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넣기 위해 두 시간 줄, 프랑스에 무슨일이?

[해외리포트] 프랑스 사회 혼란 초래하는 '노동개혁법안'

등록 2016.06.03 10:49수정 2016.09.1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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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가 요즈음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강압적으로 시행하려고 하는 노동법 개혁안에 저항하기 위한 데모 시위가 지난 두달 동안 계속됐다. 또 SNCF (철도청)과 RATP (지하철)의 파업에 이어 정유소 파업까지 이어져 수많은 프랑스인들은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2-3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례적인 풍경도 연출됐다.

위기를 야기하고 있는 노동개혁법안

올 2월, 프랑스 좌파 정부에 의해 노동법 개혁안이 제안되자 많은 프랑스인들이 불만족을 표시했다. 그 첫 신호탄으로 며칠 후인 2월 18일 이 법을 보이콧 하자는 "Loi travail, non merci (노동법, 사양하겠소)"라는 제목의 청원서가 뿌려졌다. 3일 후에 32만 명이 이 청원서에 사인을 했고, 2주 후에는 1백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인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민들의 저항의식이 공식화됐고, 연이은 데모행렬이 이어지게 된다.

노동법 개혁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현재 10시간인 하루 최다 근무시간이 12시간으로 연장, 주당 48시간이 60시간으로 연장 ▲ 근무외 수당 지급방침 변경 ▲ 해고 요건 완화 ▲ 부당 해고직원에게 지급하는 노사분쟁 조정위원의 비용 지급 한도 결정 등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근로자들은 이전보다 더 낮은 임금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프랑스의 높은 실업률을 낮춘다는 명목 하에 (5월 19일자 'INSEE'(인세) 조사에 의하면 현 프랑스 실업률은 10.2%이다) 이루어지고 있지만 실은 기업주에게 더 많은 행동의 영역을 넓혀주고 기업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다.

이 노동개혁법이 체결되면 고용주의 노동자 해고가 더욱 용이해져 프랑스인들의 직업 보장이 위태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고 있는 프랑스인들의 생계수단마저 보장할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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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일 데모 현장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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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it Debout (밤을 서서 보내자). 서민집회 광경 ⓒ 한경미


정부에 대항하는 대규모 첫 반대시위는 3월 9일에 일어났다. 이 후 3월 17일, 24일, 31일에 계속해서 시위가 이어졌다. 31일 데모에는 고등학생과 대학생까지 가담했고, 170개의 고등학교의 출입이 봉쇄됐다. 

또한 파리의 공화국 광장에서는 "Nuit debout (밤을 서서 보내자)"라는 이름의 시민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 집회는 스페인에서 일어난 시민집회 'Les Indignes (성난 자들)'에서 유래된 것으로 처음에 이들은 각자 침낭을 갖고 와서 광장에서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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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광장에 모인 텐트촌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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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it Debout" 플레카드가 보인다 ⓒ 한경미


4월 초의 프랑스 날씨는 거의 겨울날씨와 비슷하다. 밤에 무척 춥고 종종 비가 내리기도 했다.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용감한 일부 젊은이들은 광장에서 밤을 지새웠는데 새벽 6시가 되면 경찰에 의해 강제로 해산됐다. 결국 이들의 밤새우기는 파리시청에서 불법으로 인정되어 2-3일만에 해체됐다.

신자본주의에 대항하고 돈없는 사회를 건설하자는 기치 하에 이들은 매일 오후가 되면 공화국 광장을 점령했다. 이들은 밤 늦게까지 토론의 장을 열고, 무료식당, 무료 도서실 등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들의 모임을 지지하는 의도에서 때로는 수백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등장해 즉석에서 대형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또한 사회적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다. 이들은 'aperitif(반주)'를 마시자고 마뉴엘 발스 국무총리 집을 쳐들어 가기도 했으며 엠마뉴엘 마크롱 내무부 장관 집도 기습하려다가 경찰에 의해 제지되기도 했다. 이 시민집회는 4월 5일부터 렌트, 낭트, 툴루즈, 리용 등 다른 대도시로까지 번졌다. 

처음에 노동개혁법 반대로 시작된 프랑스인의 저항이 이제는 프랑스 사회당 정부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2개월 동안 파리의 공화국 광장에서 프랑스의 봄이 힘들게 꿈틀거리며 몸부림을 치고 있어도 좌파 정부는 끄덕하지 않았다. 우파정당의 반대와 일부 사회당 일원들이 지금 좌파 정부가 실행하려고 하는 노동법 개혁은 우파 정부도 실행하지 않은 정책이라며 반기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마뉴엘 발스 국무총리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며 버티고 있다. 

긴급명령권 발동해 통과시킨 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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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씨앗과 화분 받아가 ⓒ 한경미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는 지난 5월 12일 '49-3'이라는 헌법에 규정된 긴급명령권을 발동해 노동법 개정안을 각료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프랑스인들의 반발이 심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연일 데모 시위가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경찰들과 크고 작은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은 데모 행렬에 마구잡이로 최루탄을 퍼붓고 있어 시위대는 마스크와 물안경으로 무장하고 레몬즙을 눈에 발라가며 저항 중이다.

일부 시위대는 은행이나 대형 슈퍼마켓, 페라리 등 고급자동차 판매장 등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상점의 유리창을 깨는 등의 과격활동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긴급조치의 일환으로 5월 16일 다음날 예정된 시위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일부 과격 시위대의 집까지 찾아와 데모금지 영장을 발부하기도 했다. 여론이 들고 일어나자 하루만에 철회하고 구속된 10명 중 9명을 석방했다.

5월 17일에는 장거리 트럭운전사들이 파업에 가담하면서 정유소, 원자력 발전소 등 다른 영역에까지 파업이 확장됐다. 프랑스 최대의 정유소인 르 아브르 정유소는 며칠 전 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가 있고 르 아브르 항구에는 기름을 싣고 들어온 외국 배들이 며칠째 정박해 있다. 이들은 파업이 끝나기만을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5월 31일에는 철도청의 파업이, 6월 2일에는 지하철의 파업과 데모행렬이 예정되어 있다. 또한 6월 10일부터 '유로 2016 (유럽축구 선수권 대회)'이 파리에서 열릴 예정인데, 만약  정유소 파업과 지하철, 철도 파업이 이때까지 계속되면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저항가들은 정부가 노동법 개혁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6월 내내 파업을 지속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런 프랑스인들의 분노와 저항 앞에서 프랑스의 정계가 어떻게 반응할지 그 추이가 주목된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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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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