큰 상처로 온 마음과 몸이 다 상한 뒤 숲 속으로 들어간 이들이다. 세상을 등지고 깊고 외진 산골에서 고독한 삶을 사는 그들의 상처와 사연이 내 일인 양 숙연해지기도 했다. 세상에서 끝끝내 살아 남았다면 그들은 숲 속으로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손수 집을 짓고 자연에서 얻은 재료들로 만든 음식으로 자급자족하며 최소한의 소비와 노동의 삶을 산다. 산 밖에 있을 때보다 가진 것은 형편 없지만 행복하고 즐거워지는 방법을 스스로 발견하고 느끼며 살게 되었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바깥 세상에서보다 고독한 숲 속 생활에서 더 행복하고 건강해졌다고 했다.

자연인들이 소로우나 <월든>을 쫓아서 숲으로 들어가진 않았지만 숲 속의 자급자족적 삶은 소로우가 월든 숲에서 지낸 삶의 양식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소로우가 이들 자연인들이 겪은 상처들보다 큰 내막이 있어 보이진 않지만 그 역시 세상과의 어떤 내적 불화로 숲 속에 들어갔을 것이다. 월든을 통해 본 소로우는 아주 개인주의적 혁명가에다 무정부주의자며 극도의 해체주의자로 여겨졌다.

'나는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 말고는 그 누구한테서도 괴롭힘을 받은 적이 없다.'(259쪽)


그의 혁명은 사회나 세상을 바꾸고 구하겠다는 거창한 연설이 아니라 개인적 구도와 평화를 추구하는 지극히 내밀한 작업이었다. 자신을 존경하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의 존경을 받겠다고 떠드는 것을 그는 혐오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아무런 존경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애국심에는 불타서 소를 위해 대를 희생시키는 일이 있다. 그들은 자기의 무덤이 될 땅은 사랑하지만, 지금 당장 자신의 육신에 활력을 줄 정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애국심은 그들의 머리를 파먹고 있는 구더기라고 할 수 있으리라.'(474쪽)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서 어디에나 갈 수 있고 떠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동경한 숲 속 생활과 자기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월든으로 들어가 집을 짓고 자연과 함께 살았지만 월든의 4계절을 파악한 2년 뒤에는 미련 없이 나왔다.

신적인 생활에 가깝게 살았지만 기독교를 비판했고 중국과 인도, 로마의 고전에 심취했지만 '과거의 영광'에 도취된 중국적, 런던적, 파리적, 로마적인 것은 혐오했다. 실천하는 진짜 삶이 아닌 '그런 척' 하는 모든 걸 혐오했던 그의 사상과 행동엔 경계가 없었다.

정치적 단체 활동은 혐오했지만 노예, 전쟁 반대의 뜻으로 인두세 거부를 해서 수감 생활을 했다. 하버드를 나왔지만 공장식 학교 교육에 반대해 학생, 교사가 함께하는 공동 설립의 대안학교를 추진했고, 체벌 금지에 반대해 교사 채용 뒤 며칠 만에 그만뒀다.

소로우의 철학은 최소한의 노동, 최소한의 소유, 최대한의 자유자였다. 그는 인간이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고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에 만족할 줄 알아야 되는데 그런 삶은 '자기 능력'을 아껴가며 사는 데서 나온다고 한다. 그 자기 능력이라는 것은 경제적 소득을 축적하기 위한 에너지의 절약이다.

'자신을 개발하기 위하여 서두른 나머지 수많은 영향력에 자신을 내맡기지 마라. 그것도 일종의 무절제이다.'(486쪽)
'내가 거친 노동을 오랫동안 지속하는 데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런 노동을 하고 나서는 거칠게 먹고 마셔야만 했기 때문이다.'(326쪽)

'자기개발'과 '1분 1초 아껴 쓰기'를 독촉하고 그렇지 못한 인간들은 시대에 뒤처진 게으른 죄인으로 취급되는 속도전의 이 시대에는 안 어울리는 말들이다. 그러나 공장식 자기개발보다는 내 심신의 평화와 만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많은 위로와 지침이 되는 말이다. 고독을 자청하고 즐겼으나 고립되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신'보다 '선'이 우선한다는 그의 사상 때문이었다.

'선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실패하지 않는 유일한 투자이다.'(327쪽)

그의 선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비나 자선과 달랐다. '자급자족'을 생활철학의 모토로 삼은 그는 몸이 실천하지 않는 심리적 자선을 혐오했다. 소로우의 말 중에 가장 급진적으로 느껴진 게 이 '자선'에 관한 것이었고 개인적으로 다소 이견을 표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해서 다른 부분보다 길게 인용해 본다.

'변질된 선행에서 풍기는 악취처럼 고약한 냄새는 없다..... 노예 한 명을 판 대금으로 노예 아홉 명에게 일요일 하루만의 자유를 사주는 경건한 노예 농장 주인과도 같은 것이다. 어떤 삶은 가난한 사람을 자기 집 부엌에 고용함으로써 친절을 베푼다. 부엌일은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 더 친절한 처사가 아닐까?

여러분은 수입의 1할을 자선사업에 바치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차라리 수입의 9할을 바쳐 자선사업을 끝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사회는 재산의 1할만을 회수하고 있다. 이것은 어쩌다가 그 재산을 소유하게 된 사람의 너그러움 때문인가, 아니면 공정(公正)을 책임진 관리들만의 태만 때문인가?'(115~118쪽)

언제까지 우리는 현관에 앉아서, 어떤 일이라도 해보면 당장 그 부적절함이 드러날 부질없고 케케묵은 미덕이나 실천하고 있을 것인가? 그것은 아침에 마지못해 잠자리에서 일어나 일꾼 하나를 사서 감자밭을 메게 한 다음, 오후에는 밖에 나가 선심이나 쓰듯 기독교적인 온정과 자선을 실천하는 것과 같다.'(490쪽)

소로우의 저런 이상적 자비론에 심정적 동조는 하지만 현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도 알게'해서 더 많이 자선에 참여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또한 우리는 신석기인이 아니니 100% 자급자족의 현실도 불가능하고 소로우처럼 모두가 '나는 자연인이다'로 살지도 못한다. 그 역시도 월든 생활 전후에는 부친의 연필공장 사업이나 측량기사, 친구네 집사 등의 일로 생계를 조달해야 했다.

소로우는 월든 숲 속의 나무와 동물, 호수가 자신에게 준 감동과 교류의 감정적 기술뿐 아니라 자신이 월든을 얼마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관찰했는지를 기록했다. 단순히 4계절의 풍경을 봄이 오고 꽃이 폈다, 겨울이 와서 얼음이 얼었다가 아니라 몇 월 며칠에 얼음이 녹고 깨지고를 아주 자세히 보고 기록했다.

1845년 월든 호수는 4월 1일에 완전히 해빙이 되었다. 1846년은 3월 25일에, 1847년은 4월 8일에, 1851년은 3월 28일에, 1852년은 4월 18일에, 1853년은 3월 23일에 그리고 1854년은 4월 7일에 얼음이 완전히 녹았다.(448,9쪽)

그가 1845년 3월 말에 월든에 들어갔으니 이 기록을 보면 그가 그곳에서 나온 8년 뒤까지 월든 호수의 얼음이 녹는 시기를 관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로우가 자연(월든)을 사랑하는 방식은 그저 풍광의 변화을 보고 즐기는 감상이 아니라 그것들의 태어남과 죽음까지 다 지켜보고 기록하는 것이었다. 소로우는 나처럼 '슬로우로 살아보라우~'라고 자신의 삶 자체로 보여줬지만 우리는, 아니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함을, 아니 살지 않음을 책을 읽는 순간부터 부끄럽게 깨닫고 있었다.

'그렇게 살고 싶다'와 '그렇게 살겠다'에는 큰 차이가 있다. '언제가는 저렇게 살겠다'와 '지금부터 저렇게 살겠다'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살고 싶으면 지금부터 그런 삶을 살면 되는 것인데 여러 편리한 변명을 대면서 그렇게 살지 않을 뿐이다.

월든을 어떤 명상서나 종교서, 환경서처럼 대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내게는 이 월든이야말로 아주 좋은 '처세서'처럼 생각되었다. 번듯한 명함을 만들고 지갑을 불리는 처세 말고 마음 편하게 잘 살 수 있는 그런 처세로.

우리 모두가 자연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모두가 소로우의 월든적 생활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 실천한 삶의 여러 방식 중 일부, 특히 의식주에 관한 것을 생활의 지침으로 살 수는 있겠다 싶었다.

월든의 앞 장에 나오는 '숲 속 생활의 경제학'에는 의식주에 대한 소로우의 생각과 실천들이 집중적으로 나오는데 물질적 생활 방침에 많은 도움이 되는 문구들이다. 최근 '내 집 마련'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은 직후라 다음의 말은 특히 더 와 닿았다.

'​우리의 집은 다루기 힘든 재산이어서 우리가 그 집에 살고 있다기보다는 차라리 감금되어 있는 경우가 더 많고, 우리가 피해야 할 나쁜 이웃이 바로 우리 자신의 비열한 자아이고 보면.....'(58쪽)

이 밖에도 생활 속에서 조금씩, 느리게 실천할 대목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택이 무엇인지를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이웃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정도의 집은 나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을 평생 가난에 쪼들리며 살고 있다.'(61쪽)

''생활필수품'이란 인간이 자기 노력으로 얻는 모든 것 중에서 처음부터 또는 오랜 사용으로 인하여 인간 생활에 너무나도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나머지, 어떤 사람도 빈곤이나 야만성 또는 인생관 등의 이유에서라도 그것 없이는 살아가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들을 통틀어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많은 동물들에게 단 한 가지의 생활필수품, 즉 먹을 것이 있을 따름이다.'(28쪽)

'대부분의 사치품들과 이른바 생활 편의품들 중의 많은 것들은 꼭 필요한 물건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 향상에도 방해가 되고 있다.'(32쪽)

'인간은 이제 자기가 쓰는 도구의 도구가 되어 버렸다.'(63쪽)

소로우는 40대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죽었다는데 너무 안 먹고 춥게 지내서 그런 병에 걸렸고 나이보다 일찍 죽은 건 아닐까 할 정도로 금욕적 삶을 살다가 갔다. 반면 나는 한 번씩 대청소를 하면서 집안 곳곳에 묵혀 있는 물건들을 발견하면서 내가 가져야 할 것보다 '버려야 할' 것이나 '필요 없는' 것이 너무 많음을 다시 깨닫고 반성한다. 조만간 다시 한 번 개미시장 공지를 올려야겠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hin-son/220709660201에도 게재된 글임

월든 (예스 특별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 2011


#미국판 나는 자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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