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10조 원 찍어내기'는 명백한 불법

[주장] 국민에게 동의받고 정부 재정으로 해결해야

등록 2016.06.25 15:47수정 2016.06.2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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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6월 8일, 관계기관 합동으로 '산업․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 및 국책은행 자본확충 등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핵심은 '한국은행 발권력을 동원해서 10조원을 찍어 기업은행을 중간 통로로 활용해서 국책은행 증자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구색을 맞추기 위해 정부가 1조원 현물출자를 하고, 자산관리공사와 신용보증기금을 동원한다는 것이 부수적인 내용이다.

많은 학자들은 이런 정부안이 '국책은행 증자는 정부 재정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점에서 경제원리에 반한다고 불편해 한다. 그러나 이 정부안이 실정법의 범위내에서 적법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펴 본 논의는 거의 없다. 이 글은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하에서는 이런 자본확충 방안이 실정법상으로 왜 문제가 있는 지 검토하고, 바람직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물론 필자는 법학을 전공한 전문 학자는 아니다. 이 글은 시민 기자의 시각에서 관련 법령에 대한 최대한의 상식적인 해석에 기반하고 있음을 밝혀 둔다.)

정부안의 기본 내용

한국은행의 돈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집어 넣는 이번 정부안의 구조는 제법 복잡하다. 법적인 측면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그 구조의 세밀한 부분까지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에 조금 자세히 알아보자.

① 우선 정부는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자산관리공사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자본확충펀드'라는 특수목적회사를 만든다. 회사의 형태는 아마도 상법상의 유한회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② 한국은행은 정부가 대주주인 신용보증기금에 공짜로 5천억원을 그냥 준다.(이것을 멋진 말로 '출연'이라고 한다.)
③ 한편 앞서 신설된 특수목적회사는 대출 담보용으로 사용될 약속어음을 발행해서 정부가 대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은행에 제출한다.
④ 신용보증기금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은행이 공짜로 준 돈 5천억원에 힘입어 총 10조원 한도내에서 이 약속어음의 지급을 기업은행에 보증한다.
⑤ 기업은행은 이 약속어음을 들고 한국은행에 가서 10조원 어음담보대출을 받는다. (만일 10조원이 일시에 나가지 않는다면 첫 대출금액은 10조원이 안될 수도 있다.)
⑥ 그 다음 기업은행은 이 10조원을 신설 특수목적회사에 대출한다.
⑦ 기업은행은 또한 1조원을 자체 조달해서 자산관리공사에 지원하고 자산관리공사는 이 돈을 신설 특수목적회사에 후순위로 대출한다.
⑧ 신설 특수목적회사는 이처럼 조달한 11조원을 국책은행이 발행하는 코코본드(조건부 자본증권)를 매입하여 국책은행이 자본을 확충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구조는 제법 복잡하다.  이를 그림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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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발표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의 구조 ⓒ 기획재정부


그럼 이 복잡한 구조에는 어떤 법률적 문제가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위의 각 단계별로 그 적법성을 살펴 보기로 한다.

정부안의 법률적 문제점


한국은행의 5천억 출연의 불법성(제2단계)

먼저 제1단계인 특수목적회사의 신설 그 자체는 법적으로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다. 그래서 넘어가기로 한다.

문제는 제2단계부터 발생한다. 한국은행이 신용보증기금에 공짜로 5천억원을 주는 것이 적법한 것일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불법이다.

한국은행의 모든 행위는 한국은행법과 그것을 세부화한 내부 규정에 의하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내부 규정은 타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한국은행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내에서 금융통화위원회가 개정할 수 있고, 또한 별도의 법률이 한국은행법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면 한국은행은 그 규정에 따라야 할 것이다.)

한국은행은 정부의 은행이자 은행의 은행으로서 정부 및 은행(한국은행법상 금융기관)과는 상당히 자유스럽게 예금과 대출 업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외 경제주체와 거래하는 것에는 엄청난 제약이 걸려 있다. 우선 한국은행법 제77조는 정부가 지정하는 정부대행기관과 예금 및 대출 업무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나, 정부대행기관에 대출해 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부의 지급보증이 있어야 한다고 한정하고 있다.(제77조 제3항) 그 이외의 경제주체(즉 정부, 정부대행기관, 은행이 아닌 경제주체)와는 원칙적으로 일체의 여수신거래를 못하게 되어 있다.(제79조)

그렇다면 돈을 공짜로 주는 '출연'은 어떨까? 한국은행법에 아무런 근거규정이 없다. 있는 것은 위에서 말한 금지규정뿐이다. 그럼 신용보증기금에 한국은행이 출연할 수 있을까? 한국은행법에 의하면 불가능하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현실에서 한국은행이 이런 저런 기구에 '출연'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행 홈페이지에 가 보면 한국은행은 국내 기구에 594억원, 국제기구에 464억원을 '출연'하고 있다.

그럼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별도의 법률에 근거 규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한국은행은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제46조의 근거 규정에 따라 금융감독원에 100억원을 출연했고, '농어가목돈마련저축에 관한 법률' 제7조에 따라 농어가목돈마련저축장려기금에 494억원을 출연했다. 그리고 '국제금융기구에의 가입조치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라 ADF(아시아개발기금)에 원화 환산금액으로 464억원을 출연했다. (아래의 한국은행 홈페이지 관련 항목 스크린 캡처 화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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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의 타 기관 출자 및 출연 현황 ⓒ 한국은행


요약하면 한국은행은 다른 법률에 출연에 관한 근거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타 기관에 출연하는 것이 가능하고, 실제로도 그 경우에만 출연했고, 그 총액은 국내외 출연을 모두 합해도 1,058억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국은행이 신용보증기금에 단돈 1원이라도 출연하기 위해서는 '한국신용보증기금법'에 한국은행의 출연과 관련한 명시적 근거 규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법률에 아무런 근거 규정이 없고 그 액수도 국내외 기관에 대한 총 출연 잔액의 5배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인 이번 정부안의 출연은 가능할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래서 2단계는 실행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제2단계가 실행 불가능한데도 정부안의 그 이후 단계를 그럭저럭 추진할 수 있을까? 아니다. 한국은행이 신용보증기금에 출연하지 않으면 신용보증기금은 제4단계의 지급보증을 할 수 없고, 신용보증기금의 지급보증이 없으면 한국은행은 제5단계의 대출을 기업은행에 해 줄 수 없다.

기업은행 역시 한국은행 대출이 없으면 제6단계의 대출을 해줄 수 없다. 설사 한국은행 말고 다른 곳에서 이 돈을 조달한다고 하더라도 지급보증도 없는 신설 회사에 덜컥 10조원을 대출해 줄 수 없다. 신용도가 높은 기구의 지급보증이 없으면 한 회사에 이처럼 거액을 대출해 주는 것은 여신 건전성을 해치는 일이고 구체적으로는 동일차주 여신한도 위반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은행법 제35조 제3항은 동일 법인에 대한 은행의 대출한도를 자기자본의 20%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기업은행의 자본계정 총액은 17.4조원(BIS 총자본은 18.9조원)에 불과하므로 10조원을 한 회사에 대출해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정부안의 전체 구조는 제2단계가 불가능하게 되면 그대로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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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 주주구성 ⓒ 기업은행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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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산관리공사의 출자 현황 ⓒ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은행의 기업은행에 대한 10조원 대출의 불법성(제5단계)

앞 절에서 보았듯이 제2단계가 실행 불가능하면 정부안은 그대로 붕괴한다. 따라서 더 이상 검토할 필요조차 없다. 이하에서는 정부가 한국은행 이외의 어떤 다른 경로를 통해 신용보증기금에 5천억원의 출연을 성공시켰다고 가정하고 그 이후 단계의 불법성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만일 어떤 이유로 신용보증기금 출연 문제가 해소되었다면 그 다음 제3단계와 제4단계는 특별히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 그 다음 걸림돌은 제5단계, 즉 기업은행이 신용보증기금의 지급보증이 부가된 약속어음을 가지고 한국은행으로부터 총 10조원을 대출받는 데서 발생한다.

한국은행의 기업은행에 대한 대출 그 자체는 가능하다. 한국은행법 제64조는 한국은행이 만기 1년 이내의 어음재할인이나 어음, 국채, 통화안정증권, 기타 금융통화위원회가 인정한 증권을 담보로 만기 1년 이내의 대출을 해줄 수 있다고 허용하고 있다.

한국은행법 제64조의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첫 번째 문제점은 대출의 만기 부분이다. 한국은행이 내줄 수 있는 대출은 만기 1년 이내로 제한되어 있는데, 정부안에 따르면 '자본확충펀드'는 금년 7월1일부터 시작하여 내년 연말까지 최소한 1년 6개월 동안 존속하고, 그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계속 여부를 검토하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일단 한국은행법의 조건과 정부안의 내용은 일치하지 않는다.

물론 정부가 내년 6월30일 이전에 다른 곳에서 재원을 마련해 와서 한국은행 대출을 차환하거나, 아니면 이 특수목적회사가 자신이 매입한 코코본드를 다시 시장에 매출하여 유동성을 마련하여 대출을 1년 이내에 상환할 수 있다면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그 외에 한국은행이 당초부터 만기를 연장할 마음을 먹고 내년 6월30일에 다시 대출을 연장하는 기술적 해법도 생각할 수 있으나 이것은 한국은행법 64조의 입법취지에는 반하는 것이다.

한국은행 대출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 대출이 한국은행의 내부 규정에 반한다는 점이다. 은행에 대한 한국은행의 대출은 '한국은행의 금융기관대출규정'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이 규정 제4조 제2항은 한국은행이 은행에 대출해 줄 때 담보로 잡을 수 있는 적격 증권의 범위를 총재가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규정화한 것이 '한국은행의 금융기관대출세칙'이다.

이 세칙 제1조의2 제1항 제1호를 보면 은행이 공정거래법상 계열회사 관계에 있는 회사에 대한 대출로 취득한 증권은 적격증권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만기 문제를 제외할 경우, 한국은행이 기업은행에 대출해 줄 수 있는가는 대출의 담보인 약속어음이 적격증권인가 아닌가에 의존하게 된다.

그렇다면 기업은행이 제출한 약속어음은 적격증권인가? 아니다. 왜냐 하면 기업은행은 신설되는 특수목적회사와 공정거래법의 정의에 따른 계열회사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이 사용하는 개념에 따르면 계열회사란 동일한 기업집단에 속한 회사를 말하며(공정거래법 제2조 제3호), 이 때 기업집단이란 동일한 지배력에 의해 지배되는 두 개 이상의 회사들을 말한다.(동조 제2호 나목)

그렇다면 기업은행을 지배하는 자는 누구인가? 정부다. 그렇다면 특수목적회사를 지배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것도 정부다. 따라서 이 두 회사는 공정거래법의 개념에 따른 계열회사가 되는 것이다. 이제 그 이유를 조금 자세히 살펴보자.

기업은행의 최대 주주는 기획재정부(의결권의 51.2% 보유)이고, 특수목적회사의 모회사인 자산관리공사의 최대 주주는 역시 정부(의결권의 56.84% 보유)다. (아래의 각 기구에 대한 출자 현황 참조) 따라서 자산관리공사는 정부를 동일인으로 하는 '동일인 관련자'가 되고(공정거래법 시행령 제3조 제1호 나목), 신설 특수목적회사는 동일인이 동일인 관련자와 합하여 발행주식의 30% 이상을 소유하고 최다출자자로 지배하는 회사가 되고(시행령 제3조 제1호 본문), 기업집단 적용의 예외 사유에도 해당되지 않는다.(시행령 제3조의2)

결국 비록 기업은행이 신설 특수목적회사에 직접 출자하지 않더라도 이 신설 회사는 공정거래법의 개념에 의한 기업은행의 계열회사가 되고, 따라서 이 회사가 발행한 약속어음은 현행 규정상 한국은행이 담보로 취득할 수 있는 적격 증권이 아니다.

물론 이 대출세칙은 한국은행 총재가 정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은행 총재가 개정할 수 있다. 문제는 개정의 논거가 정당한가 하는 점이다. 한국은행법 제64조나 제77조는 한국은행이 대출할 때는 그것이 정부에 대한 직접 대출이 아닌 한 원칙적으로 정부의 지급보증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행 대출의 직접적 상대방인 기업은행이나 궁극적 상대방인 특수목적회사는 모두 정부가 출자한 회사에 불과하고, 따라서 한국은행법의 취지에 따르면 정부의 지급보증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어음의 적격성 범위를 기존 규정을 무시하고 고의적으로 더 확대하는 것이 한국은행법을 준수해야 할 총재로서 적법한 행위인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기업은행의 특수목적회사에 대한 10조원 대출의 불법성(6단계)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제2단계 혹은 제5단계중 하나라도 실행 불가능하게 되면 정부안은 사실상 붕괴하게 된다. 이하에서는 정부가 제5단계까지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해결하여 기업은행의 수중에 10조원이 확보된 것을 전제로 제6단계 실행의 불법성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그렇다면 제6단계 실행, 즉 기업은행이 10조원을 신설 특수목적회사에 대출해 주는 데는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제4단계, 즉 신용보증기금의 지급 보증이 들어가는 한 동일인 여신한도 위반의 문제는 없어진다.

비록 거액이 단일 차주에게 대출되는 것이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신용보증기금(혹은 어떤 다른 신용도 높은 기관)의 지급보증만 들어간다면 신용위험이 없어지기 때문에 동일인 여신한도 산정에서 이 대출은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은행업 감독규정 제3조 및 <별표 2>의 2호)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한다. 대주주 여신한도 위반 부분이다. 기업은행은 정부가 설립한 특수은행으로 원칙적으로 중소기업은행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그 이외의 경우에는 은행법이 적용된다.(중소기업은행법 제3조 제3항 및 제52조) 이중 은행법 제35조의2는 중소기업은행법이 적용 배제로 열거한 조항이 아니어서 기업은행에 그대로 적용되는 조항인데, 이 조 제1항은 은행이 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에게 자기자본의 25%를 초과하여 대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특히 이 조 제7항은 은행이 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의 다른 회사에 대한 출자를 지원하기 위한 신용공여를 금지하고 있다.

대주주 여신한도 규제는 매우 강한 규제여서 이를 위반하면 은행법상 가장 엄중한 처벌인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은행법 제66조 제2호)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는 정부를 매개고리로 하여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자산관리공사는 기업은행의 대주주인 정부가 56.84%(역시 기업은행의 주주이기도 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지분을 합할 경우 총 90.84%)를 출자한 비영리법인으로 은행법상 특수관계인이고(은행법 시행령 제1조의4 제1항 제2호), 따라서 자산관리공사가 설립하는 특수목적회사도 특수관계인이다.(시행령 동조 동항 제5호) 아울러 자산관리공사나 자회사인 특수목적회사는 모두 은행법 시행령이 열거하는 특수관계인 적용의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시행령 동조 제2항)

요약하면 신설 특수목적회사는 기업은행의 대주주인 정부가 지배하는 특수관계인이고 은행법은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대주주에게 은행 자기자본의 25%를 초과하는 대출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기업은행의 자기자본은 17.4조원(BIS 총자본은 18.9조원) 수준이므로 10조원의 대출은 불가능하다.

혹자는 정부에 대해 은행법 규정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반론은 타당하지 않다.

우선 정부에 대해서 은행법 일반 또는 제35조의2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명문의 규정이 없으므로 당연히 이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은행법은 정부에 대해 은행법을 적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명시적인 규정을 두어 이를 분명히 밝힌다.) 뿐만 아니라 기업은행의 설립근거법인 중소기업은행법은 오는 8월1일부터는 은행법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도 기업은행에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제3조 제3항)

이 지배구조법은 대주주와 그 특수관계인에 대한 여러 가지 상세한 규정을 담고 있는데 이것을 원칙적으로 그대로 기업은행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입법 동향을 보면 기업은행의 대주주가 정부라고 해서 은행법 일반 또는 제35조의2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별로 없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기업은행은 자신의 사업보고서에 정부라는 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을 지정하여 공시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2015년도말 현재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기업은행의 최대주주는 기획재정부로 되어 있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으로 표기되어 있다. 기업은행이 정부라는 대주주에 대해서도 은행법을 적용하고 있다는 산 증거다. (아래 기업은행 사업보고서 중 '주주에 관한 사항' 부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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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의 2015년도말 주주현황 ⓒ 기업은행


기업은행이 특수목적회사에 10조원(자산관리공사에 지원하는 자체 자금 1조원을 합할 경우 총 11조원)을 대출해 주지 못하게 되면 정부가 발표한 자본확충방안은 전혀 작동할 수 없다. 그런데 은행법 제35조의2 제1항의 적용에 있어서는 은행법이 어떤 예외도 인정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번 자본확충방안은 설사 정부가 어찌어찌해서 제5단계까지 끌고 온다고 해도 6단계를 넘어설 수 없다.

국책은행 자본확충의 바람직한 방향

이제까지 우리는 정부가 지난 6월 8일에 발표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이 실정법상 불법임을 살펴 보았다. 그것도 단 하나의 논점 때문에 불법인 것이 아니라 여러 법률과 내부 규정을 위배하고, 각 법의 입법취지에도 정면으로 반한다는 점에서 아주 본질적인 불법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론 정부가 계속 한국은행의 발권력 동원을 고집한다면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직접 신용보증기금에 5천억원을 출연하여 제2단계를 극복하고, 정부 또는 자산관리공사와 동일한 지배력 관계에 있는 기업은행이나 우리은행이 아닌 다른 민간은행 팔을 비틀어서 기업은행의 역할을 분담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렇게 할 수 있다면 현재까지 거론된 불법을 비켜갈 수 있다는 의미 정도이지, 실제로 민간 주주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민간 은행을 이런 의심스러운 딜에 동원할 수는 없다.

결국 남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정면돌파밖에는 없다. 국회 가서 야단맞을 것은 맞고, 국민에게 돈을 빌려서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하는 것이 그것이다. 어차피 감사원 감사보고서에 의해 국민 여론이 들끓고 있고, 야3당도 국회 차원의 청문회를 당연시하는 분위기여서 국회를 안 갈 수도 없는 형편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추경까지 거론되고 있으므로 돈 10조원을 추경에 포함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다. 추경사유가 아니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설사 국책은행에 대한 긴급 자본확충이 추경 사유가 아니라면 추경 사유를 규정한 국가재정법 제37조를 개정해서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이 긴급하게 필요한 경우"를 추가하고 개정 법률을 즉시 시행하도록 하면 된다.

정부가 그동안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논의하면서 국회를 가지 않으려고 했던 진짜 이유는 야단맞기 싫어서였다. 그런데 이미 기정사실화된 청문회 때문에 국회를 피할 수 있는 길은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면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정석대로 추진하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날라 오는 총알을 피할 수 없으면 입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전성인 기자는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입니다.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서 어떤 단체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조조정 #자본확충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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