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향 이동이 활발한 나라일수록 선진국, 한국은?

[서평] 성공하는 문화의 비밀 <왜 그들이 이기는가>

등록 2016.05.25 10:16수정 2016.05.2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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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는 신분 상승이 가능한 게임이다. 가장 맨 앞에서 총알받이가 되는 폰(pawn, 장기의 졸)이라도 반대쪽 끝까지 도달하면 퀸으로 신분상승 할 수 있다. 졸은 끝까지 졸인 장기에 비해 체스는 신분상승이 비교적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특정한 국가나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 중에는 체스처럼 상향 이동이 가능한 문화가 있고, 장기처럼 상향 이동이 불가능한 문화가 있다. 미국처럼 개인의 성공과 욕구 충족에 집중하는 문화가 있고, 과거의 인도처럼 욕구 충족보다는 신분 제도와 운명에 일생을 맡기는 문화도 있다. 이런 다양한 문화 중 어떤 문화가 승리하고 어떤 문화는 그렇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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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이 이기는가, 클로테르 라파이유, 와이즈 베리 ⓒ 클로테르 라파이유, 와이즈 베리

<왜 그들이 이기는가>를 쓴 문화인류학 박사 클로테르 라파이유에 따르면, 문화는 각 국가와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어떤 문화는 다른 문화보다 더 빠르게 이동하고 적응한다. 라파이유는 국가가 사회 및 경제적 성장을 비롯해 국민의 행복을 증진할 기회를 얼마나 제공하는가에 중점을 두고 연구에 돌입했다.

그 결과, 국가가 국민들을 사회적으로 발전시키고, 목적의식을 갖고 행복하게 살도록 만드는 '상향 이동'이 각 국가 간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향 이동을 결정짓는 두 개의 열쇠는 생물학적 욕구와 문화이다.

생존(Survival), 성(Sex), 안전(Safety), 성공(Success)의 네 가지 생물학적인 욕구(4S)를 충족할수록 상향 이동 가능성이 높아진다. 라파이유는 생물학적인 욕구를 억압하고 포기하게 만들지 말고, 적극적으로 충족시키도록 돕고 성취를 느끼게 해야 상향 이동이 증대된다고 보았다.

각 나라만의 고유한 문화는 상향 이동을 저지하기도 하고 북돋기도 한다. 개인을 존중하고 자신감을 느끼게 하는 사회에 산다면, 이동성은 증대될 것이다. 반면, 정식 교육이 금지된 여자가 인구의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에서는 상향 이동의 기회가 파괴된다.

국가가 이런 생물학적 욕구를 더욱 충족할수록 상향 이동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우리는 이런 국가의 능력을 평가해 수치로 나타내는 방법을 만들어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 세계경제포럼, 헤리티지 재단, 월스트리트 저널, 유엔 등 여러 단체와 학자들이 제시한, 국가의 번영과 인간의 개발에 관한 기존의 다양한 평가를 수년 동안 면밀하게 조사했다. 이 지수의 목적은 사람들 스스로 벤치마킹을 하기 위한 것이다. - 서론에서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지만, 한편으로는 동물적인 본능이 아직 내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매우 강한 생존 욕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성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고, 안전한 곳에서 살고 싶어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고 성공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욕구를 Survival, Sex, Security, Success의 앞 글자 S를 따와서 4S라고 한다.


라파이유는 '파충류 뇌'와 인간의 4S를 연결짓는다. 뇌의 다양한 부분을 기능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파충류 뇌와 변연계, 대뇌피질로 구분할 수 있다. 파충류 뇌는 호흡, 체온 조절과 같은 신체의 중요한 기능을 관장하고 공격, 지배. 세력권 보호와 같은 본능적 행위를 담당한다. 변연계는 감정과 기억, 동기부여를 관장하며, 대뇌피질은 복잡한 정신 작용인 추상과 계획을 담당한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파충류 뇌다. 파충류 뇌는 판단에 있어서 다른 두 뇌를 제압하는 경우가 많다. 육체적 건강, 재정 상태, 친절함, 지성을 갖춘, 최고의 생존 기회를 자손에게 제공할 사람을 찾도록 하는 것도 파충류 뇌다. 한 나라의 문화는 이런 뇌 구조와 긍정적으로 반응하며 4S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가령, 한 문화가 네 가지 요소 중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그 문화는 인권을 존중하고 장려하는 문화여야 한다. 사회는 구성원의 복지와 건강에 관심이 있어야 하고, 신체적 학대는 처벌되어야 한다. 소수자가 전체에 위협받지 않고 통합될 수 있어야 한다.

'성'과 관련한 상향 이동이 활발한 문화에서는 학교에서 성교육을 진행하고, 피임을 권장하며, 가족의 의사 결정이 평등하게 이루어진다. '안전'을 보장하는 문화에서는 정의가 제도화 되고, 공권력의 부패가 용인되지 않는다.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호기심을 장려하고, 개인이 사후의 삶을 고대하기보다는 현재의 삶에 집중하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계급제도가 없어 사회적 진보가 가능하여야 성공과 관련한 상향 이동이 촉진된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업보나 별자리 때문이 아니라 유전자, 환경, 문화, 경험, 정신적외상 등의 요소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요소들을 선택할 수 없다. 특정유전자를 갖고 특정 문화에서 태어나고 또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러 사건들이 주변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책임지지 않고 모든 일을 우연이나 업보, 점성술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어느 정도 자유가 있으므로 우리의 행동에 책임져야 한다. 어떤 문화는 위험과 보상의 개념이 매우 명확하다. 그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이동한다. 사람들은 억압적인 문화에서 벗어나 상향 이동에 도움이 되는 문화로 향하려고 한다. -본문 204p

이 네 가지 요소를 잘 충족시키는 문화는 '생물 논리 지수'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다고 평가된다. 저자는 이 생물 논리 지수에 이동성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요소를 통합한 '문화코드'를 합산하여 라파이유-로머 이동성 지수를 도출한다. 이 라파이유-로머 지수는 0부터 1까지 존재하며, 지수가 1에 가까운 문화는 상향 이동의 최고 위치에 오르도록 장려하는 문화임을 뜻한다.

라파이유-로머 지수가 높은 국가들은 통상적으로 선진국으로 여겨지는 스위스와 캐나다, 미국과 싱가포르다. 한국은 생물 논리와 문화 코드 값에서 비교적 고른 평가를 받아 17위권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의 라파이유-로머 지수는 0.72로, 0.71인프랑스보단 높지만 0.75인 영국과 이스라엘보단 낮다. 성공에서는 좋은 점수를, 생존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은 탓이다. 보다 구체적인 자료는 책 부록에 설명되어 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있었던 세력들의 흥망성쇠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이론이 동원되었다. 지리적 우열, 제도, 종교 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꼽혔지만 문화의 역할 역시 만만치 않다. 문화는 어느덧 제도와 경제력을 뒷받침하는 부수적 요소가 아닌 발전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았다. 저자는 국가가 더 발전하고 성장하려면 문화가 국민들의 욕구를 보장하고 상향 이동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도 상향 이동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왜 그들이 이기는가 - 성공하는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클로테르 라파이유.안드레스 로머 지음, 이경희 옮김,
와이즈베리, 2016


#클로테르 라파이유 #성공 #문화 #상향 이동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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