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인 내가 더민주 지역위원장에 응모한 이유

[주장] 정치적 중립 우려된다면 단체장 정당공천제부터 폐지하는 게 옳아

등록 2016.06.08 16:55수정 2016.06.0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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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다.", "행정을 소홀히 할 수 있다.", "지방의원들이 제역할을 하기 어렵다."

기초단체장이 지역위원장을 맡아 보려 하자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 놓고 있다. 이 우려 속에는 현직 구청장인 필자가 더불어민주당 광주광역시 광산을 지역위원장에 응모한 행위를 불편하게 여기는 시각도 담겨 있다. 우려하거나 불편해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지금까지 지역위원장은 국회의원이나 국회의원에 도전하려는 이들의 몫이었다. 어느 정당이든 마찬가지다. 현직 단체장이 지역위원장을 맡는 게 익숙한 경우는 아니므로 우려하는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우려 속에는 정당정치에 대한 이해부족, 그리고 정치환경의 변화를 원치 않는 기득권 보호 논리가 담겨 있다고 본다.

단체장의 '정치적 중립'은 지위와 권한을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 개인이 갖는 시민권·당원권까지 포기하라는 요구는 아니다. 때문에 정당법에도 공직선거법에도 단체장이 당직을 맡으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단체장은 정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한다. 임기 중에도 정당 소속은 그대로 유지되며 정당활동도 허용된다. 정당의 이름을 내세워 주권자의 판단을 구하고, 그 정당의 이름으로 지자체 일을 하고 있는 마당에 소속 정당 안에서 당직을 맡는게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 정치적 중립이 그토록 우려된다면 단체장 정당공천부터 폐지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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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자료사진). ⓒ 연합뉴스


필자의 경우 광주광역시 광산갑과 광산을 지역구의 지역위원장 직무대행을 동시에 맡은 적이 있다. 지난 4·13 총선을 앞두고 지역위원장이었던 김동철·권은희 의원이 탈당해 '사고지역구'가 되어서다. 그런데 총선이 끝나자 단체장이 지역위원장을 맡는 건 곤란하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다.

단체장이 지역위원장 역할을 하면 "행정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발상이 사실은 굉장히 놀랍다. 국회의원이 지역위원장을 맡는다고 해서 누구도 "국정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는다.


선거를 통해 단체장을 뽑는 이유는 행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다. 민주적 통제는 본질적으로 정치적 통제라는 말과 같다. 그래서 단체장은 행정가 이전에 정치인이고 정치인이어야 한다.

공적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주권자의 요구에 따라 민주적으로 배열하는 것이 단체장의 역할이다. 단체장이 지역위원장을 겸임하면 주권자의 요구를 더 잘 수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반대로 가지는 않는다.

지역위원장이 공천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단체장을 견제해야 하는) 지방의원들이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시스템 공천은 어느 당보다 진화했다. 지역위원장이 마음대로 공천권을 행사하는 시대는 지났다. 백보를 양보해 지역위원장이 공천권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 권한에 대한 접근권은 평등해야 한다. 유독 단체장에게만 접근을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같은 당 소속 단체장이라고 해서 지방의원들이 견제 역할을 게으르게 할까? 다른 지역은 어떠한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광주에서 그러한 풍경은 본 적이 없다. 지방의원들이 제역할을 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은 그 분들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지역위원장이 되기 위한 다섯가지 요건

통상적인 우려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지역위원장 자격' 관련 몇 가지 입장을 더 보태고자 한다. 다섯 가지로 요약해 말씀 드리겠다.

첫째, 당원이면 누구나 당의 역량 강화에 기여할 권한과 의무가 있다. 지역위원장은 평당원에서 국회의원까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직책이다. 정치적 위치에 따라 할 수 있거나 할 수 없는 기준을 둘 이유가 전혀 없다.

둘째, 지역위원장은 법정기구가 아니다. 당의 지역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임의적 단위'일 뿐이다. 혈세를 지원 받는 것도 아니고 당원이나 지역정치인에게 어떤 행위를 압박할 강제력도 없다. 권한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직위이다.

셋째, 지역위원장은 말 그대로 '지역'위원장이다. 지역을 잘 알고 지역에서 당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인사가 맡는 게 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체장을 포함해 지역정치인이 맡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해 왔다.

지금까지는 국회의원이나 국회의원이 되려는 자가 지역위원장을 맡아 왔다. 그것은 '수직계열화'한 우리의 정당정치 문화가 만들어낸 '관행'에 불과하다. 익숙해서 자연스러워 보일 뿐, 절대적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넷째, '국회의원=지역위원장' 구조에서는 지역의 정치자원을 국회의원이 사적으로 동원해 왔다는 현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 당력이 전국의 당력에 합산되지 않고 해당 지역구의 국회의원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지역위원장은 당원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누구라도 도전해서 당원의 선택을 받아 지역위원장 역할을 하면 된다.

다섯째 '국회의원=지역위원장' 논리는 전형적인 중앙정치 중심주의이다. 다른 당, 다른 지역은 언급하지 않겠다. 호남정치, 호남 내 더민주 정치가 이처럼 추락해버린 데는 권한은 마음껏 행사하고 결과는 책임지지 않는 중앙당의 문제가 컸다.

그래서 호남의 더민주 지역위원장이 해야 할 첫 번째 임무는 지역에서 더민주의 당력을 복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같은 특수한 사정을 감안한다면 지역정치인이 지역위원장을 맡는 게 더 현실적일 것이다. 더군다나 필자가 응모한 광산을 지역구는 더민주 국회의원이 없을 뿐 아니라 국회의원에 도전했던 분이 "광주정치를 떠나겠다"고 선언한 곳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하고자 한다. 단체장의 지역위원장 '곤란론'은 행정과 정치를 분리해서 보는 시각에 근거해 있다. 행정은 조직을 구성하고 운용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그래서 조직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행정이 있다. 기업에도 군대에도 법원에도 의회에도 언론에도 행정이 있다.

지자체의 역할을 '행정'이라고 여기는 건 국가주의 통치경험이 만들어낸 착각이다.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기 이전까지 시·군·구는 국가통치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하부 행정단위였다. 지자체 실시 이후에는 국가 사무를 위임받아 실행하는 행정 영역과 지자체가 자기결정에 따라 고유하게 진행하는 자치 영역으로 나누어졌다. 국가 위임사무도 지역의 사정에 따라 응용할 수 있다. 자치가 지자체의 본질적인 존재이유이며, 자치의 다른 말이 정치이다.

원론적으로는, 지자체에도 기업이나 군대나 법원이나 의회나 언론처럼 행정이 있을 뿐이다. 그 행정을 주권자의 의지 아래 두려고 정치과정을 통해 단체장을 뽑고 의회를 구성했다. 그 단체장을 행정가로 제한하려는 건 대통령을 행정가로 제한하려는 것과 같다.

단체장은 지역정치인이다. 지역정치인이 지역의 당력을 복구하고 키우기 위해 지역위원장을 맡으려는 건 자연스럽다. 호남 내 더민주의 처지를 보면 적극 권장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단체장의 지역위원장 응모를 우려하는 일부의 시각에서 어제의 경험에 갇힌 정치적 상상력의 현재를 본다. 실효성을 잃은 어제의 경험은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인 뫼비우스 띠와 같다. 거기서 빠져나오려면 띠의 한 부분을 자르는 수밖에 없다. 필지가 더민주 지역위원장에 응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민형배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구청장 입니다
#광주 #민형배 #더민주 #지역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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