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을 읽는 섬 사람들, 지켜보길 26년

[시골에서 책읽기] 김준 <섬: 살이>

등록 2016.05.20 09:26수정 2016.05.2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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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김준


광주전남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김준 님은 어느덧 스물여섯 해째 '섬 연구' 외길을 걷는다고 합니다. <물고기가 왜?>나 <바다 맛 기행>이나 <한국 어촌사회학>이나 <섬 문화 답사기>나 <김준의 갯벌 이야기> 같은 책을 쓰셨는데, <섬: 살이>(가지, 2016)라고 하는 책을 새롭게 선보입니다.

섬을 연구한 발자취를 따라서 물고기 이야기가 책으로 태어나고, 물고기와 바닷것을 올리는 밥상 이야기가 책으로 태어납니다.


섬에 보금자리를 틀어서 이룬 살림살이 이야기가 책으로 태어나고, 섬과 뭍을 오가는 길목에 드리운 갯벌 이야기가 책으로 태어나요. 그리고 섬이라는 터전에서 어떤 삶이 예부터 고이 흘렀는가 하는 이야기를 그러모아서 <섬: 살이>가 태어나요.

할머니들이 아직도 걸을 수 있는 것은 바구니에 채워야 할 굴이 있기 때문이다. 팔순 할머니가 겨울에도 기어이 조새를 쥐고 갯벌로 걸어가는 것은 거기에 굴밭이 있기 때문이다.(43쪽)


<섬: 살이>라는 책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김준 님은 '서울살이'나 '시골살이'나 '마을살이'처럼 '섬살이'를 쓰지 않고 '섬: 살이'처럼 느슨하면서 길게 말소리를 잇습니다. 그냥 살면서 드러나는 살림살이가 아니라, 오래도록 차근차근 다스리면서 천천히 피어난 물살이와 바닷살이를 들려주려고 했구나 싶습니다.

가파도, 마라도, 우도처럼 언덕도 없고 피할 곳이 전혀 없는 섬에서는 이중벽을 쌓기도 했다. 안과 밖에 이중으로 돌담을 쌓고 가운데 틈에 잡석을 넣었다. 그렇게 담을 쌓고 나무를 심어 바람을 어느 정도 막고 나서야 농사를 짓고 살림집도 지었다.(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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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가지

바람이 많은 곳이라면 어디나 돌로 담을 쌓습니다. 바람이 그리 많지 않다면 가볍게 울타리를 하겠지만요. 제주섬은 돌담이 높아 거의 지붕까지 올라가기도 하는데, 바닷바람도 막아야 하지만, 때로는 물결이 넘치기도 하니, 이도 함께 막아야 합니다.


돌담을 쌓은 적이 있는 분이라면, 묵직한 돌을 날라서 하나하나 쌓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리는가를 잘 아시리라 생각해요. 묵직한 돌을 나를 적에는 이 무거운 돌을 꽤 날랐구나 싶지만, 정작 담을 쌓으려고 하다 보면 얼마 안 되어요. 자주 수없이 자꾸자꾸 나르고 나른 끝에 비로소 돌담을 쌓을 수 있습니다.

담으로 쌓는 돌은 멀리서 가져오기도 하겠지만, 땅을 일구면서 땅에서 캐기도 합니다. 집터를 다지면서, 밭을 일구면서, 섬에서 논을 지으려 하면서 그야말로 수많은 돌을 자꾸자꾸 캐내고, 이 돌을 바탕으로 돌담을 쌓지요.

감태는 민둘이 들어오는 오염되지 않은 갯벌에서 잘 자라기에 옛날에는 흔했지만 지금은 귀하다. 과거에는 김 양식장에서 파래, 매생이와 함께 잡태로 취급되었다. 밭농사로 말하면 잡초에 해당한 것이다. (134쪽)


숲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나뭇가지나 나뭇잎이나 나뭇줄기만 보아도 숲바람을 알거나 읽을 수 있습니다. 흙을 만지는 사람이라면 흙빛과 흙내만 살펴도 날이나 날씨를 알거나 읽을 뿐 아니라, 언제 씨앗을 심어서 거두느냐도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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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김준/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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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김준/가지


하늘을 바라보기에 하늘을 읽으면서 하늘을 알고, 별을 바라보기에 별을 읽으면서 별을 알아요. 다만, 그냥 바라보기만 한대서 하늘이나 별을 쉽게 알기는 어려울 테지요. 두고두고 바라볼 뿐 아니라 온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마음을 깊이 쏟아서 바라보다가, 어느새 그윽한 사랑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리하여 섬사람은 바닷물을 바라보면서 바닷물을 읽어요. 바닷빛을 읽고, 바닷내(바다 내음)를 읽어요. 바다를 끼고 살면서 바다를 읽어서 알지 못한다면 바닷마을이나 바닷집을 이룰 수 없을 테니까요. <섬: 살이>를 쓴 김준 님은 지난 스물여섯 해에 걸쳐서 '섬사람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섬사람과 닮으면서 섬사람하고 어깨동무하는 마음이 되'어서 섬을 바라봅니다.

섬을 바라보면서 찬찬히 마음을 기울입니다. 섬을 바라보며 찬찬히 기울이던 마음은 이윽고 사랑으로 거듭납니다. 이 사랑은 시나브로 따사로운 눈길이 되고, 살가운 손길이 됩니다.

섬 노인의 기억과 경험은 예사롭지 않다. 박물관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풍성하다. 별과 달을 보고 며칠 날씨는 귀신같이 맞췄다. 바다 색깔만 보고 조기가 오는 길을 알았다. 어디 그뿐인가. 배를 짓는 일을 제외하면 고기잡이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건 스스로 만들어 썼다.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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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김준/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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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김준/가지


처음에는 '바닷마을 연구자로 있으면서 논문을 썼다'고 할 테지만, 이제는 '바닷사람이나 섬사람과 같은 자리에 서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만한 김준 님이 펼치는 <섬: 살이>이지 싶어요. 김준 님은 섬에서 만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마다 이녁 한 사람이 훌륭하고 놀라운 '박물관 사람'이라고 깨닫거든요.

건물로 서지 않으나, 섬에 우뚝 서서 살림을 지은 '박물관 사람'입니다. 건물로 우람하게 있지 않으나, 섬에서 조촐하고 다부지게 삶을 지은 '박물관 사람'이에요. 섬 할아버지와 할머니 가슴 속에 아로새긴 이야기는 모두 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스스로 두 손으로 지은 삶이요 살림이며 사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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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김준/가지


돔 종류가 다 그렇듯 뼈가 억세서 잘 발라먹어야 한다. 이 때문에 고흥 녹동에서는 '뻣센고기'라 한다. 여수에서는 군평선이를 꽃돔이라고도 부르고, 목포에서는 쌕쌕이, 통영엥서는 꾸돔이라고도 한다. 지역에 따라 딱돔(닭돔), 딱때기, 챈빗, 얼게빗등어리라는 이름도 있다. (226쪽)

소, 돼지, 닭. 인간에게 이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닭은 학용품을 사야 하는 아이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연필이 필요하면 달걀 한 개, 노트가 필요하면 달걀 두 개, 그리고 남은 알은 골망태에 모아두면 예쁜 병아리로 변신했다. (279쪽)


섬에 바람이 붑니다. 때로는 관광바람이나 개발바람이 붑니다. 섬에 바람이 붑니다. 때로는 '모든 아이와 젊은이는 도시로 보내자'는 바람이 붑니다. 아이도 젊은이도 거의 도시로만 쏠리는 오늘날 바람이 붑니다. 그렇지만 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예나 이제나 섬에 고요히 서서 섬살이를 '섬: 살이'로 꾸립니다.

갯것을 거두고, 바닷것을 거둡니다. 갯살림도 바닷살림도 모두 정갈하게 다스립니다. 바닷빛을 읽으며 물고기를 알던 섬살림이란, 바로 이 섬에서 아이를 낳아 돌보고 키우고 가르치고 얼크러지던 작으면서 예쁜 살림이지 싶습니다. 이 작으면서 예쁜 살림살이 이야기가 도톰한 책에서 새롭게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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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김준/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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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김준/가지


덧붙이는 글 <섬: 살이>(김준 글·사진 / 도서출판 가지 펴냄 / 2016.4.22. / 16000원)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yes24.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섬: 살이 - 느리고 고유하게 바다의 시간을 살아가는 법

김준 지음,
도서출판 가지, 2016


#섬: 살이 #김준 #섬살이 #숲노래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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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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