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걸 위원장, 자네가 휴전선 철책을 잘라주게나

[가연(佳緣) ⑤-2] 6.25 한국전쟁 66주년을 맞으며

등록 2016.06.25 09:23수정 2016.06.3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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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군B-29 전투기들이 북한군 진지에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1950. 8. 11.). ⓒ NARA / 박도


노 훈장의 기쁨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

나는 자네와 저녁밥을 함께 나눈 뒤 열차를 타고 원주 내 집으로 돌아오면서 참으로 뿌듯함을 느꼈다네. 이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그 세 번째 즐거움이다"(得天下英才而敎育之三樂也)라는 맹자의 군자삼락을, 또한 노 훈장의 가슴을 벅차게 하는 큰 기쁨을 한껏 맛보게 했다네.

이번 만남은 서로 흉금을 터놓은 시간으로 나는 곁에서 자네의 내적 성장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네. 그새 36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자네의 과묵한 모습은 지난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네. 하지만 자네의 언행은 괄목상대로 내 눈과 귀를 몇 차례나 의심하면서 "젊은 후학들을 두려워할 만하다"라는 공자의 '후생가외'(後生可畏)를 절감했다네.

그날 밤 자네가 쏟은 한 마디 한 마디 말들은 사리 표현에 조금도 틀리지 않는 '적확(的確)한' 말들로 약간은 어눌했지만 한 치 흐트러짐이 없었네. 그러한 나의 칭찬에 자네는 "아마도 돌아가신 아버님이 임기응변의 화술을 물려주셨나 봐요"라고 쑥스럽게 대답했는데, 내가 듣기에는 자네 아버님의 달변보다는 자네의 약간 어눌한 눌변이 더 듣기에도 좋았다네.

사실 정치가에게 웅변은 가장 큰 무기지만 그건 구시대의 일이고, 이제는 절제된 언어로 특히 정곡을 꼭꼭 찌르는 정제된 언어, 특히 믿을 수 있는 천금 같은 지도자의 촌철살인의 한 마디가 백성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네. 사실 우리 백성들은 그동안 정치인들의 현란한 말에 너무나 농락당해왔다네. 그들은 입만 열면 애국애족을 말하고, 부정부패 척결을 외쳤지만 그 말들은 내공을 쌓지 않은, 정제되지 않은 말들로, 그동안 정치 불신만 키워왔다네. 사실 그런 정치인의 말들은 미세먼지와 같은 공해로 한낱 소음에 불과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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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 입은 백성들은 국군이나 유엔군이 지날 때면 태극기를, 인민군이 지날 때면 인공기를 흔들며 목숨을 부지했다(1950. 9. 27. 경인가도) ⓒ NARA/박도


솔직히 이제 내가 자네에게 들려줄 수 있는 말은 바닥이 난 듯하네. 그래도 내가 자네에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자네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으로 자네가 미처 체험치 못한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에 대한 체험담일 걸세. 사실 그게 선생(先生)으로서 후학에게 들려줄 가장 큰 임무가 아니겠는가. 일찍이 영국인들은 "체험은 최상의 스승이다"(Experience is the best teacher)"라고 말했다네.


[첫 번째 이야기] 책상에 그어진 선

나는 38선 일대에서 한국전쟁 전투가 한창 중인 1952년 4월에 경북 구미초등학교에 입학했다네. 내 고향 구미는 낙동강전선 최대 격전지 다부동전투 배후지로 한때 인민군 보급지 구미초등학교는 전란으로 거의 파괴돼 그때까지 미처 복구를 하지 못했기에 1학년 때에는 초가로 된 임시교실에서 배웠다네.

우리 학동들은 수수깡 벽으로 된 초가교실 맨 바닥에 가마니를 깐 자리에서 배웠는데, 필기를 할 때는 가마니에 엎드려 썼다네. 우리 학동들은 3학년 때부터 제대로 된 목조교실에서 2인용 책상을 지급받아 배우게 되었는데 그 책상을 지급받자 분필로 책상 가운데에 줄을 긋거나 칼로 홈을 파서 '38선'을 만든 뒤 학용품이 그 선을 넘으면 상대의 것을 자기 것으로 갖거나 상대를 때리는 아주 치졸한 장난을 했다네. 요즘 서해나 동해에서 벌어지는 결코 웃을 수만 없는 그런 치졸한 장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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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으로 학교 교실이 잿더미가 되자 불 탄 자리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1953. 10. 서울 근교). ⓒ NARA / 박도


[두 번째 이야기] 서로가 서로의 뺨을 때리는 체벌

해방둥이인 우리 또래 세대는 초등학교 때부터 으레 매를 맞으며 자랐다네. 학교에 지각을 했다고,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고, 교실에서 장난을 쳤다고, 때로는 학습분위기가 나쁘다는 이유로 단체로 매를 맞거나 기합을 받기도 했다네.

그 무렵에는 교사가 교단에 서는 걸 '교편(敎鞭)'이라 하여 매질하는 걸 당연한 걸로 여겼다네. 솔직히 나도 그런 인습에 교사가 된 뒤 젊은 날 한때 매를 들기도 했다네. 그 후 한 훌륭한 선배교사 말, "마소의 사육은 채찍으로 하고, 사람의 교육은 사랑과 말로 하는 것입니다"를 듣곤 얼굴을 붉히며 매를 내려놨다네.

체벌 가운데 가장 고약한 벌은 학생에게 손찌검을 하는 것이요, 그 가운데 가장 나쁜 방법은 교사가 눈에 거슬린 두 학생을 불러내어 서로의 뺨을 치게 하는 벌이라고 생각하네. 이 벌은 일제강점기에 일부 교사들의 잔재로 알려지고 있는데 해방된 후에도 그 인습이 버젓이 내려오고 있었다네.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에도 그런 벌이 횡행했고, 고교시절에도 한 교사는 그런 악랄한 체벌을 했다네. 어느 하루 두 친구가 수업시간에 한눈을 팔다가 그 교사에 걸려 두 친구는 서로 뺨을 때리는 벌을 받게 됐다네.

처음 두 친구는 상대의 뺨을 슬쩍 슬쩍 치자 그것을 바라보던 교사는 시계를 풀고는 "뭐! 너희들 장난하니?"라고 야단치고는 시범으로 한 학생의 뺨을 사정없이 갈기고는 "야! 이렇게 쳐!"라고 명령했다네. 그래도 상대를 살살 때리자 교사는 또 다른 학생의 뺨을 힘껏 갈겼다네. 그때부터 두 친구는 있는 힘을 다해 서로 상대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네. 한 학생이 코피를 쏟고 쓰러지자 그제야 그 체벌이 끝났다네.

그 광경을 줄곧 바라보던 한 친구가 벌떡 일어나 교사에게 항의했다네. 그러자 그 교사는 "뭐! 네가 나를 훈계해"라면서 뺨을 갈겼다네. 그러자 친구는 그 길로 교장실로 달려갔다네. 그런데 얼마 후 그 교사는 대학 교수가 되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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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 ⓒ 박도


[세 번째 이야기] 몸통은 하나인데 머리가 둘인 새

몇 해 전 인도네시아 정부 초청으로 족자(Yogyaeta)의 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이 아비를 불렀다네. 동남아, 특히 적도를 걸친 상하(常夏)의 열대지방은 여행한 적이 없기에 선뜻 아들과 함께 그의 청에 응했다네.

그때 여행에서 가장 감명 깊고 내 폐부를 찌르며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은 족자 시내에서 42km 떨어진 보로부두르(Candi Borobur) 사원에서 본 석가의 생애를 그린 한 부조(浮彫, 릴리프)였다네. 석가의 전생 설화를 담은 그 부조는 '몸통은 하나인데 머리가 둘인 새의 이야기'였다네.  

마침 보로부두르사원을 소개하는 영상관에서 딸의 통역으로 전해들은 그 새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네.

'아득한 옛날에 몸통이 하나고 머리가 둘인 새가 있었다. 한 머리의 새는 날마다 좋은 음식만 먹고 살았다. 그런데 다른 한 머리의 새는 나쁜 음식만 먹거나 굶주릴 때가 많았다.

어느 날 늘 나쁜 음식만 먹거나 굶주리는 새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보니 매우 화가 났다. 나는 왜 날마다 악식을 하거나 굶주리는가? 여러 날이 지나도 자신의 처지가 개선되지 않자 그 새는 그만 독이 든 음식을 먹었다. 그 독이 몸통으로 내려가자 다른 머리의 새조차도 그만 독으로 죽어버렸다. 결국 몸통은 하나고 머리가 둘인 새는 독에 감염되어 모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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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부두르 사원의 부조 ⓒ 박도


오늘 내 얘기는 여기서 끝내겠네. 이 일화에 부연은 하지 않겠네. 명석한 자네는 이미 내 이야기의 의도를 꿰뚫고 있을 테니까.

그새 조국분단 70여 년 세월이 지났네. 대다수 백성들은 지금의 기성 정치인들에게 분단 극복을 기대치 않을 걸세. 그들 가운데 일부는 분단을 교묘히 이용하며 자기네가 누리는 기득권 연장에만 혈안이 돼 있을 것이네. 그들은 자기 정권 연장을 위해 심지어 북풍, 총풍도 불사하는 반민족 세력들이니까.

내가 그래도 자네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6.15 공동선언문'을 만든 분의 아들이니까, 그 DNA가 전수됐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네. 그리고 내가 아는 자네는 학창시절 남 다르게 문학과 역사에 내공을 쌓았고, 이후에도 조국 분단 문제에 천착해 공부했기 때문이네.

휴전선 철책을 자르는 펜치가 되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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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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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만남(2016. 5. 여의도 한 밥집에서) ⓒ 김정호 제공

김홍걸 위원장!

이젠 자네가 앞장서 조국 분단의 상징인 155마일 휴전선 철책을 펜치로 하나하나 잘라주게나. 이것은 남북 8000만 겨레가 함께 사는 길이요, 외세가 만든 족쇄를 우리 스스로 자르는 겨레의 숙원사업이네.

아무튼 분단 70년이 넘도록 이를 해결치 못함은 가장 먼저 남북의 정치지도자들이 지탄을 받아야 할 것으로 이는 분명 그들의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네. 

이젠 자네가 조국 분단 극복과 긴장 완화에 앞장서 주시게. 국제무기상들의 농간으로 계속 방위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아가고, 곧 주한 미군들의 주둔비까지 우리 혈세로 온전히 감당해야 할 그날이 도래할지도 모르겠네.

자네 나이 54세라면 지금이 딱 맞네. 참고로 자네 선친은 '40대 기수론'을 펼쳤다네. 부디 청출어람이 돼 주시게.

2016. 6. 24. 옛 훈장이 치악산 기슭에서 울면서 이 글을 썼네.

[관련 기사] '옛 훈장'이 김홍걸 위원장에 보내는 조언 4가지
#한국전쟁 #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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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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