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기를 성기라 부르지 못하고

[리뷰] 다큐멘터리 <소녀와 여자>가 처한 안타까운 현실

등록 2016.06.25 09:15수정 2016.07.11 15:59
1
원고료로 응원
'여성성기절제'(FGM: Female Genital Mutilation)는 그동안 '여성 할례'로 통용돼 온 여성의 외부 생식기 일부를 제거하거나 봉합하는 시술을 말한다. 여성을 고통스럽게 하고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는 이 악습은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됐지만 국내에서 제작, 개봉한 다큐는 <소녀와 여자>가 유일하다(6월 16일 개봉).

개봉 일주일째에 접어들었지만 세 자릿수 관객을 기록하고 있다. 2주차 개봉관 수는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따르게 된다. 독립 다큐멘터리라서 개봉관이 적고 홍보가 부족한 현실이지만 생식기, 특히 여성의 성기를 다룬 이 영화를 혹여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에 대해 글쓰기로 맘먹은 이유다.


여성 성기는 왜 터부시되는가

생계로 인한 일을 마치고, 관련자 몇 명과 조촐히 술을 마시던 중의 일이다.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다가 미세먼지가 기형아 출산율을 높이고, 생식기 이상을 유발한다는 내용을 언급했다. (공신력 1위라는 방송사의) 전날 뉴스를 인용한 것뿐이었는데, 모두가 일시에 굳은 얼굴을 했다. 동석한 여성은 당황했고, 남성들은 침묵으로 '여자가 그런 단어를 입에 담다니...'를 대신했다. 

금세 몇 가지 일들이 겹쳐 떠올랐다.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씨가 주최한 '보지그림 콘테스트'에 온갖 악플이 달렸고, 숙명여대 여성학동아리 SFA가 연 축제부스 '보지 좀 보지'는 학교의 검열로 'X지 좀 X지'가 됐다. 여성의 신체를 긍정적으로 돌아보자는 취지의 행사였다.

하지만 남성의 신체 일부에 관한 이미지(남근상 같은)는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을 만큼 '친근'하다. 여성의 '민감한 부분'이 거침 없이 소비되는 곳은 포르노 아니면 몰카에서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벗으면 '민폐', '성범죄를 유발하는' 것이 되고, 수동적으로 이용당할 때는 '허락되는' 아이러니함이라니(최근에서야 소라넷에 대한 조처가 이뤄졌다).

생리혈이나 여성의 성과 관련된 낱말에 사람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피칠갑 영화는 잘만 보면서, 무섭거나 낯설다고 에둘러 표현하며 밀치는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인지, 왜 여성에게만 재갈이 물려지는지는 관심이 없다.


앞의 일들은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이다. 일부 무지한 아프리카 소수부락에서 벌어지는 성기 절제술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여성의 말이나 행동에 대한 제약이 똑같은 맥락으로 몸의 일부를 제약하는 것으로 나타날 뿐, 근원적으로 다르지는 않다.

여성의 쾌락을 부정하고 남편/아버지의 소유물로 보기 때문에 여성성기절제가 이뤄지지만, 이를 소녀에서 여성으로 거듭나게 해주는 전통적인 의식이라는 주장은 여전히 대립하고 있다. 영화가 성기절제술과 할례라는 다른 표현을 맥락에 따라 사용하는 이유다.

영화는 열네 살 소녀, 아니타가 여성할례 의식을 치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카메라는 결코 소녀들의 성기 일부를 도려내는 장면을 응시하지 않지만, 다리에 흘러내린 붉은 피를 비춘다. 할례를 받은 소녀는 마을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집으로 향하고 아버지는 딸을 결혼시킬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한다. 조혼과 교육의 기회 박탈, 한 남자의 소유가 되어 조신한 아내로 살아갈 미래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일군의 소녀들은 할례를 피해 집에서 도망친다. 더 공부하고 싶고,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맘먹은 친구들은 우기가 되면 할례 반대 캠프로 간다. '할례를 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 쉼터로 향하는 소녀도 있다.

a

할례반대캠프 할례를 피해 도망나온 소녀들이 우기를 보내는 캠프에서, 성기절제에 대해 배우고 있다. ⓒ 인디스토리


김효정 감독을 비롯한 촬영 스태프들은 3년 동안 두 번의 우기를 소녀들과 함께 보냈다. 첫 해에 혼자 도망친 소녀가 이듬해 동생과 함께 캠프로 온 것을 봤지만 묵묵히 기록하는 것 외에 달리 손 쓸 도리가 없었다. 

"현지 조사를 하고 출발 전에 뭘 챙겨갈지 고민이 많았어요. 카메라 두 대와 장비를 제외하고 안 입는 옷들을 최대한으로 챙겨갔어요. 아이들하고 장터에 나가 옷을 팔아서 옥수수가루와 설탕, 빨래비누같은 생필품을 사줬어요. 열악한 기숙학교에서 한 달을 지내면서 돈을 아껴서 아이들 증명사진을 찍어서 인화해서 나눠주기도 했고요. 수료식 날 졸업사진을 선물한 셈인데 뿔뿔이 흩어지던 친구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어요."

사막을 가로지르다 만나게 된 소녀들

영화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던 김 감독은 '사막'이란 공간에서 전환을 맞았다. 연출부서가 아니라 제작팀 스태프로 잔뼈가 굵은 그는 영화 <무사>(2001) 촬영을 끝낸 후 운명처럼 '사막 레이스'를 접했고 네 개의 사막을 가로지르며 자신의 한계를 시험했다.

아시아 여성 최초의 '그랜드 슬래머'라는 영예를 안았지만 영화 <데저트 플라워>(2009)를 통해 사막에 사는 사람들 삶에 눈뜨게 된다. 할례를 피해 도망친 유목민의 딸로 세계적인 톱모델이 된 '와리스 디리'의 실화를 다뤘다. 사막 주변의 척박한 땅에서 사는 사람들, 특히 젊은 여성에 대한 부채감은 그를 케냐까지 가서 직접 영화를 찍어 감독이 되도록 이끌었다.

"17년 동안 상업영화계에서 일했고 프로듀서로 감독을 보조하는 일을 해왔어요. 이 프로젝트도 따로 감독이 있었는데 어느날 저에게 직접 연출하는 게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연출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이 문제는 제가 나서서라도 결과물을 내야 했어요. 영화를 완성한 지금도 상업영화 프로듀서와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어요. 관객분들이 공감해주시는 것만도 감사하고, 시간이 지나서 어떤 문제에 행동하는데 밑거름이 된다면 감사할 것 같아요."    

촬영은 2010년부터 2012년 초까지 150일 동안 이뤄졌고, 그만큼 엄청난 촬영분량과 싸워야 했다. 영화화되도록 마음을 모아 힘쓴 스태프들 때문에라도 도중에 포기할 수 없었지만, 6년이라는 시간은 숱한 시행착오와 제작지원에서 떨어지는 일로 점철되었다. 그 사이에 감독을 인터뷰했기에, 장편 다큐가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a

찬반토론 변화는 더디다. 불법이지만 여전히 할례가 자행되고 있다. 공론의 장에서 찬성과 반대를 이야기하는 과정을 거쳐 의식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 소녀와여자


"극장까지 찾아오는 관객들은 성기절제가 무엇인지는 아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양한 측면을 최대한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할례시술자들이 경제적 손실에도 더는 할례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점차 인식이 바뀌어가는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할례 부작용으로 죽거나 장애를 갖게 된 여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관객분들이 탄식하는 걸 들었어요. 화면 속 인물이 말로 설명하는데도, 자기 일처럼 아파하고 공감하시더라고요. 또 소녀들이 춤추고 웃는 장면에서는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어요."

영화는 할례를 반대하는 의료진, 정부 관계자, 시민단체 활동가의 이야기와 함께 법적으로 금지되었음에도 여전히 '전통은 옳은 것'이라 믿는 사람들에게도 귀를 기울인다. 빠른 기간에 근절할 수 없다 해도 여러 사람이 마음을 모으고 "할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소녀의 할례의식으로 시작한 영화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한 9명의 소녀들이 쉼터로 향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네들의 앞에 더 힘겨운 미래가 있을지 모르지만 먼 곳에서 보내는 작은 공감과 응원이 전해진다면, 꿋꿋하게 훌륭한 여자/어른이 될 것이라 믿는다. 성기절제 여부와 상관없이.  

"아프리카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달라요.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것은 가난과 기아가 아니라 늘 저를 보며 해맑게 웃고, 노래하고 흥에 겨워 밤을 새도록 춤추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었어요.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돌아가서 완성한 영화를 보여주고 싶어요. 영화를 본 후 소녀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이 보고 싶네요. 각자 마음속에 간직한 꿈을 이루기 위해 다짐하고 노력하고 있겠지요."

a

할례반대 캠프의 엘리자 "저는 꿈이 있어요. 아직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가족들의 강요를 피해 할례 반대 캠프로 도망친 열일곱살 엘리자에게 돌아갈 집은 없다. ⓒ 소녀와여자


아쉬운 점은, 영화에는 어른이나 전문가들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명쾌한 언어로 말하지 않더라도 성기절제를 하지 않고, 공부를 해서 자신의 삶을 꾸리고픈 소녀들의 열망은 고스란히 전해지고도 남는다. 세상에는 많은 영화가 존재한다.

즐거움과 재미를 주는 영화, 깨달음과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영화,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는 그 가운데 어딘가에 존재한다. 한 그릇에 우겨넣을 수 없는 것이 영화라는 매체의 다양성이자 매력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라도 이 현실을 공감하고 누군가 원치 않은 폭력적인 상황에 처하는 것을 반대한다면 만든 이들의 노고는 응답될 것이라 생각한다. 

저소득층 십대여성이 비용 걱정 없이 생리대를 살 수 있길, 더는 많은 여성들이 '정숙'이라는 강요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는 일에 망설이지 않기를, 또 힘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에 노출되는 일이 없어지기를 바란다. 김효정 감독이 꿈꾸는 세상도 성적 지향과 차이로 차별당하지 않는 곳이다. 
#여성성기절제 #다큐멘터리 #성차별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립, 하셨습니까>를 썼고 인권, 여성 분야와 대중문화 전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니, 소파가 왜 강가에... 섬진강 갔다 놀랐습니다
  2. 2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5. 5 '김건희 비선' 의혹, 왜 자꾸 나오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