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구미 민심, 박정희 탄신제가 웬말

[박정희 기념사업 파헤치기③] 구미 시민이 본 박정희 기념사업 논란

등록 2016.06.25 15:44수정 2016.06.2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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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생가 옆에 위치한 박정희 동상 주말 오전임에도 방문객이 거의 보이지 않는 박정희 생가. 박정희 동상 앞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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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동상 좌측에 위치한 박정희 추모관 예정 부지 구미시는 역사 자료관 건립에 200억 원, 생가 주변 기념 공원화 사업에 102억 원을 들여 박정희 기념사업을 진행 중이다. ⓒ 이정혁


[박정희 기념사업 파헤치기①] 800억 새마을공원, 박정희 신격화의 끝판왕
[박정희 기념사업 파헤치기②] 박 대통령과는 하등 상관없는 '박근혜 오동나무'

나는 구미 시민이다. 10년 전에 구미로 이사 와서 직장 잡고, 결혼하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으니 어엿한 시민이라고 볼 수 있다. 가정을 꾸리고 애 낳고 살면 제2의 고향이 아니던가?

아이의 학교 문제로 근처의 대도시로 거처를 옮길 생각도 전혀 없고, 이변이 없는 한 구미라는 도시에서 늙어갈 것이다. 애향심이 차고 넘치는 편은 아니지만, 공기가 탁한 것 빼고는 큰 불만 없이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그럼에도 종종 외지인으로서 이질감 혹은 분노를 느끼는 일들이 발생하는데, 이는 구미라는 도시의 태생과 연관이 있다. 과거 논밭뿐이던 시골 마을을 고속도로의 방향을 틀어가면서까지 경북 제3의 도시로 만든 이가 있었으니 그가 다름 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그렇다. 구미라는 도시에서 박정희의 존재감은 가히 창조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이다. 오죽하면 현직 시장이라는 사람이 공식 석상에서 박정희를 '반인반신'으로 추앙했겠는가?

현직 구미 시장마저 '반인반신'이라고 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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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운동 테마공원-2 박정희 동상 뒤로 현재 조성 중인 새마을 운동 테마공원이 보인다. ⓒ 이정혁


박정희.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통틀어 박정희만큼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리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 말은 박정희가 어떠한 업적과 성과를 이루었든 간에 그에 필적하는 혹은 그 이상의 치적과 과오 또한 남겼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이 자리에서 그 세부적인 내용을 견주어보자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의 사후에도 꾸준히 지속되는 '맹목적 찬양 작업'이다.


2017년은 박정희가 태어난 지 100년째 되는 해다. 구미시는 박정희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을 '하면 된다'라는 믿음을 가진 것처럼 거침없이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까지 공개한 준비 기념사업들만 보더라도 뮤지컬 제작에 28억 원, 역사 자료관 건립에 200억 원, 생가 주변 기념 공원화 사업에 102억 원 등 가히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또한 2017년 완공을 목표로 한창 진행 중인 새마을 운동 테마파크의 총사업비는 871억 원이다.

이러한 기념사업들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첫째는, 시민들과 공감대 형성이 전혀 되지 않은 일방적인 사업이라는 점이다. 단발성 뮤지컬 공연에 28억 원의 예산이 기획된 것을 아는 시민들은 거의 없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거리로 나가 사업의 존재 여부를 알렸을 때 시민들의 반응은 황당함 그 자체였다. 단 3회의 공연을 위해 우리가 낸 세금 28억을 들이붓는다니(관련 기사 : 구미시 박정희 탄생 100주년 뮤지컬 제작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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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 조감도 박정희 생가 입구에 있는 주변 공원화 사업 조감도 ⓒ 이정혁


둘째는, 어려운 지역 경제는 안중에도 없는 '세금 낭비형' 사업이라는 점이다. 요즘 구미는 술렁이고 있다. 구미 경제의 양대 산맥이었던, S전자와 L전자 두 기업이 최근 생산 라인을 중단하고 인력 감축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공장 전체를 경기도로 이전한다는 얘기부터, 정규직 근로자들에게 고액의 퇴직금을 주며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하청업체들은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지인 중 일부도 이삿짐을 꾸려 이미 구미를 떠났다.

거기에 박근혜 정부의 탄생과 더불어 기대 심리로 인해 치솟던 부동산은 거품이 사그라들며 하향세로 돌아섰고, 구미 인근에 미분양 아파트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역 경제에 조금씩 구멍이 뚫리고, 점포 임대를 써 붙인 가게들은 점점 늘어난다. 민심은 흉흉해지고 있는데, 죽은 자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시민들의 피와 땀이 어린 세금을 펑펑 써대는 셈이다.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사업에 천문학적인 세금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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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운동 상징 조형물 박정희 생가 입구에 위치한 새마을 운동 상징 조형물 ⓒ 이정혁


마지막으로 가장 큰 문제점은, 진행 중이거나 진행 예정인 사업들이 수익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전형적인 보여주기 사업이라는 것이다. '박정희 탄생 기념사업이 미래를 위한 투자 가치가 있는 사업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시의 답변은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된 관내 다양한 문화자원과의 연계를 통한 관광 활성화'였다. 공단 도시를 관광 도시로 탈바꿈하겠다는 시장의 창조적 발상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요즘 박정희 생가에 방문객이 뜸한데, 주변 공원화와 테마파크 조성을 통해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해내겠다는 것은 누군가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그 누군가의 정체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드러난다. 박정희 우상화를 통해 후광을 입고, 이를 자신의 출세에 이용하려는 일부 정치인들이다. 그네들의 야망에 많은 시민이 놀아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잠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신격화하는 사람들을 몇 가지 부류로 나눠보자. 박정희의 개발 덕에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 박정희 기념사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 그리고 박정희를 정말 신이라고 믿는 사람들, 끝으로 박정희 라인에 줄을 서서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하루아침에 땅값이 수십 배가 올라 돈방석 위에 앉은 사람들에게는 박정희는 '신'이다.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고 치자. 기념사업에 쓰이는 사업비 일부를 인건비로 받아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정말로 박정희를 신이라 믿는 사람들, 굳이 이런 사람들의 의식 구조까지 파헤칠 여력은 없다. 문제는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사람들이다.

비정상적 운영에 반감... 구미가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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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지역 시민단체들은 지난 5월 25일 오전 구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박정희 전 대통령 100주년 기념행사 계획을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 조정훈


오랜 세월에 걸쳐 박정희 동상 앞에 무릎을 꿇고 조아린 이들은 배지를 달고 여의도에 입성하거나, 시장과 도지사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 곳이 구미라는 도시다. 새마을 깃발이 태극기와 동급 대우를 받고, 식당 곳곳에 박정희 사진이 걸려 있는 곳이다. 박정희라는 이름 앞에 누구 하나 반기를 들 수 없다. 그리고 기념사업의 결과는 그자들의 업적이 되어 선거용 공보물을 도배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젊은 인구의 유입으로 도시 자체가 젊어진 탓도 있겠지만, 비정상적인 시정 운영에 대한 반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얼마 되지 않는 토박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쉬쉬하던 사람들도 탄신제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발상과 세금 낭비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구미의 여론은 들끓고 있다. 박정희 찬양 뮤지컬에 28억 원이라는 시민들의 세금을 쓴다고 했을 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주변에 단 한 명도 없었다. 하물며 구미에서 나고 자란 40대의 지인들도 고개를 내젓는다. 박정희 마케팅이 약발을 다했다는 사실을 시장님만 모르고 있나 보다.

불통은 닮는다고 했던가? 어찌 보면 소통의 개념도 몰랐고, 필요도 없었던 박정희를 따르는 이들에게 그런 것들은 의미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시민들의 역치에는 한계점이 있고, 거의 끓는점에 육박했음을 부디 알아주기 바란다.
#박정희 탄신제 #박정희 생가 #박정희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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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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