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안 부결' 스위스가 부러운 이유

[주장] 복지를 '의무' 아닌 '시혜'로 바라보는 대한민국, 안타깝다

등록 2016.06.07 09:28수정 2016.06.0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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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버스 정류장 앞에 붙어 있는 국민투표 포스터. 스위스는 5일 기본 소득 외에도 연방정부 안 5건을 대상으로 국민투표를 했다. ⓒ 연합뉴스


지난 5일 나라 밖 스위스에서는 아주 의미심장한 국민투표가 진행됐다. 이 소식은 국내뿐만 아니라 유럽과 북미 등 서방국가에서도 앞다투어 보도가 됐다. 기존의 복지체계를 허무는 혁신적인 복지 시스템의 구축 여부가 이 투표에 달려있기 때문이었다. 또 이 투표는 스위스와 비슷한 실험을 추진하고 있는 세계 여러나라에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원대한 '이상'은 결국 냉정한 '현실'의 벽을 뛰어 넘지 못했다. 직업, 수입, 연령 등과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매달 2500프랑(약 300만 원)을 지급하는 스위스의 기본소득안이 국민투표 결과 77%의 반대로 부결된 것이다. 이로써 스위스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돼 오던 기본소득안은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가게 됐다.

스위스 국민투표로 다시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기본소득 제도'. 우리나라에서도 노동당이나 녹색당 등이 기본소득제를 정책으로 내놓은 적이 있지만, 대중적으로는 아직 생소한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재 스위스를 중심으로 핀란드, 네덜란드, 영국 등에서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을 준비 중이며, 브라질, 나미비아, 알래스카 등에서는 이미 부분적인 기본소득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기본소득 제도는 국가가 어린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일정한 소득을 조건없이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의 유무, 자산의 크기 등과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국가가 소득을 지급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복지시스템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신자유주의 폐해, 기본소득제를 불러오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다양한 세미나와 토론회를 통해 기본소득의 개념과 방향을 홍보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으며, <오마이뉴스>와 <한겨레> 등 진보 언론에서도 꾸준하게 관련 기사를 내보내고 있는 중이다. 또한 서울시의 청년수당 정책, 성남시의 청년배당 정책 등 정치권에서도 부분적이나마 기본소득의 개념을 도입한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이처럼 기본소득 제도가 세계 각국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소득불균형과 불평등으로 압축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해있기 때문이다. 즉, 기업의 이윤 극대화 전략에 따른 낮은 임금과 고용불안, 기계화와 자동화가 초래한 일자리 부족과 실업문제, 갈수록 벌어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편차, 부의 독점과 편중이 야기시킨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인간 삶의 기본권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가장 만개한 국가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는 명확해진다. 600만이 넘는 비정규직(정부 추정), 극심한 빈부 격차,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 고용불안, OECD 최고 수준의 저임금과 임금 격차,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와 가계부채 등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를 신봉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이다. 불안정노동시장과 금융자본의 독점화가 파생시킨 갖가지 사회적 문제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따른 극단적 양극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는 등 대안 마련에 힘쓰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국민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에 맞서고 있는 시대적 흐름을 현 집권세력이 역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복지를 국가의 의무가 아닌 시혜라 철썩같이 믿고 있는 우파 시장주의자들이 집권하면서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그들은 집권 이후 보편적 복지라면 무조건적인 거부반응부터 보였고, '복지=공짜'라는 무시무시한 프레임을 줄기차게 가동시켰다. 그 결과 보편적 복지는 언제나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올랐고, 그 때마다 극심한 갈등과 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복지를 '공짜'라 받아들이는 사람들

우리사회에 태풍처럼 휘몰아쳤던 무상급식 논란과 무상보육 논란 등이 바로 이 과정에서 양산되었다. 10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문을 닫은 경남진주의료원, 손발이 묶여 있는 서울시의 청년수당 정책과 성남시의 각종 복지 정책 등도 마찬가지다.

주류언론의 측면지원 속에 '복지=공짜' 프레임이 맹위를 떨치게 되면서 국민의 당연한 권리인 복지가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양산하는 분쟁의 씨앗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사회에는 복지를 여전히 '공짜'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상당수의 국민들이 복지를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닌 국가의 시혜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OECD 국가 중 최하위의 사회복지예산을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복지를 확대하면 국민이 나태해져서 안된다는 망발이 집권세력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본질적인 이유가 된다.

전 국민에게 매달 300만 원 가량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내용으로 전세계인의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던 스위스의 국민투표는 결국 부결됐다. 이는 재원마련 방안과 기본소득 실시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 등에 대한 우려가 작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국민투표 부결에도 불구하고 이를 주도했던 스위스의 민간단체와 지식인 모임은 좌절보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하려는 다른 국가들도 이번 스위스 국민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실험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를 두고 아직도 소모적 논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나라와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다. 이 둘의 차이는 결국 신자유주의의 거침없는 침공으로부터 인간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회의 균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성찰하느냐, 못 하느냐의 차이에 있다.

위협받는 인간의 삶을 위한 대안 찾기에 집중하고 있는 세계 여러나라들과 달리 우리는 아직도 이념의 프레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들에게는 있는 '무엇'이 우리에게는 없다. 기본소득 실시를 위한 스위스의 국민투표가 부결됐음에도 그들이 여전히 부러운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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