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볶음밥이 나오는 날은 밥을 굶어야 했다"

채식인 비롯한 소수자가 받는 차별과 편견

등록 2016.05.22 17:34수정 2016.05.22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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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먹기 시작한다면 다시 먹을 거다. 세상천지에, 요즘 고기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불만스러운 얼굴로 처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나 간단하잖아. 아버지 앞에서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장인이 고함쳤다. "무슨 얘기하고 있어. 어서 팔 잡아라. 정서방도."
-<채식주의자> 91p, (한강 작가, 창비)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 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대목이다. 꿈을 꾼 뒤 고기를 못 먹게 된 영혜에게 가족들이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고 하는, 강간과 별 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고기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는 영혜 아버지의 말은 나에게 별로 낯설지 않다. 1월 1일부터 채식을 시작해 이제 5개월이 다 되어 간다. 한국사회는 채식인에게는 너무나 불친절하다. 그 중 극히 '일부'를 소개해본다.

"채식한다고 살 안빠지니까 그냥 먹자"

대학생 최시루(19, 가명)씨는 채식을 한다. 많은 선배들과 교수님들이 오는 홈커밍데이 행사장소가 치킨 집으로 잡혔다. 시루씨는 과 동기들에게 "나는 치킨을 안 먹어서 그 행사에 못갈 것 같아"라고 했다.

남자동기들로부터 "너 다이어트 하냐? 채식한다고 살 빠지는 거 아니니까 치킨 먹자"는 소리를 들었다. 시루씨는 평소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때 고기 메뉴를 피해서 선택하는데 "독하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렇게 채식을 단순히 다이어트, 건강과 연관 짓는 일은 흔하다. 정민수씨(27)는 "채식을 하니까 말랐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는 채식을 시작하기 전에도 마른 몸매였다. 직장인 현아름(34)씨는 동물을 죽이는 것이 안타까워 채식지향을 시작했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다양하며, 그에 따라 채식 방법도 그만큼 다양하다. 동물의 권리를 생각하는 윤리적 채식, 고기의 무분별한 소비는 환경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생태적 이유에서의 채식 등 건강 이외 이유로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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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먹는 치킨에 사용되는 닭은 움직일 수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육된다. ⓒ 진일석


우리가 먹는 치킨을 만드는데 쓰이는 닭은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된다. 1마리당 사육면적이 아이패드보다 좁으며, 알을 더 많이 낳게 하기 위한 촉진제는 물론 조명을 통해 수면시간까지 조절한다.

좁은 우리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해를 하기 때문에 부리를 자르기도 한다. 돼지나 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기를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이런 공장식 축산은 동물들에게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하지 않으며, 전염병 등이 돌 때 집단 폐사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고기는 먹되, 공장식 축산으로 길러진 고기에 대해서만 반대하는 식습관을 지향하는 사람들도 있다.

"생명을 생각하면 왜, 식물도 생명인데 그건 생명윤리에 어긋나지 않냐?"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 비건(Vegan:육고기, 해산물 등 일체의 동물성 제품의 섭취는 물론, 동물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식습관) 채식을 했던 이주나(24, 가명)씨는 그 시기에 "그럼 식물은 왜 먹냐? 식물은 생명 아니냐, 안 불쌍하냐?"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풀만 먹는 윤리적 채식주의자는 정말 위선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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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은 '비효율적'인 식습관이다. ⓒ SK Energy Company Blog


소고기 450g을 만들기 위해서는 곡물 7kg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한 조각의 고기를 먹는 것은 수많은 풀을 먹은 것과 같다.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에 따르면 소에 줄 곡물사료로 13억 명이 먹을 수 있다. 이만큼 육식은 비효율적이다. 국제 곡물재고량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GMO를 통한 생산력 증가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사실 육식소비량을 줄이기만 해도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는 문제다.

조심스럽지만 식물은 통점이 없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몸이 잘려나가도 아프지 않다. 하지만 동물의 경우 죽을 때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수반된다.

윤리적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동물과 식물의 생명의 무게가 같은데 식물은 어떻게 먹냐?"고 비판하는 사람의 논리는 모든 윤리적 실천을 위한 노력을 폄하하고, 자신들이 노력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한다고 비춰질 수도 있다.

"채식은 비싼 거 아냐?", "너 부르주아야?"

민서현(17)씨는 중학교 3학년부터 채식을 시작해 현재는 비건 채식을 지향하는 고등학생이다. 채식을 한다고 하면 '까다롭다고', '너 돈 많냐?'는 질문을 받지만 그렇지는 않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단백질 보충을 위한 식품을 챙겨먹거나, 신선한 채소 위주로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돈이 있어서 채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서현씨는 공장식 축산업에 반대하기에 채식을 한다. 균형 잡힌 식단은 아니지만 그는 채식이 '정치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채식을 지향하는 식단이 오히려 식비절감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정희영(21)씨는 채식을 지향한 지 5개월 정도가 됐다. 다손씨는 평소 대부분 외식을 했지만, 채식을 시작한 후 밖에서 먹을 것이 없어 집에서 직접 조리를 해먹게 됐다.

평소 35만 원 정도를 식비로 썼는데, 채식을 시작하고 15만 원 정도로 오히려 식비가 줄었다고 한다. 이렇듯 채식은 경우에 따라 식비가 줄어들 수도 있다.

"볶음밥이 나오는 날은 밥을 굶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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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인 인권 연구모임>을 소개하는 이권우씨의 영상 ⓒ 진일석


이권우(19)씨는 고등학교를 다니며 채식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도시락을 싸다가 '야자'를 하면서 도시락 싸기가 힘들어 급식만 먹기로 했다. 하지만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고, 볶음밥이라도 나오는 날에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야 했다고 한다.

권우씨는 녹색당내 청년조직인 청년녹색당에서 '채식인 인권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이와 관련한 주제의 모임은 국내 최초라고 한다. 이들은 학교, 군대 등에서 채식인에 대한 인권이 보장되지 않음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으며, 각종 활동을 계획 중에 있다.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생명체에 대한 윤리적 신념, 지속가능한 환경을 생각하며 실천하는 이들도 있다. '채식인 인권 연구모임'과 같은 움직임들도 있지만 한국사회는 여전히 채식을 하는 이들에게 불친절하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채식주의자는 꼭 채식주의자 뿐만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이들과 다른 여러 소수자들을 지칭한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나온 지 10년이 지났다. 이제 주변에서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볼 때 편견을 걷어내고, 그들의 가치관을 존중해줄 때다.
덧붙이는 글 <참고자료>

- Begun 2015년 2월호, 채식 수기<더 이상 핑계댈 게 없어 비건이 되다>, 이권우
- 청년녹색당 채식인 인권연구 모임 소책자
- <육식의 종말> 제레미 레프킨
- <채식주의자> 한강

해당 글은 영상으로 편집되어 타 매체에 중복기고 될 수 있습니다.
#채식주의자 #윤리적채식 #비건 #청년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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