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넘게 허리띠 졸라맸다, 더 졸라매라고?

박정희가 시작한 성장신화, 알고보면 '노동착취'

등록 2016.06.30 10:38수정 2016.06.3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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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발표한 혁명공약 제1호는 반공이었다. 북한과의 대결을 빌미로 자신의 쿠데타를 합리화한 것이다. 이후 반공의 진정한 가치는 박정희에 대한 정치적 반대세력을 합법적(?)으로 탄압하면서 더욱 부각되었다. 간첩 혹은 빨갱이란 이름으로 집권에 방해되는 세력을 철저히 일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집권의 정통성 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형식적이나마 자유민주주의의 외양을 띤 국가에서 군사 쿠데타는 수용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사후 정통성을 얻기 위해 경제성장을 최고의 국정과제로 삼았다.

대한민국은 이때부터 온 국민이 나서서 '외화벌이'에 총력을 쏟는 체제로 바뀌었다. 국가경제가 잘 되려면 기업이 잘 돼야 하고, 기업이 잘 되려면 수출을 통해 이윤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가 우리들의 삶을 지배했다. '나'라는 개인은 오로지 국가 속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잘 살아보자"는 구호 아래 전체주의가 횡행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내세우는 자유주의는 설 자리를 잃었다.

노동자들은 '새벽별보기 운동'을 하듯이 세계 최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쥐꼬리 월급에 만족해야 했다. 기술이 부족한 기업이 달러를 버는 방법은 가격경쟁력이란 이름의 헐값 판매 전략뿐이었고, 이를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최대한 쥐어짰다. 국가가 기업의 노동착취 전략을 적극 지원했고,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면 빨갱이 딱지가 붙었다. 노동을 많이 착취할수록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도 커져 훈장까지 수여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하고 '정의사회'와 '세계화'를 거쳐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이르렀다. 국민소득이 1천 달러도 되지 않던 변방의 신생독립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된 것이다. 경제성장에 성공하면서 박정희의 역사는 그 자체로 신화가 되었다. 그가 저지른 군사쿠데타에 대해서는 면죄부가 주어졌고, 그의 딸은 선거에 의해 대통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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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값비싼 기계를 돌리는 소모품. 노동의 가치는 전혀 존중받지 못한다. ⓒ 참여사회


여전한 새벽별보기 운동

문제는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내다보는 요즘에도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오늘도 경제성장 목표를 내세우고 채찍질을 하고, 우리는 새벽같이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새벽별보기 운동을 한다. 하지만 임금은 여전히 쥐꼬리 수준이다.


시간외근무를 하지 않으면 임금이 대폭 깎이니 자발적 야근이 비일비재하다. 시간당 6천 원, 사람값이 똥값이니 선진국에서는 찾기 힘든 허드렛일을 하는 서비스 직종이 많다. '더블 잡', '트리플 잡'이란 웃지 못 할 일도 생겨났다. 젊은 층은 일자리를 찾아 온갖 스펙 쌓기에 내몰리고, 어렵게 직업을 가져도 결혼이나 출산은 포기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50년 넘게 허리띠를 졸라매며 달려왔는데, 정부는 더 졸라매라고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정규직이 고임금(?)과 안정성을 포기해야 한다고 한다. 기업을 살리려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기 바쁘다.

왜 이럴까? 왜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경제위기의 고통에 시달려야 할까? 세계 10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생산하는 부로는 우리 국민들이 먹고 살기에 여전히 부족한 것인가?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사실 이 모든 고통의 기저에는 사람보다 기업의 이윤만을 생각하는 비정한 박정희식 경제 성장론이 있다. 노동자는 값비싼 기계를 돌리는 소모품에 불과할 뿐, 노동의 가치는 전혀 존중받지 못한다. 세월호 참사와 구의역 사고, 삼성전자 집단 백혈병, 각종 산업재해 등이 모두 그 결과이다. 전쟁에서보다 많은 사망자가 매년 산업현장에서 나온다.

노동자임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이유는 노동이 천대받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내세운 반공은 북한의 실상이 많이 드러나면서 약화되었지만, 군사작전 하듯 경제 목표만 쫓는 경제성장 방식은 아직도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박정희가 떠난 지 40년이 다 되었지만 박정희 시대는 지속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용마님은 MBC 해직기자입니다. 정치학 박사이며,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입니다. 관악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부지런함의 공존 불가를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박정희 #새마을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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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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