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사춘기 소녀, 왜 방문을 잠글까

등록 2016.05.30 11:05수정 2016.05.3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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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야, 학교 가자."


이른 아침, 학교 가자며 찾아온 6학년 딸아이의 친구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짧은 기다림에도 웃고 떠든다. "넌 몇 시에 일어났니?" "이마에 여드름 났네! 난 턱에 났는데" "굼벵이는 먹어 봤니? 난 먹어봤는데 맛있더라". 조잘조잘 끝이 없다. 경쾌하고 밝은 지저귐이 좋다. 이건 친구들과 있을 때 모습이다.

엄마인 나와 있을 때도 가끔 톡톡 튀는 즐거운 목소리와 웃음을 지어 보이기는 한다.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걸그룹의 노래를 틀어 놓고 나의 출렁이는 뱃살과 늘어진 팔뚝 살에 도움이 된다며 억지로 자기를 따라 춤을 추란다.

어릴 때도 춤은 젬병. 46살 된 지금 나아졌을 리 없는 나의 춤에 Y는 배꼽을 잡고 웃어댄다. 내가 무슨 피에로인가? 그래도 허리를 뒤로 젖히며 까르르 웃는 소리가 좋아 더 억지 춤을 춘다. 남들 앞에서는 얼굴이 달아올라 절대 할 수 없는 짓이다. 이렇게 한바탕 막춤을 추고 나면 좋다고 안아주고 보너스로 뽀뽀도 날려준다. 그렇다고 매번 이런 분위기는 아니다.

6학년이 시작되고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여느 때처럼 아침 준비를 하고 있는데 Y의 버럭 하는 소리가 날라온다. "엄마! 지금 나 비웃었지!" "응?" 분명 한국어로 된 말인데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앞뒤 문맥도 없이 비웃었다니? "엄마가 지금 비웃었잖아. 다 들었단 말이야!" "엄만 그냥 달걀부침 하고 있었어." 아니라고 두어 번 말해봤지만, 분명히 들었단다. 내 웃음소리였단다. 미칠 노릇이다. 번뜩이는 Y의 눈빛을 보니 딱~ 야생동물이 사냥할 때 그것이다.


이럴 때는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변명일 뿐이다. "엄마가 미안해. 어서 밥 먹고 학교 갔다 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억울한 마음에 속은 울렁이고 어느새 두 눈이 뜨거워지려 한다. 내가 왜 미안하다고 해야 하지? 저 어린 놈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사춘기가 무슨 벼슬이라도 되냔 말이다! 나도 사춘기 지내봤다 이놈아!

사춘기가 무슨 벼슬이니?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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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문이 닫히면? 알 수 없는 공간이 된다. ⓒ maglitt


상황을 대강 마무리하고 학교는 보냈지만,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에 비참하다. 오후 4시, 학교에서 돌아온 Y에게 당시의 당혹스러웠던 심정을 말했다. 오전에는 어떤 말을 해도 씨알맹이도 먹힐 것 같지 않더니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

"죄송해요. 정말 들은 것 같았는데. 제가 잘못 들었나 봐요."

저런 쿨~한 대답은 아침에 좀 해주지. 이렇게 같이 잘 웃고 떠들다가 어느 순간 으르렁거리는 동물이 되는 시기. 이게 바로 사춘기다.

그런데 오르락내리락 하는 아이의 감정과 뜬금없는 행동보다 나를 더 힘들고 난처하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아빠와 똑~ 닮은 요놈이 얼마 전부터 신랑에게는 더 까칠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한 것이다. 어릴 때는 아빠랑 잘 놀았는데…. 둘의 성향도 비슷해 Y의 감정에 대해 신랑에게 자문하고 했건만 지금은 어째서 아빠를 양팔로 있는 힘껏 밀어내는 걸까?

신랑이 딸내미 얼굴이라도 보려고 노크를 하면 안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안돼요~" 다시 노크하면 좀 더 높은 톤으로 "안된다니까요! 엄마~~ 아빠 좀~." 일관된 Y의 대답 앞에 내게 던지는 신랑의 질문 역시 매번 비슷하다. "도대체 저 안에서 뭐한데?"

난들 아나? 대개는 춤추고, 그림 그리고, 노래 듣고 다른 무언가를 하겠지. 아이가 방문을 닫아 버리면 그곳은 알 수 없는 공간이 되어 버린다.

어쩌다 신랑이 아이를 안아보자고 하면 엉덩이는 엉거주춤, 뽀뽀는 입술을 볼에 살짝 대었다 떼는 정도. "야! 이게 안아주는 거냐? 그리고 뭔 뽀뽀가 이래? 아빠 에너지가 충전될 만큼 안아줘야지!" 이게 언제적 버전인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하던 아빠표 애교가 지금 먹힐 리 있나? 어쩌다 엉덩이를 토닥이는 날이면 Y는 방방 뛰며 그야말로 난리다. 아이고 둔감한 우리 신랑, 불쌍도 하지. 내가 엉덩이 만지지 말라고 말했건만 또 저런다.

"신랑님아, 어릴 때 똥 기저귀 갈아주고 샤워시켜 주고 했는데 Y가 징그럽다고 하니까 섭섭하지?"
"…."
"Y도 많이 컸어요. 우리가 알던 어릴 때 꼬마가 아니랍니다. 이제 가슴도 나오고 생리도 하는데 엉덩이 토닥이고 마냥 아기처럼 대하면 싫어하지. 나도 Y가 크는 속도에 적응하기 힘들더라고. 에고 돈 벌어오랴, 아빠 노릇 하랴, 피곤하겠다."

이후로 남편도 어느 정도 조심하는 눈치다. 그 후로 며칠은 조용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가족끼리 태릉스케이트장 가면 안 돼요?"

골절상을 입은 신랑은 아직도 절뚝거리며 가까운 곳을 왔다 갔다 할 정도다.

"글쎄, 아빠가 다 낫지 않아서 힘들겠는데."

순간 그 특유의 눈빛 광선을 날리며 아빠 몰아세우기에 나선 아이. "아빠가 술, 담배를 해서 그렇잖아. 그래서 더 심하게 다친 거잖아. 왜 내가 아빠 때문에 손해를 봐야 하는데! 아빠는 약속도 잘 안 지키고 내 앞에서 본을 보여야 하는데…." 어쩌고저쩌고...

모터를 달고 불만을 쏟아내는 놈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남편의 얼굴이 울긋불긋하게 변하고 있었다. 안간힘을 다해 간신히 참고 있는 것이 내게는 보이지만 Y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만하고 들어가."  

"내가 왜 들어가야 하는데!"라는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들어가기는 했네. 안 들어가고 버텼으면 더 못 참고 박박 소리를 질렀을 텐데 다행이다. 그날 밤, 나는 아이와 조금 긴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가 잘났든 못났든 Y는 아직 엄마 아빠 보호 아래 있어야 돼. 알고 있지?"

딸 아이가 고개를 살짝 숙인다.

"Y는 지금 어른이 될 준비를 하고 있어. 그래서 뇌가 엄청 커지는 중이래. 그러다 보니 뇌가 자기 역할을 다 못해서 네가 전에 말했던 것처럼 이유도 없이 짜증이 나기도 하는 거야. 그걸 알기 때문에 엄마 아빠도 최대한 Y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줬으면 좋겠다."
"알았어요. 짜증 내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헉, 이게 아닌데. 아이는 화, 짜증, 미움을 나쁜 것으로 생각하네. 너무 진지하게 말했나?

"사람은 천사가 아니야. 어떻게 짜증이나 화를 안 내고 살 수가 있겠니? 네가 화를 나쁜 것이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지 엄마는 지금과 다른 방법으로 '짜증 났다'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해. 어쩌면 사춘기란 그걸 찾아가는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살짝 어렵고 지루한 말인데 잘 들어준 Y.

"사랑해."

이마와 양 볼에 뽀뽀 도장 찍고 Y의 방을 나왔다.

인내와 수련이 필요한 시간

누군가 그랬다. 아이들도 무엇이 잘못인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굳이 윽박지르고 화내거나 협박하는 것으로 위협할 필요는 없다.

부모로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지식을 하나 더 가르치고 학원을 하나 더 보내는 것이 아니라 법륜스님의 말씀처럼 아이의 마음은 이해하고 그 마음을 효율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부모는 인내와 수련이 필요한 자리다.

그 후로도 신랑은 여전히 방문 앞에서 노크하고 Y는 엉덩이를 엉거주춤한 자세로 아빠를 안아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Y가 안된다는 말 대신 방문을 빼꼼 열고 나와서 얼굴을 비치고, 신랑의 엉덩이 두드리기가 멈춘 것이다.

덕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듯 부녀 사이를 오가던 불편한 마음이 지금은 편해졌다.

오늘 저녁에도 난 막춤을 출 거다. 세상에서 내 춤을 본 단 한 명, 바로 Y를 위해.  

"출렁출렁 엄마 뱃살. 늘어진 뱃살이 난 좋아~"
#사춘기 #부모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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