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제일 좋을 때다" 그런 말 마세요

꿈과 직업 사이... 왜 우린 죽어라 해도 안 될까

등록 2016.06.01 14:42수정 2016.06.0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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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인문계 고등학생들은 3년 동안 25번 정도 시험을 보고, 한 번의 수능을 친다. 특히나 고3은 9개월 동안 열 번 시험을 본다. 결코 적지 않은 횟수다. 매달 있는 시험을 치르기 위해 학생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공부한다. 처음엔 이게 맞는 건 줄 알았다. 전 세계 모든 학생이라면 이럴 줄 알았다.

하지만 김용(세계은행 총재)가 '한국 학생들은 8시부터 11시까지 공부합니다'라고 했을 때, 라가르드(국제통화기금 총재)는 '어떻게 3시간 공부하고 그렇게 성적이 좋냐'고 반문했다. 오전이 아니라 오후 11시라고 말하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고 한다. 그들로선 상상할 수 없는 공부량이었을까.

이 대화를 들은 한국 학생들의 반응은 어떨까? 내 친구들은 이제 더는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들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학생들은 비디오 게임 대신 공부를 한다는 말을 했을 때도, 미국 만화영화 '심슨' 에서 호머가 '이 숙제를 다 마칠 때쯤이면 한국인으로 만들어 놓겠어'라는 대사를 쳤을 때도 우린 치열하게 공부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크면 다 알게 될 거라고요?

공부를 하는 이유는 너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야, 어렸을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제 꿈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의욕이 생기지 않아요'는 말은 전부 핑계로 정의하고, 그런 이유로 공부 게을리하지 말라고 했다. 나중에 생길 꿈을 위해 공부하라고. 공부엔 항상 수십, 수백 가지 이유가 붙어 우릴 채찍질했다. 난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현실은 씁쓸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벌써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친구들이 보인다. 저들이라고 꿈이 없었을까? 분명 다들 유치원에서 '제 꿈은 대통령이에요 과학자예요 연예인이에요' 했을 거다. 하지만 진로직업 검사를 했을 때도, 아이들이 직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에선 '개인의 능력'이나 '흥미'가 아닌 '안전성(직업을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가)'와 '보수'가 1, 2위를 차지했다. 누가 열 아홉을 이리도 참한 속물로 만들었는가.

어렸을 때 장래희망을 발표하고, 도화지 가득 채워 그린 것들이 무안할 정도로 현실은 꿈과 영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아이들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것만으로 꿈을 꾸기엔 선생님은 퍽 어려운 직업이 됐다. 선생님은 칼퇴근과 방학이 있고 연금까지 나오는 꿈의 직장이고, 현재 서울교육대학교(교대)는 서울대 사범대보다 커트라인이 높다. 


꿈 때문에 공부했는데...

고2때, 공부 깨나 하던 친구가 담임선생님과 진학상담을 했다. 삼십 분 후, 교실에 들어와선 계속 눈물을 흘렸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니가 원하는 꿈은 나중에 이루라고, 다 나중에 생각하라고 하시고  생활기록부 희망 직업란도 3학년때 바꿔 쓰라고 말씀하셨단다. 좋은 뜻으로 말씀해 주셨겠지만, 듣는 친구는 속상했던 모양이다. 대학 앞에서 나 자신한테 진실되지 못한 모양이 된다는 게 너무 쪽팔린다고 했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기엔 너무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다. 사는 건 고사하고, 말하기도 힘들다. 나의 커리어와 스펙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는 이상 다른 꿈을 만들어야 한다. 아마도 우리가 지긋지긋한 고삼 타이틀을 벗게 돼도 학점 전쟁, 취업난이 있을 거고, 취업 후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싸워야 할 것이다. "사는 거 힘들다"라는 말이 인사가 되버린 지금 1포 세대에서 삼포 세대, 이제는 N포 세대이다. 벌써 몇 개째 포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 포기할 것도 안 남은 지금, 우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나흘에서 닷새 정도의 중간(혹은 기말)고사가 끝난 날 아이들이 누리는 자유는 '밀렸던 잠을 자는 것'이 전부였다. 저녁엔 다시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나오는 친구도 보였다. 하지만 대여섯 시간의 잠은 시험 기간 동안 몸에 쌓인 카페인과 피로를 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한달 뒤면 있을 시험에 아이들은 다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책상에 앉는다.

하루 24시간 중 한두 시간 휴식이 사치인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져!'라는 말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다. 지금만 버티면 다 괜찮아질 거야! 우리도 앞날을 뻔히 아는데. 택도 없는 소리다. 뚜렷한 목표와 꿈을 가지고 대학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점점 없어졌다. 과는 신경쓰지 말아라. 대학 들어가서 전과해라. 간판 좋은 곳 들어가는 게 우선이다. 어른들, 선생님들의 압박 섞인 조언은 우릴 움츠러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많은 아이들에게 대학은 의미를 잃었고 듣기만 해도 손이 덜덜 떨리는 대학 등록금은 계속 목을 죄여왔다.

남은 건 빚이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서울 최상위권, 흔히 말하는 SKY를 포기하고 서울시립대를 간다. 등록금 차이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빚을 내서라도 SKY 가야지! 하기엔 보장되지 않은 미래가 무섭다. 더 이상 집에 폐 끼치는 것도 싫다. 서울대 나온 백수 많다라는 말을 들으면 힘이 쭉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나라에선 '너그들 노오력이 부족해서'란다. 우린 요만큼의 희망도 없이 살고 있다.

세상이 더 이상 '우리 땐 더 힘들었어. 나이 들어 봐. 힘든 것 투성이야. 너희가 제일 좋을 때야'라는 말로 우릴 설득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위로는 개미 눈곱만큼도 안 될 뿐더러 화까지 나기 때문이다. 젊음이 눈부신 그들에게 이십 대는 원하는 걸 모두 할 수 있는 나이로 보이겠지만, 현 20대들이 사는 세상은 원하는 걸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들 힘드니 유난 떨지 마!'가 아니라, 다들 힘드니까 유난을 떨어야 하는 거다. 참고 있을 이유가 없다. 잘못된 걸 바로잡으려는 우리의 인식이, 그리고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육 #취업난 #입시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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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진 곳을 왜곡 없이 비추고, 가려진 세상을 섬세하게 묘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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