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도 안예뻐, 그냥 살아" 이게 말이니 똥이니

"어머, 살 좀 빼"... 일상에서 마주하는 폭언, 이렇게 맞대응하자

등록 2016.06.12 16:04수정 2018.02.1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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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그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에펠탑이 아니었다. ⓒ pexels


한 달 전, 여행차 파리에 다녀왔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엽서에서만 보던 에펠탑도, 눈물 나도록 맛있었던 디저트도 아니었다. 프랑스어를 모르는 내가 한 청년에게 길을 물어본 순간이었다. 그의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You are so beautiful!"(당신은 매우 아름다우시군요!)

이 대화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말에 대한 내 대답이 참으로 한심하고 어이없었기 때문이다. 자동반사적으로 "No, No, No"를 연발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칭찬에는 무조건적인 거부 반응과 함께 "아니에요"라는 말부터 내뱉는 나. 대체 왜 그럴까. 왜 나는 그 순간에 쿨하게 "고맙다"고 대답하지 못했을까.

추정해보건대, 그 이유 중 하나가 부정적 메시지에 오래 길들여져 온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들어왔던 부정적 메시지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칭찬에 대한 면역으로 이어진 건 아닐는지. 이 글을 통해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생각보다 적(?)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쪄서 교복이나 맞겠니"...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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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 친척이어도 안부인사 속에도 폭력은 도사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물론 그 이전부터 그래왔겠지만,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중학교 입학 때였다. 교복을 사놓고 입학식을 기다리며 설레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 집안 행사에 참여했다. 중학생이 된다는 것을 축하한다는 말보다, 더 강렬하게 들렸던 말이 있었다. 한 친척이 "아유, 기인이 그렇게 살쪄서 교복이나 맞겠어? 교복 예쁘게 입으려면 살부터 빼야겠다, 야"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겐 별것 아닌 소리일지 모르겠으나, 한창 감정선이 예민할 시기에 들었던 그 말은 큰 상처로 남았다.


참고로 나는 일생을 통틀어 마른 몸을 소유해 본 적이 없다. 평균보다 큰 키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지만, 평균보다 많이 나가는 몸무게는 한국 사회에서 꽤 불편한 혹은 문제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그 이후에도 각종 가족 행사나 명절 때 친척들을 만나게 되면, 으레 인사처럼 듣는 말은 "못 본 사이 살이 더 붙었네!" "적당히 먹어, 키가 너무 크면 또 남자들이 안 좋아해" "남자친구 생기려면, 다이어트 좀 해야겠는데?"(애인이 있으면, 앞의 말은 "시집가려면"으로 바뀐다) 등이었다. 물론 스트레스 받고 속이 상했지만, 달리 반격할 말이 없었다. 반격할 생각보다는 "정말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고 이내 주눅이 들었다. 가장 충격적인 말은 친척 오빠에게 들었다.

"살 빼서 예뻐질 것 같으면 빼라고 하겠는데, 빼도 그다지 예뻐질 것 같지 않으니 그냥 이대로 살아."

뭐랄까. 어차피 이래저래 별로니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말은 날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후 그와 비슷한 말을 대학생이 된 뒤 한 선배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이전의 더러운 기분이 되살아나 말문이 막혔다. 역시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뱃살이 두드러져 보일 때마다 듣는 말

친척뿐만이 아니라, 한 집에 사는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누구보다 나를 걱정해주고, 생각해주는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가까운 사이인 만큼 쉽게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유아 시절부터 누군가로부터 귀엽다고 칭찬을 들으면, 언니와 엄마는 항상 농담처럼 "예쁘지 않은 사람한테는 예의상 그냥 귀엽다고 해주는 거야"라고 굳이 말해주곤 했다(이때부터 칭찬을 들어도 믿지 않게 됐나...).

신체적 변화가 일어나는 사춘기 시절엔 몸매 보정 속옷(가슴부터 엉덩이까지 한 번에 덮는 올인원 형태의 보정 속옷)을 입혀주기도 했다. 허리선과 가슴 등 한창 자랄 때 예쁜 모양이 잡혀야, 성장 후에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수영복을 연상시키는 이 무시무시한 속옷은 통풍도 잘 되지 않는 나일론 소재에 사방으로 철사같은 심이 박혀 몸매를 잡아줬다.

몸매를 잡는 건지, 사람을 잡는 건지 결국 온몸을 옥죄어오는 답답함뿐만 아니라, 소화장애, 땀띠까지 유발하는 통에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벗어던졌다. 하지만 이후에도 종종, 원피스를 입었을 때 뱃살이 두드러지게 보인다거나 하면, 엄마는 뱃살 지적 폭풍 잔소리와 함께 올인원 착용을 권했다. 최근 엄마에게 듣는 몸에 대한 메시지는 이렇다.

"그렇게 먹으니 살이 찌지" "뱃살이 곧 가슴 추월하겠는데?" "등판 더 넓어 보인다, 어깨 좀 펴고 다녀." "여름인데 살 좀 빼라."

이쯤 되면 보기 좋을 정도로만 다이어트하고, 현실에 적당히 순응하겠다는 마음이 들 법도 하다. 감량하고 더 예뻐지면, 솔직히 손해 볼 일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구차한 변명일지 모르나, 그러고 싶지 않다. 폭언 따위에 순응하는 것보다는 잘 대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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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치맥 치맥은 그냥 사랑입니다♡ 사진에 안보이는 맥주는 뱃속에. ⓒ 남기인


사실 무엇보다, 퇴근 후 치킨(난 닭 학살자다)과 먹는 맥주가 꿀맛이고, 좋은 사람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하는 식사자리가 행복하다. 나른한 오후의 바닐라 라테와 지치고 짜증이 날 때 어김없이 찾는 맥도날드 초콜릿 콘은 무진장 달다. 아, 요즘은 잠시 바닐라 라테를 끊고, 망고 밀크티에 빠졌다.

그대, 폭력적인 시선과 말에 순응하지 말라

일상의 행복을 포기하면서까지 폭력적 시선에 순응할 필요가 있을까. 대체 무엇을 위해, 왜 그래야 하는지 아직은 동기부여가 안 됐다. 지금도 옷방에 옷이 한 트럭인데, 날씬해져서 더 선택권이 넓어진다면 정말 파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들고! 누군가가 "뚱뚱한 게 자기합리화하고 있네"라고 한다면, 사실이다. 어쩔 수 없지 뭐.

사실 지금껏 풀어놓은 일화는 극히 일부분이다. 성별을 불문하고 몸, 얼굴, 패션 등 외모에 대한 압박은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늘 존재하며, 오히려 더 혹독하게 개인을 억압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굳이 가정에서의 일화를 부각한 이유는, 이 일상적인 폭언이 '가족'이라는 특별한 관계 아래, "다 너를 위한 소리"라는 명분 아래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은? 집 밖에서 듣는 것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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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엄청 좋아했던 바비인형 어릴 적 바비인형을 무척 좋아했다.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 길쭉한 다리의 이 인형엔 뭘 입혀도 예쁘게 보였으니까. 그리고 이런 생각도 했었다. "하루에 병아리 모이만큼 먹는다면 이런 몸매가 될 수 있을까?" ⓒ flickr


끝으로, 일상적 폭언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대응 방식을 소개하겠다. 너무 간단하다고 욕하지 마시라. 생각보다 실천하기는 어려우니까. 폭언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으면 그 '즉시' 불편함을 표현하고, 더 이상 하지 말라고 하면 된다. '무반응'은 비추천이다. 들은 사람에게 반응이 없으면 상대는 더하면 더 했지 덜한 소리를 하진 않으니 말이다.

일상적 폭언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는 건 내게 단순한 반항,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타인(가족 포함)의 미적 기준에 대항하려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언젠가 다시 파리에 가게 된다면, 그리고 그곳에서 "당신은 매우 아름다워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정말 쿨하게 "Merci!(고마워요!)"라고 답하고 싶다. 그런 순간이 오리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쓰다 보니, 엄마가 너무 폭력적으로 묘사됐는데…. 다른 부분에선 저를 무척 많이 사랑해주신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폭언 #일상 #다이어트 #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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