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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에게 주어진 버거운 짐, 왜 대중은 그녀를 더 몰아세우나

[주장] 식지 않는 김민희·홍상수 스캔들 논란... 전례를 통해 살펴보는 여배우 잔혹사

16.06.23 16:36최종업데이트16.06.2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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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륜설에 휩싸인 홍상수-김민희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가 불륜설에 휩싸였다. 사진은 2015년 8월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 참석,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연합뉴스


드디어 터지고 말았다. 예전부터 흘러나온 배우 김민희와 홍상수 감독의 불륜 스캔들이 공식화되며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있다. 이 와중에 김민희와 홍상수 측은 긍정도 부정도 하고 있지 않다. 사태가 이 정도 되었으면, 아무리 미국에 체류하고 있더라도 본인들이 상황을 파악하고도 남았을 수준이다. 그러나 여전히 본인들의 공식적인 입장은 들을 수 없다.

그사이 기사는 계속 쏟아지고 있다. 홍상수 감독 아내의 입장을 인터뷰한 기사부터 그들의 관계의 진전 과정을 설명한 기사, 김민희 어머니와 홍상수 감독의 아내가 주고받은 메시지를 재구성한 기사 등…. 그들의 스캔들은 공식화가 된 후에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여배우에게 더 손가락질 했던 역사

김민희는 그동안 연기파 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를 착실히 쌓아 올려왔다. 연기력 논란이 일었던 노희경 작가의 <굿바이 솔로>를 시작으로 <뜨거운 것이 좋아> <여배우들> <화차> 등을 거치며 성숙했다. <연애의 온도>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아가씨> 등, 한 분야에 특정 짓기보다는 다양한 장르에서 도전하며 연기파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중이었다. 몇 차례의 열애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지만, 김민희에게 별다른 타격이 없었던 것 또한 김민희의 이미지가 스타보다는 배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륜 스캔들은 이 모든 것을 앗아갈 만큼의 파급력을 발휘하고 있다. 불륜은 양쪽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대중이 김민희가 짊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짐이 홍상수의 그것보다 더 커 보인다. '여배우'로서의 유명세와 그동안 김민희를 지지했던 대중의 실망감이 김민희 쪽에 더 초점이 모이게 하고 있다.

김민희의 잘못만으로 몰아갈 수는 없는 사안임에도, 이 사태의 주인공(혹은 책임자)이 김민희처럼 묘사되고 있다. 단순한 스캔들을 넘어서 한 가정을 해쳤다는 주홍글씨는 결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여배우로서의 삶이 끝을 맺을 수도 있을 만큼의 사안이다. 어디까지나 불륜이 개인적인 영역의 것이기에, 당사자로서는 다소 불합리할지 모른다. 지금 그것이 다수 여론이 요구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까지 여배우의 불륜이 다뤄진 사안을 보면 대중이 여배우에게 어떤 잣대로 단죄하는지를 알 수 있다.

1960년대부터 여배우의 간통은 왕왕 존재해왔다. 최초의 간통죄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것은 배우 조미령. 조미령은 1962년 간통죄로 피소된 후 "남의 남자 사랑한 죄밖에 없다"는 한 마디를 남겼다.

이후 더욱 큰 파장을 끌고 온 사건은 배우 김지미와 최무룡의 스캔들이었다. 최무룡의 아내였던 배우 강효실의 고소로 그들은 나란히 수갑을 차고 구치소에 갇혔다. 김지미와 최무룡은 자칫 배우의 삶이 끝날 수도 있었으나, 그 당시 충무로는 톱스타 의존도가 상당히 강했다.

당시 '한국영화인협회'는 이들에게 1년 동안 영화 출연정지를 내렸으나, 이미 김지미와 최무룡을 주연으로 한 영화들이 계약되어 있었던 상황이었다. 또한, 딱히 이들을 대체할만한 스타가 없었다는 것도 문제였다. 결국,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이들의 출연정지 명령이 부당하다"는 성명을 냈고, 이들은 강효실에게 거금을 위자료로 물어주며 영화인으로서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파급력이 향상될수록 연예인의 '성추문'은 훨씬 더 무거운 형을 받았다. 1984년 배우 정윤희의 간통사건은 정윤희의 은퇴를 결정지을 만큼의 파문을 낳았다. 당시 간통 상대였던 중앙건설회장 조규영은 "아내와는 관계가 이미 끝난 상황에서 정윤희와 만난 것"이라는 해명을 했지만, 그들에게 비난을 쏟아내는 대중의 분노를 막을 길은 없었다. 이 사건으로 정윤희는 조규영과 결혼 후, 연예계를 완전히 떠났다.

2002년 황수정의 사건 또한 간통에 대한 대중의 판가름이 얼마나 큰지를 시사한다. 청초하고 단아한 이미지로 사랑받던 황수정은 2002년 간통 혐의와 마약투약 혐의로 구속되며 사실상 연예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복귀 시도가 있었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매체가 다양화되었고, 특히 인터넷의 발달은 연예인 추문의 파급력을 높이는 기폭제가 되었다. 박철과 옥소리의 간통죄 공방 역시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끝을 맺었다. 그들의 사건은 간통죄 폐지에도 일정 부분 역할을 했지만, 이후 그들의 모습을 TV에서 보기는 힘들어지고 말았다.

간통죄 폐지됐지만... 대중의 요구는 더 가혹해졌다

2016년 현재 간통죄는 폐지되었을지언정, 대중의 뭇매는 훨씬 더 강력해졌다. 남녀 할 것 없이 성적인 추문에 연루된 연예인에게 대중이 내리는 선고는 잔혹하리만큼 냉담하다. 대중은 그들이 유명인으로서 대중에게 이미지를 팔고 그 이미지로 인기를 얻은 데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것이 지나칠 때도 있지만, 연예인 입장에서는 대중이 내리는 판단을 무시하기는 힘들다. 연예인에게 있어서 대중의 사랑을 더는 받을 수 없게 되는 것만큼 치명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사랑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대중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불륜'이라는 두 글자가 강조되는 한, 두 사람에 대한 파문은 당분간 식지 않을 것이다. 김민희에게 이런 대중의 판단을 뒤집을 무기를 가지고 있을지, 아니면 김민희가 결국은 불륜으로 연예계에서 사라진 추억의 스타가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전례를 살펴보면, 복귀한다 해도 절대 쉽지만은 않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민희 홍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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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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