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맥과이어' 꿈꾸던 남자
프랑스문화 아이콘 되다

[1인기업시대 ⑥] 홍대앞 문화기획자 사동렬 르프렌치코드 대표

등록 2016.06.30 10:39수정 2016.08.2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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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사라진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와 기술의 발달은 우리 모두를 일자리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평생직장의 시대는 오래 전 끝났고, 100세시대 누구나 2~3번의 일(業)을 해야 생존한다. 국가도 사회도 답해줄 수 없는 문제, 결국 개인이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내 일은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다. 직장을 다니면서, 또는 홀로서기를 통해 '1인기업'을 운영해온 이들에게서 답을 찾고자 한다. '직장 다닌다고 직업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한 '1인기업가'들의 경험담을 통해 해법을 찾아본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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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 사 르프렌치코드 대표. 그의 프랑스 이름 디올(Dior)은 본명인 사동렬의 이름에서 따왔다. ⓒ 르프렌치코드


불어는커녕 대학시절 영어 성적도 'D+'로 바닥수준이었다. 취업준비만 하고 있기엔 세상엔 그를 가슴뛰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사회학의 매력에 빠져 프랑스유학을 감행했고, 축구를 사랑해 스포츠 에이전트가 되기로 결심했던 사동렬(39)씨는 귀국 3년째 프랑스 문화기획자로 살아가고 있다.

부산대 사회학과 복학 후 취업준비에 매진하던 사씨의 운명은 계획에 없던 캐나다 여행으로 인해 달라졌다. 어학연수 중이던 후배와 채팅을 하다 덜컥 캐나다에 놀러가겠다고 약속했고 그때가 아니면 평생 못 쉴 것 같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호기롭게 캐나다행 비행기에 올랐다.

2003년 2월, 벤쿠버섬 빅토리아시에 도착한 지 한 달도 안 된 3월 20일 이라크전쟁이 발발했고 전세계적으로 반전운동이 일어났다. 사회학도였던 그의 발길은 자연스레 시위현장으로 향해 있었다.

"빅토리아시 전체인구가 20~30만인데 그 중 7000여 명이 반전시위를 위해 거리로 나왔어요. 무거운 주제였지만 발랄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시위문화는 과격하고 진지하기만 했던 시위에 익숙하던 저에겐 문화충격이었죠. 그때부터 거의 매일 반전행사에 참여하며 커뮤니티의 일원이 됐어요."

어학연수 중이던 후배가 귀국하고 비자가 3개월이나 남은 사씨는 혼자서 캐나다에 남기로 했다. 빅토리아대학 사이트를 통해 방을 구하고 프랑스친구 앙드레 등 각기 다른 국적의 학생 6명과 함께 새로운 3개월을 시작했다.

인근 카모선칼리지와 빅토리아대학을 두리번거리며 3개월을 보낸 사씨는 캐나다에서 1년을 채우기로 결심한다. 이제 조금 영어 귀도 뚫렸고 이곳 친구들과 친해졌기 때문이다. 비자발급을 위해 2주간 미국에 갔다 온 후 진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도강'이었다.

캐나다서 영어·사회학 도강... '학비 공짜' 프랑스 유학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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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프렌치코드 사동렬 대표. ⓒ 르프렌치코드


학생증 검문검색이 느슨한 계절학기 수업부터 6학점을 듣고 본학기에는 3~4학년 수업위주로 사회학 관련 과목을 30학점까지 들었다. 우습긴 하지만 도강을 하면서 학문에 대한 열정이 생긴 것이다. 제출하진 못했지만 리포트나 과제도 빠트리지 않았다. 1년간 캐나다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사씨는 어차피 서울에서 유학생활 할 바에야 국립대학 학비가 공짜라며 앙드레가 자랑하던 프랑스로 유학을 결심했다.

캐나다로 떠날 때처럼 결정한 이상 실행은 속전속결이었다. 3개월간 부산 프랑스문화원에서 불어수업을 듣고 곧바로 프랑스로 출국했다. 프랑스 북부 릴(Lille)에서 2년간 어학연수를 거쳐 파리에서 대학원 과정에 직행할 계획이었다.

"파리4,5,7대학 사회학 석사과정에 지원했고 세군데 모두 합격 통지를 받았어요. 저는 이민정책분야에 강한 파리 7대학을 선택했어요. 부산에서 외국인노동자인권단체에서 활동할 당시 이민정책을 제대로 연구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거든요."

좋아하는 축구와 사회학의 만남... 박사과정까지 도전

석사학위는 받았지만 이민정책이라는 주제로 박사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방황하던 중 A4지 한 장짜리 광고지를 받아들고는 눈이 번쩍 뜨였다.

'남미축구에 있어서의 폭력의 역사'라는 주제의 콘퍼런스 광고였다. 절반은 불어, 절반은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콘퍼런스 내내 가슴이 뛰었고 너무도 좋아하는 축구, 즉 스포츠 사회학이라면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교수를 찾아가 '박사과정에 도전해보고 싶다'며 다짜고짜 메일 주소를 달라고 했죠. 흥분된 상태에서 A4지 15장 분량의 연구계획서를 3일동안 써서 보냈습니다. 일주일 만에 답장이 왔는데 '아시아스포츠에 대해 함께 연구해보자'며 그 분야 전문가인 다른 교수를 소개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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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시나의 재즈클럽데이 공연 모습. ⓒ 르프렌치코드


그 교수가 바로 EHESS(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강의하는 패트릭 미뇽 교수였다. 190cm 장신의 미뇽 교수는 INSEP(프랑스국립체육연구소)의 종신연구원이자 훌리거니즘 전문가, 프랑스 축구협회 자문위원으로 축구 권위자이자 스포츠 사회학자이다. 사씨외에 그에게 박사과정을 지도받던 학생으로 FIFA 장학금을 받았던 페르난도라는 멕시코인이 있었다. 페르난도로 인해 또 한 번 인생의 변곡점을 맞게 된다.

그의 논문 주제는 '노숙자 월드컵(Homeless Worldcup)'. 2011년 8월 파리 노숙자 월드컵은 50개국에서 온 노숙자들이 축구를 통해 재활하는 세계적인 행사이다. 논문준비를 하던 페르난도가 운영위원회와 자주 만나면서 얼떨결에 사씨는 한국팀 수행통역을 맡게 된 것이다. 프랑스 축구협회와도 연결고리가 생기면서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톰 크루즈가 연기한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직업군을 접하게 된다.

'스포츠 에이전트'. AS모나코에서 뛰던 박주영 선수같은 이들을 유럽무대에서 관리하는 일이라니 꿈만 같았다. 축구 에이전트가 되기로 마음을 정한 후 FIFA주관 에이전트 시험을 치르기 위해 2012년 9월 귀국했다. 하지만 11월에 치른 시험은 예상대로 어려웠고 결과는 불합격, 파리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던 때였다.

"알고 지내던 가수 시나로부터 카페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재즈공연에 초대받았어요. 힘들었던 지난날들이 치유되는 기분이 들 정도로 공연은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둘러보니 손님이 저밖에 없는 거예요. 장르가 대중적이지 않은 탓인지 흥행이 안될 거라 생각했던 거죠."

프랑스문화는 '르프렌치코드'로 통한다... 문화기획자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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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조 스윙전문밴드 스윙제리의 공연 모습 ⓒ 르프렌치코드


사씨는 2주후 열릴 공연에 지인들을 초청했고 20명을 모았다. 손님이 모여드는 것을 본 카페 대표가 사씨에게 파티를 제안했고 '프렌치코드'로 명명한 파티는 50여명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2013년 3월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재즈가수의 첫 공연을 진행했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사비를 털어넣어 그해 10월엔 음반까지 발매했다. 이때만 해도 팬심에서 시작했던 일이지 직업이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2014년 여름, 재즈가수 시나가 기획사를 알아보고 있다는 거예요. 생각해보니 내가 제일 잘 아는 뮤지션들이니 매니지먼트도 내가 제일 잘할 것 같았어요. 원래 목표였던 스포츠 에이전트에서 스포츠만 떼면 매니저도 사람을 다루는 직업이라는 측면에서 에이전트라는 생각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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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재즈가수 엘자 코프와 삐에르 파. ⓒ 르프렌치코드

가수들 앞에서 청사진을 브리핑하고 바로 콘텐츠를 만들고 행사도 기획했다. 2015일 4월30일 세계재즈의 날을 맞아 개최한 '재즈르네상스' 행사에는 유료관객이 300명이상 찾았고 이로 인해 재즈 네트워크가 급속도로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프렌치'라는 장르는 개인적인 인연으로 특화됐을 뿐 포크, 스윙 등 인디 싱어송라이터들에게도 문호를 열어놓고 있습니다. 소규모 기획사들은 힘들더라도 자체 기획을 통해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2년 정도 지나고 보니 한국에서의 기획공연은 메이저급 유명 스타가 없으면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래도 첫해인 2014년보다 작년이, 또 작년보다 올해 수익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르프렌치코드 소속 뮤지션은 이미 국내외 10개팀에 달한다. 국내에선 시나(Sina 재즈 보컬), 낙타사막별(모던팝재즈밴드), 나비다(Na Vida 보사노바음악 듀엣), 크로크노트(Croque-note 어쿠스틱 싱어송라이터), 쇼꼴라띠에 김명하, 7인조 스윙전문밴드 스윙제리(Swingerie) 등이 있고, 프랑스에 삐에르 파(Pierre Faa. 페퍼문그룹 리더), 엘자 코프(Elsa Kopf 프렌치 싱어송라이터), 샤흘 밥티스트(Charles-Baptiste. DJ 겸 싱어송라이터), 이민정(재즈 보컬) 등이 있다. 최근 시나와 삐에르 파가 공동작업한 음원 '감탄'이 드라마 '또 오해영'에 배경음악으로 등장해 주목받기도 했다.

3년차 1인 문화기획자로서 생존해온 사씨의 가장 큰 고민은 소속 아티스트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다. 바램이 있다면 또 르프렌치코드를 프랑스 콘텐츠에 관해서는 독보적인 커뮤니티, 아트허브로 키워나가는 것이다.

"프랑스문화를 일부 소수만 누리는 고급문화로 생각하는 대중들의 인식을 바꿔나가고 싶습니다. 또 아티스트들이 음악만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메이저 미디어의 접근성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늘 고민합니다. 저는 소속 아티스트가 유명해지는 것보다 그들의 복지를 생각하고 조금씩 성장하는 회사로 만들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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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삼바스쿨을 모델로 한 에스꼴라 알레그리아 (ESCOLA ALEGRIA). 브라질과 아프리카음악을 소개해왔다. ⓒ 르프렌치코드


#1인기업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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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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