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잠든 사람들, 난 그저 운이 좋았을 뿐

[포토에세이] 흔들리는 대한민국의 초상

등록 2016.06.10 11:45수정 2016.06.1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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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종로2가 노숙자들이 넘쳐나는 거리, 오로지 이들만의 책임일까? ⓒ 김민수


종로2가 종각역, 하루의 해가 아직도 남아있는 시간이었지만 드문드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잦게 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사연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각자도생의 경쟁사회에서 밀려났다는 점이다. 이제 더는 따라갈 수 없음을 알고 그 언젠가부터 삶의 터전으로부터 도망쳤을 것이다. 그렇게 거리의 노숙인으로, 익명으로 살아가야 겨우 연명할 수 있는 까닭이 있을 터이다.

나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나에게도 그들과 같은 처지에 놓일수도 있었던 순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용케도 피해 '그들'이라고 부르는 입장에 서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은 각자도생의 사회, 너무 각박하다. 어찌, 국가가 존재함에도 각자 개인이 알아서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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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종로 경쟁사회에서 추락한 이와 그 곁은 위태튀태하게 걷는 사람들 ⓒ 김민수


한 나라의 품격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는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일 터.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나라는 건강한 나라가 아니며,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구성원들은 자기보가 약한 이들에 대하여 폭력적인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큰 권력과 힘을 쥔 이들은 직접 폭력을 행사하기보다는 하수인들을 통해서 폭력을 행사하므로 고상해 보일 뿐이며, 그런 삶의 양식이 몸에 베었으되 오로지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이들은 '분홍 코끼리'같은 가면을 쓰고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사회적인 약자들을 향한 개인적인 '혐오'는 삶의 흔들림에 기인한다. 자기의 삶이 흔들리고, 자기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을 자기보다 약한 이들에게 전가함으로써 위안을 삼고자 하는 나약한 군상들에 의해 대다수의 사람은 무차별적인 폭력에  노출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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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종로 가장 낮은 걸음걸이로 걷기에 그의 삶은 더욱 치열할 것이다. ⓒ 김민수


어느 누구의 삶도 치열하지 않은 삶은 없다. 어느 누구에게나 '자기의 삶'이 가장 치열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을 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자기의 작은 슬픔이라도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보다 연약한 이들에 아픔에 대해서는 그리도 폭력적인 것일까? 왜 그들에게는 한 수 가르쳐주려는 '나도 겪어봐서 아는데'하는 오만방자한 생각들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것일까?

모두들 이 낯선 풍경이 익숙하다는 듯 무심했다. 군상 속에서 무심하지 않은 듯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눈빛 역시도 다른 이들에게는 무심해 보였을 것이다. 다들 그런 마음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야, 절망하지 않을 수 있다.

참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세상이라는 증거, 그것을 매일 보면서도 우리는 그런 마음을 키우지 못한다. 이 사회의 권력은 지속적으로 폭력적인 성향을 부추기며 서로서로를 증오하게 하여 자신들을 향한 분노를 제거하는 방법을 이미 완벽하게 터득했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농간에 놀아난다. 이것이 우리의 비극이 아닐까 싶다.

내 고향 서울이 이국땅보다도 더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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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명동 명동, 그곳은 이제 낯선 도시인듯 이방인들로 가득했고, 그곳에서 나 역시도 이방인이었다. ⓒ 김민수


명동은 내게 익숙한 곳은 아니다. 그래도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간헐적으로나마 명동에 나와 '이렇게들 살아가는 구나!' 곁눈질도 하며,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들의 다양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곳은 이방인의 도시가 돼버렸다.

그곳은 낯선 이국의 도시를 걷는 것보다 더 낯선 도시가 돼버렸다. 더 이상의 호기심도 품을 것이 없는 도시, 이미 걸었기에 새로울 것도 없는 도시, 나는 또 이곳을 단지 걷고 싶다는 이유로 나올 수 있을 것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명동뿐 아니라 이 나라의 곳곳이 남의 나라가 돼가고 있는 듯한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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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명동 이토록 공격적이고 비성서적인 내용이 버젓한 현실 역시도 우리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는 한 단편일 터이다. ⓒ 김민수


죽은 문자를 신봉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천국과 지옥은 무엇이며, 예수는 무엇이며, 종교는 무엇일까?

이 세상의 온갖 세속적인 복을 누리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죽어서도 그 모든 복을 충만히 누리는 것이 그들의 천국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 세상에서는 이룰 수 없는 세속적인 욕심을 충만하게 이뤄주는 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것이 예수가 가르친 복음이었던가?

그들은 열정을 가지고 공격적인 포교를 하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이 걸어가는 길이 스올(지옥)로 향하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 마치, 이 나라를 구원해 보겠다는 정치권력 같아서 마음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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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명동 인형처럼, 비현실적인 삶을 강요당하는 것은 아닌가? ⓒ 김민수


인형은 예쁘다. 그런데 사람이 저 인형과 같을 때에도 예쁠까? 바비인형을 닮았다는 여인의 모습이 예쁜 것이 아니라 괴기한 모습으로 다가왔던 것처럼, 인형은 예쁘지만 그를 그대로 빼닮고자 한다면 아름다움이나 예쁨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우리 모두에게 괴물이 될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과정에서 낙오한 이들은 거리를 방황하며 흔들리는 삶을 살아가고, 지금은 그들과 같지 않다고 안도하는 이들조차도 흔들리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은 아닌가?

낯선 도시에 선듯 모든 것이 낯설게만 여겨졌던 종로와 명동, 이 곳이 나의 나라인데 왜 이토록 낯선 것일까? 나는 왜 이방인처럼 그곳을 바라봐야만 했을까? 그 거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자 그 이유가 조금은 보인다.

지금 이 사회에는 어른이 없구나, 우리에게 삶으로 길을 제시하는 분이 없구나. 그래서 흔들리는구나.

#도시 #노숙자 #종로 #명동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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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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