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가 쓰러진 지 200일,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고, 처벌받지 않았다

[기고] 백남기가 믿을 곳, 이제 국회 청문회뿐이다

등록 2016.05.30 21:25수정 2016.05.3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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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민주노총, 전국농민회, 416연대 등이 참가한 4차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한 시민이 백남기 농민 관련 경찰 폭력을 규탄하는 모습. ⓒ 이희훈


5월 31일이면 백남기 농민이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맨 지 200일이 된다. 올해 9월이면 칠순을 맞는 그는 그 오랜 시간 동안 저 먼 의식 속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당신이 지난해 11월 13일에 뿌려 놓은 밀밭을 건너보고 계실까? 이 나이 든 농부는 무엇을 염원하며 서울까지 천리길을 올라왔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병원에 누워 있는 것일까?

2015년 11월 14일 서울 종로 한복판, 농민들은 농사짓고 살고 싶다고 외쳤다. 평생 지어왔던 나락농사를 계속 지으며 먹고 살게 해달라고 외쳤다. 생산비도 안 되는 쌀값 폭락을 막기 위해서 밥쌀 수입을 하지 말라고 외쳤다.

그날 전국에서 온 농민 3만 명이 모여서 외친 것은 단지 "농사짓고 살고 싶다, 제발 대통령은 그런 농민의 절박하고도 간절한 바람을 외면하지 말고 귀 기울여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무작대기 하나 들지 않고 죽어가는 농업을 상징하는 상여를 매고 상복을 입고 청와대를 향한 행진을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그런 농민들에게 거대한 차벽으로 응답했다. 살인적인 물대포로 응답했다. 가슴을 조준한 물대포는 가히 사람을 죽일 만한 살인무기였다. 경찰의 물대포 가격으로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고, 그 위로 다시 물대포가 쏟아졌다. 구하러 간 시민들에게도, 안전한 곳으로 이송을 하는 중에도, 물대포는 계속 따라다니며 난사되었다. 그 이후 백남기 농민은 고향 보성땅의 밀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아직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 간부는 모조리 승진... 무슨 이런 국가가 다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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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포에 실신한 농민, 생명 위독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해 11월 14일 백남기씨가 경찰의 살인적 물대포를 맞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민들이 구조하려하자 경찰은 부상자와 구조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도 한동안 물대포를 조준발사했다. ⓒ 이희훈


농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쏜 경찰이 있다. 농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라고 명령한 책임자가 있다. 농민들은 불법시위꾼들이니 무조건 막으라고 한 책임자가 있다. 그 사람들을 찾는 것은 식은 죽 먹는 것보다 더 쉽다. 무수히 많은 언론사들이 당시 현장을 취재하였고, 법원에 증거보전신청을 하여 확보한 당시 살수차 CCTV영상이 있다.

책임 소재가 있으니 조사만 시작되면 모든 사실이 금방 드러날 줄 알았다. 하지만 11월 18일 검찰에 당일 진압을 책임졌던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 경비과장, 살수차 운영 경찰관등 7명을 형사고발을 하였음에도 책임자 처벌은커녕 제대로 된 수사조차도 진행되고 있지 않다.


경찰청은 오히려 11월 14일 시위 진압을 맡았던 주요 경찰간부들을 모조리 승진시켰다. 무슨 이런 정부가 다 있는가? 무슨 이런 대통령이 다 있는가? 무슨 이런 국가가 다 있는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는 정부, 국민의 생명을 도외시하는 공권력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사건발생 직후 12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생명과 평화의 일꾼 백남기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규탄 범국민대책위(아래 백남기대책위)'가 구성되었다. 대책위를 중심으로 11월 15일부터 서울대병원 앞에 농성장이 차려지고 지금까지도 농성장을 운영하고 있다. 6개월이 넘도록 매일같이 지역의 농민들이 상경하여 경찰청 항의방문, 거리홍보, 1인시위 등을 하고 매일 미사가 열리고 있다. 사건해결을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2월 보성에서 서울까지 17일간의 도보순례를 하기도 했다. 가족들은 지난 3월부터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하고 있기도 하다.

검찰고발과 국가인권위 진정, 경찰청 진정 등 법과 제도적으로 사건해결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으나 검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하고, 국가인권위는 검찰 고발사안이라 직권조사가 어렵다 하고, 경찰 또한 검찰 핑계를 대며 자신들이 약속했던 자체 진상조사와 징계 등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사과는커녕 자신들의 책임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들은 6개월이 지난 지금 아예 우리를 없는 사람 취급을 하고 있다.

이제 기댈 곳은 여소야대 국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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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청문회 촉구하는 백남기 딸 농민 백남기 딸 도라지씨가 지난 5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 개최를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그렇게 200일이 흘러갔다. 이제 가족들과 백남기대책위는 20대 국회에 청문회를 요구한다.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로 진상이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할 수 없다면 결국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건 정치권 밖에 없다는 간곡함이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정의가 바로 서기를 기대하며 국민들이 뽑아 준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 주어야 한다. 한 농민을 쓰러뜨린 가해자가 있고 책임자가 있는데 진상을 규명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민주주의의 후퇴이고, 사회정의의 후퇴다.

이미 농민들은 국가 공권력의 직접 폭력으로 두 농민의 소중한 목숨을 잃은 기억이 있다. 지난 2005년 11월, 여의도 농민대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곤봉과 방패에 맞아 죽임을 당한 전용철, 홍덕표 두 농민의 이야기다. 11년 전 정부의 대응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사건발생 후 즉각 국가인권위 조사가 이루어졌고, 한 달여 만에 공권력의 명백한 과잉진압이었고 국가에 책임이 있다는 권고가 내려졌다.

당시 정부는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노무현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하였고, 허준영 경찰청장이 살인진압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것만 보아도 우리사회의 민주주의와 법적 제도적 장치가 지난 10년간 얼마나 후퇴했는지 알 수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려는 국민들의 염원이 20대 국회를 여소야대의 구도로 바꿔 놓았다. 다행히 원내 야3당의 대표, 주요 국회의원, 당선자 등이 백남기 농민을 찾아와 가족들을 위로하고, 20대 국회에서 이 사건을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당론으로 청문회 개최를 결정한 정당도 나타났다. 국회법 개정으로 상시청문회가 가능해진 것도 우리에게 한 가닥 희망이 되었다.

20대 국회에서 백남기 농민에게 가해진 국가폭력의 진실이 반드시 밝혀지리라 믿는다. 그리고 국가공권력의 폭력으로 인한 희생이 더 이상 없기를, 공권력 사용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공권력이 국민을 죽일 수 있는 권리는 없다. 민의를 배반하고 무시하는 정부의 독주를 20대 국회가 제어하고 막아주길 바란다.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청문회 청원 서명하러 가기)
덧붙이는 글 필자는 백남기대책위 사무국장입니다. 5월 31일이면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지 200일이 됩니다. 하루속히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20대 국회에 청문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중입니다. 서명운동 동참과 6월 2일 오후7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국가폭력발생 200일 문화제'에도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백남기 #민중총궐기 #농민 #농업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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