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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힘을 지닌 그들도, 결국 핍박받는 소수자일 뿐

[리뷰] 소수자와의 공존을 위한 민주주의 그리고 정치, <엑스맨 : 아포칼립스>

16.06.08 20:16최종업데이트16.06.0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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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해 "우리가 여태껏 채택했던 모든 제도를 제외하면 최악의 정치 체제다"고 평했다. 그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완벽한 제도라고는 할 수 없다. 일단 의사결정 등에 있어 그리 효율적이지도 못하고, 다수의 선택과 합리적 선택이 꼭 일치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중우정치, 대중영합주의, 다수의 독재 등의 문제는 또 어떠한가.

그러나 민주주의가 최선의 선택이라고는 할 수 있다. 정부의 권력 남용을 제한하고, 국민의 주권을 보장할 수 있으며, 또한 잘못된 결정이 도출되었다 하더라도 정치권력에게 책임을 묻고 교체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재자의 폭정으로 인한 국가 파탄이라는 최악의 경우를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효율성에서 최고의 선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채택되고 있는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

<엑스맨> 시리즈의 차별점

<엑스맨>은 능력자들을 빌런과 맞서 세상을 구해내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로 그려냈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엑스맨> 시리즈는 리부트 이전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엑스맨>이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여타 히어로물과는 다른 <엑스맨>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엑스맨은 소수의 '주인공'들보다는, '뮤턴트'라는 불특정 다수의 능력자가 살아가는 사회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이전의 시리즈나, 리부트 시리즈 모두 히어로들이 빌런을 막는다는 틀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뮤턴트들이 받는 차별과 억압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그려내고 있다. 막역한 친구인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차별과 맞선다. 프로페서 X는 '자비에 영재학교'라는 기관을 세워, 뮤턴트들이 일반인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며, 매그니토는 극단적인 방법으로서 무력으로 체제를 뒤바꾸려 한다.

매그니토나 울버린처럼 멋있는 능력자들이 다양하게 나온다는 것이 엑스맨의 매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와 같이 능력자들을 빌런과 맞서 세상을 구해내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로 그려낸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동질감에서 느껴지는 친근함 말이다.

최근 개봉한 <엑스맨 : 아포칼립스> 역시 이전 시리즈와 구체적인 소재와 내용만 다를 뿐, 이와 같은 점은 유사하다. 자비에 영재학교와 '레이븐', 그리고 최초의 돌연변이인 아포칼립스는 각자 사회적 차별과 억압에 신음하는 뮤턴트들을 포섭하고 대립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작은 포 호스맨 등 각 인물들의 스토리가 중구난방인데다, 빌런인 '아포칼립스'도 위엄이 떨어지는 등 기대에 못 미치는 영화였다. 매그니토처럼 각 조연들이 어떠한 멸시를 받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였는지, 구체적인 사연들을 소개해주는 데 더 할애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만큼 비현실적인 현실

전근대 사회처럼 권력층과 힘의 논리로도 얼마든지 갈등을 무마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실제로도 민주주의는 저항권과 시민혁명에 의하여 등장하지 않았는가.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역시 <엑스맨> 속 사회의 인간들과 뮤턴트처럼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지 않아 벌어지는 비극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대표적으로 'IS'에 의한 테러가 아닐까 싶다. 중동에서는 종교적 갈등으로 내전이 벌어지고 있고, 외부로는 테러 등이 자행되고 있다. 게다가 내전을 피해 서방세력으로 달아난 난민들 틈으로 숨어든 IS는 자살 테러를 통해 전 세계를 공포에 빠뜨리고 있다.

종교적 차이로 인한 내전과 테러로 비화된 국제적 갈등. 이런 갈등이 현재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부터 비롯되었다. 급기야 이러한 불신은 선의의 피해자까지 발생시켰다. 바닷가로 떠밀려 온 시리아 난민 소년의 사진으로부터 촉발된 유럽의 난민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난민에 대한 보호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고, 유럽 각국은 나름의 난민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선의에 의한 정책의 결과는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동유럽 등에서는 난민의 유입을 막기 위한 유혈 사태가 벌어졌으며, 적극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인 독일 등에서는 많은 사회적 문제와 부정적인 여론에 휩싸였다. 급기야 난민 속에 섞인 IS 대원에 의한 자살 테러까지 벌어졌으니,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인 난민과 무슬림들에게 대한 시선이 고깝지 않으리라. 이것은 머나먼 이국에 살고 있는 필자조차도 능히 짐작되는 바다.

우리 사회 역시 사회적 약자로 인한 갈등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최근 강남역 살인으로 인한 남녀 갈등, 이공계 병역특례를 비롯하여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 아파트나 행복주택, 장애인 시설 등을 반대하는 님비 현상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더해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등에 대한 차별 등 전통적인 갈등까지 수없이 많은 문제 요소들이 산재해있다. 사회적 약자, 그리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들은 <엑스맨>과 같은 영화만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심각한 문제란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결책 : 민주주의와 정치

정치에 대한 정의는 제각각이겠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사회 내 갈등의 공론화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제시'라고 말이다. 민주주의는 처칠이 말한 대로 최고의 제도도 아니고 효율적이지도 않지만, 사회 내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는 최고의 수단이다. 전근대 사회처럼 권력층과 힘의 논리로도 얼마든지 갈등을 무마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실제로도 민주주의는 저항권과 시민혁명에 의하여 등장하지 않았는가. 힘으로 누르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다르다. 우리는 정부에게 주권을 양도하였기에, 비록 힘없는 자들의 목소리나 별 볼일 없는 갈등에 불과하더라도 얼마든지 공론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각 정당은 각기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고, 우리는 그것을 입맛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특정 정당의 정권 창출을 이뤄줄 수 있으며, 그것이 실패했다면 책임을 물어 정권을 교체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최대한 많은 국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을 도출할 수 있으며, 바로잡을 기회 또한 얻을 수 있다. 그리고 헌법을 필두로 하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가치를 통해 다수의 지배로 인해 사회적 소수자 및 약자들이 피해보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종교적 차이로 인한 내전과 테러로 비화된 국제적 갈등. 이런 갈등이 현재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부터 비롯되었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현재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촉발된 남녀 갈등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남녀 혐오라는 감정적 부분만 강조될 뿐, 사회 내 갈등을 공론화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민주주의의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와 국회, 정당은 물론이거니와, 이들과 동등한 제4의 권력인 언론마저도 혐오를 통한 갈등만을 부추기고 있다.

이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게 하기 위한 근본적 원인 진단과 대안 제시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피해자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이와 같은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치권은 적극적으로 민주주의 구현에 나서서 문제 해결에 힘써야 한다.

<엑스맨>이 주는 교훈

개인적으로 <엑스맨>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은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가 아닐까 싶다. 영화의 대략적 줄거리는 이러하다. 미래의 사회에서 뮤턴트들은 결국 사회적 차별을 넘어 학살 당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울버린을 과거로 보내 과거를 바꾸고 끝내 미래까지 바꾼다는 내용이다.

뮤턴트들이 학살이라는 위기를 맞게 된 이유는 인간과 공존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레이븐이 주요 요인을 암살하게 되고, 이로 인해 경각심을 느낀 인간들 역시 뮤턴트를 공존할 수 없는 위험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때문에 레이븐의 암살을 막으려 과거로 울버린을 보낸 것이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결국 상호불신과 혐오 감정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누가 먼저 불신을 하고 혐오를 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레이븐이 먼저 위협감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센티넬을 개발하게 된 트라스크 박사 등 인간들이 먼저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시작하든, 혐오라는 감정이 한 번 싹트고 나면 이후로는 걷잡을 수 없는 악순환에 빠지고 결국 공멸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상호불신과 혐오는 대부분 좋은 결과를 낳지는 못했다.

회의감에 휩싸인 과거의 찰스는 미래의 찰스와의 대화를 통해 인간과 뮤턴트의 공존에 대한 희망을 다시 얻게 되었으며, 이는 다시 인간을 불신하고 혐오하는 레이븐에게 전해진다. 찰스는 레이븐을 믿었고, 레이븐은 인간을 믿었으며, 결국 인간이 뮤턴트를 믿게 되는 선순환을 통해 공멸이 아닌 공존의 미래로 전환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우리 역시 무의미한 혐오를 멈추고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최적의 대안이 무엇인지를 찾는 건설적인 공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권과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올바른 민주주의와 정치를 구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존에 대한 믿음이 깨진 과거의 찰스에게 미래의 찰스가 건네는 말로 글을 맺는다.

"잠시 길을 잃었다고 해서 영원히 길을 잃는 것은 아니야."

막역한 친구인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차별과 맞선다. 프로페서 X는 '자비에 영재학교'라는 기관을 세워, 뮤턴트들이 일반인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며, 매그니토는 극단적인 방법으로서 무력으로 체제를 뒤바꾸려 한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엑스맨 민주주의 공존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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