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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예술대상에 빛나는 <동주>, 세상 수많은 몽규를 위해

[리뷰] 동주와 몽규와 데미안 그리고 다시 인간에 대한 영화 <동주>

16.06.08 15:04최종업데이트16.06.0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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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제5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대상은 <동주>에게 돌아갔다. <동주>의 이준익 감독과 송몽규를 연기한 배우 박정민이 포옹하고 있다. ⓒ JTBC


헤르만 헤세는 그의 저서 <데미안>에서 '새는 알을 깨기 위해 투쟁한다', '삶은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고 자신에게 가는 길의 시도'라는 표현을 책에 담았다. 이 표현들은 헤세가 인간과 삶의 대해 취하고 있는 관점을 보여준다.

왜 그는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되듯, 아기 새가 성체가 되는 과정이 아닌, 또 알을 깨는 데 성공한 '결과'가 아닌 투쟁이라는 '과정'에 주목한 것일까. 왜 그는 길을 통해 이르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뿐인 '길'과 '시도'에 주목한 것일까. 내 생각에 그 이유는, 헤세가 일의 성패 여부를 떠나, 인간을 살아가는 과정만으로도 경이로운 존재라고 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방황하는 청춘 그리고 반복

영화 <동주>의 포스터. 영화 <동주>는 윤동주의 영화이지만 동시에 송몽규의 영화이기도 하다. ⓒ 메가박스㈜플러스엠


영화 <동주>의 이준익 감독은 지난 3일 열린 '제5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이준익은 막대한 제작비와 화려한 캐스팅의 <사도>로 흥행몰이를 한 이후, 제작비 5억~6억 원의 단출한 영화인 <동주>를 통해 또다시 화제의 중심이 됐다. 개봉 당시 나도 이 영화를 보았는데, 강하늘의 내레이션과 흑백의 영상이 선사하는 담담하고도 묵직한 영화는 무척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고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영화는 저예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호평을 받았으며, 1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이준익과 송몽규 역의 박정민에게 대상과 신인 연기상을 안겨다 주었으니,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며 느낀 것이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동주와 몽규 등의 인물들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주위에 으레 있을 법한 청춘들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내가 영화에서 본 것은 우리나라 문학사에 길이 남을 시인, '윤동주', 혁명과 독립을 꿈꾼 운동가, '송몽규'라는 위인들 혹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가 아니라 그저 한 명의 청춘에 불과한 '동주'와 '몽규'였다. 나는 이들에게 우리의 모습을 느꼈고, 영화의 메시지 또한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늘날의 청춘들은 방황하고 있다. 법적으로 성인으로서의 나이가 한참 지났음임에도 독립은 물론이고 아직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진로조차 정하지 못한 학생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내가 무얼 하고 싶고, 뭘 배우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무턱대고 대학교를 진학하고 보는 청춘들, 그리고 기약 없는 방황들이 현실 속에 널브러져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시를 사랑하는 동주와 세상을 사랑하는 몽규는 서로 아끼기도,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시라는 매체는 의미를 전달하는데 모호하기 때문에 세상을 바꾸기에 부적절하다고 하는 몽규의 관념에 대해 동주는 '너도 한때는 이광수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느냐'고 비판한다. 그리고 몽규는 한 때의 실수였노라 변명한다. 이후에도 둘은 나아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방황을 반복한다. 일본의 탄압으로 간도로 이주하고, 창씨개명과 심해지는 탄압을 피해 유학을 떠나며, 혁명과 독립을 위해 중국과 일본 등지를 방황한다. 이들은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사력을 다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미래는 불확실하며 어둡기만 하다. 끝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옥살이와 죽음이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미처 알았을까.

동주가 청춘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영화 <동주> 속에서 방황하는 청춘들처럼, 우리네 청춘들도 역시 방황하고 있다. 영화는 그렇게 현실의 청춘을 안는다. ⓒ 메가박스㈜플러스엠


나는 시대와 시대정신만 달랐을 뿐, 영화 내내 방황하는 이들과 이를 지켜보는 우리는 모두 똑같은 인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동주와 몽규 역시 지극히 인간답고 인간다운, 한 치 앞길도 가늠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지녔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늘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좌절에 빠지기도 하는, 한없이 나약한 인간들 말이다.

그러나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지극히 인간다운 것이다. 내 미래를 알 수 있고, 어떠한 의심 없이도 살 수 있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신적인 존재일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라면 불안에 떠는 것을 비정상적이고, 피해야만 하는 속성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불안과 두려움은 어떠한 선택에도 뒤따르는 인간의 불가피한 결함이며, 이것 때문에 선택을 포기하고 주저앉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도 겪지 못한 치욕을 해방 후 노덕술에게 당한 김원봉,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이회영 일가, 그리고 친일을 하면 삼대가 흥하나 독립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는 자조 섞인 말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교훈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비록 불확실한 미래와 그리고 실제로 맞이한 미래가 후회스러웠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은 번복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기꺼이 투신한 안중근과 의열단처럼 말이다.

앞서 소개한 <데미안>의 구절 역시 이러한 의미에서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알을 깨야만, 그리고 신에게 이르러야만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알을 깨고 있는 그 자체, 그리고 신에게 나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뜻깊고 가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다만 우리는 나에게로 이르는 길을 묵묵히 걸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아니,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 마라. 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 그 길이 심각하게 꼬여있고 때론 돌아간다 하더라도 우리는 살아있는 이상 길을 걷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길을 가다 넘어지는 것이 두려워 걷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인간의 존재 의의는 다른 무언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의가 있다.

윤동주 역시 힘겨운 현실에 몸부림치는 청춘이었기에, 별 헤는 밤, 자화상 등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알게 모르게 불안함과 두려움 등이 묻어난다. 하지만 그런 점 때문에 그의 솔직한 시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애착 또한 많이 간다.

서시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이 시에서 불안 가득한 현실 아래 살아가는 그의 삶의 태도를 드러냈다. 그가 이 시에서 사용한 '없기를', '가야겠다'라는 표현들은 모두 확신보다는 불확실함을 전제로 한 소망에 가깝다. 내가 그에게 주어진 길이 무엇인지 모르듯, 그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리라 믿는다.

그가 시집의 이름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고 지은 것은, 그가 자연을 부러워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어떨 때는 놀랍도록 고요한 하늘이지만, 때론 폭풍우가 몰아치고 또는 강렬한 태양 볕이 내리쬐는 하늘처럼 한 치도 앞을 알 수 없는 속성이 가장 자연답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만 불안을 느끼는 것은 주체인 자연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이다.

일제강점기의 하늘이나, 대한민국의 하늘이나 모두 변함없는 하늘이기는 매한가지라는 사실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윤동주는 불안한 미래에 대해 저 자연과 같이 겁을 먹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담담 하고자 했던 소망을 자연에 담은 것이 아닐까.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 동경, 시, 그리고 어머니를 담아냈듯이.

지난 3일, 제5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대상을 수상한 <동주>의 이준익 감독이 수상소감을 밝히기 위해 무대에 나섰다. ⓒ JTBC


마지막으로 이준익의 수상 소감으로 글을 맺는다.

"송몽규처럼 우리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대에 살았던 아름다운 청년들, 또 지금 이 시대의 송몽규들에게 많은 위로와 응원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동주>가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

영화 동주 데미안 윤동주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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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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