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오 공포'로 가득찬 한국, 기본소득이 해법 될까?

[주장] 스위스발 기본소득 논의... 공공성 확장을 위한 주춧돌, 진지한 검토 필요하다

등록 2016.06.10 16:07수정 2016.06.1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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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기본소득(Revenu de Base Inconditionne) 찬성 투표를 호소하는 포스터. 기본소득 덕분에 삶을 선택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 연합뉴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의 존엄한 삶과 공공적인 삶에의 참여를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The basic income must enable the whole population to live a dignified life and to participate in public life.)

스위스에서 실시한 기본소득 국민투표 제안문 중 나오는 문구다.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후자였다. '공공적인 삶에의 참여'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열풍을 넘어 비정상적인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공무원' 혹은 '공공기관'에 취업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윤추구와 상품거래 관계에 기반한 임금노동과 소비, 쳇바퀴 돌 듯 반복되고 있는 제한된 영역에서의 삶을 탈피해, 사회적인 관심과 공익의 실현을 위한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이다.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체(정치공동체)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이다. 또한 "모든 구성원의 적절한 삶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복지이고, 단순한 재분배정책이 아니라 사회적 생태적 전환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이행전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소위 '마을만들기' 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해왔다. 즉 지역사회 주민들이 자발적인 활동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 호혜성에 기반한 공동체를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우리사회의 공공성 확장에 기여하길 바랐다. 그러나 항상 걸리는 장벽이 있었다.

바로 "공공적인 삶에의 참여"가 매우 어려운, '다른 영역'을 상상까진 할 수 있지만 실천을 하기는 지극히 협소한 우리 사회의 현실. 각종 생계 불안에 따른 여유의 상실, 지극히 긴 노동시간으로 인한 일상의 실종, 실패를 보듬지 못하는 미흡한 사회보장제도... 특히 삶에서 시간과 자원을 내어줄 여유가 없는 가난한 서민들일수록 이러한 사회적인 참여는 더욱 어려웠다.

'선택의 자유' 없는 우리 사회

잠시 멈춰 서서 우리 주위를 둘러보자. '시장에서의 생산활동 및 임금노동'으로는 포착되지 않고 가치를 부여하지도 않는 유의미한 일거리들이 참 많다. 꼭 필요한 활동들도 도처에 있다. 예컨대 이웃들과 함께 친환경적으로 텃밭을 가꾸며 관계 복원과 동네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욕구, 직업노동으로는 조금 적게 벌더라도 최소한의 인간 존엄은 유지할 수 있는, 공동체와 더불어 사회 혹은 생태적인 공익 실현에 참여하며 살고자 하는 지향, 이런 삶을 원하는 사람에게 작금의 시장사회는 전혀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는다. '낙오'의 공포만을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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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옥상에 텃밭이?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351번지에 있는 15층 아파트 맨 꼭대기, 옥상에는 텃밭이 있다. 40세대가 텃밭을 가꾸는 이곳에선 지금, 배추와 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 정대희


공동체에 참여하는 활동 자체가 유의미한 노동이자 사회적인 역할로 작용할 수도 있다. 사실 우리사회는 그러한 관계망과 공공성의 영역이 너무 부족해져서 많은 사회문제와 비용을 낳고 있다. 서로를 의심하여 동네마다 CCTV를 설치하고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로 자원을 투입하는 거 보다, 사회적 관계의 형성 및 활성화를 통해 점진적, 그리고 궁극적으로 불신 불안사회를 넘어서는 전략이 더 근원적인 해법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이러한 필요를 유인해내지 못한다. 예컨대 서울의 동네를 걸어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생기는 편의점, 슈퍼마켓들, 우리 동네만 해도 반경 100m에 슈퍼마켓만 10여 개는 족히 된다. 출혈 경쟁 속에서도 생계를 위해서는 또 그 시장으로 비집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에 따른 것이겠지만, 이게 과연 우리 생활의 진정한 필요에 따른 것일까.

필요치 않은 생산과 소비는 이미 너무도 많다. 거짓 욕구를 부르는 생산과 지나친 소비를 조장하는 예는 부지기수다. 인적 물적 자원의 배분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이다. 이제는 다른 '일자리'를 상상해야 한다. 불필요하고 과도하게 시장에서 소모되는 자원과 재능과 에너지를 '공공적인 삶에의 참여"로 전환시키는 전략, 기본소득은 그 주춧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노동' 촉진하기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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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스위스 시민단체 '스위스기본소득'(BIS) 활동가들 ⓒ BIS 공식 홈페이지


기본소득은 '근로감소' 전략이라고 한다. 불필요한 생산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창의적이고 문화적인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자는 제안이다. '완전고용'을 전제로 설계된 복지국가 전략이 한계에 봉착한 지점에서 나온 대안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게으르게 놀고 먹자는 취지는 아니다.

임금노동뿐 아니라 다양한 노동(직업적 노동부터 지역공동체 활동, 예술적 창조, 시민참여, 돌봄 및 가사노동 등)의 가치를 인정하고 촉진해내자는 제안이다. 기존의 임금노동만이 인간의 자아실현을 위한 조건이 아니며 필수불가결한 노동의 형태도 아니라는 문제의식, 그리하여 이른바 '활동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비전이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논의와 시민사회의 성숙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대학 시절 사회복지를 공부할 때 처음 접한 이 개념이, 당시만 해도 급진주의자들의 이상적인 사회변혁 전략으로 치부되던 정책이 좌우를 막론하고 이토록 공개적인 논의석상에서 다루어지게 되다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대표적인 기본소득 이론가인 반 빠레이스 벨기에 루뱅가톨릭대 교수는, 이번 국민투표는 부결되었지만 "스위스 시민들이 보여준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와 상상력을 통한 헌신은, 전 세계의 기본소득 운동진영뿐 아니라 보다 자유로운 사회와 정상적인 경제를 위해 싸우고 있는 모든 이에게 따뜻한 감사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양질의 일자리는 필연적으로 줄고 있고, 특히 우리나라는 한쪽은 과도한 노동시간에 짓눌려 있으면서도 한쪽은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사회에서 배제되어 있다. 우리의 생활세계는 '먹고 사는' 공포와 불안으로 점철된 채, 이웃과 공동체에 관심을 쏟기는커녕 자기 자신의 존재마저도 잃어버리고 있다. 기본소득은 스위스를 위시한 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우리도 충분히 검토하고 논의해봐야 할만한 주제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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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입니다. stargazer@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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