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쪽이 짧아... 이 추리소설, 괜찮다

[서평] 도진기의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등록 2016.07.02 20:51수정 2016.07.0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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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이 부는 블라디보스토크. 한반도의 북동쪽에 위치한 러시아인들의 항구다. 이곳에서 목이 졸려 살해당한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한국인 남성 신창순. 남편 신창순을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에 온 아내 김명진이 유력한 살해 용의자다. 용의자 김명진이 자신의 무죄를 밝혀줄 변호인으로 데려온 사람은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다.

고진은 원래 판사였지만 법복을 법고 변호사가 된 뒤, 한 번도 법정에서 변론을 한 적이 없는 변호사다. 법정 변론이 아닌 뒷골목 세계의 수상한 일거리를 해결하는 해결사로 악명이 높다. 그런 그가 이번엔 법정에 변호인으로 등장하여 미모의 피고인을 위해 변론에 나선다.


피고인과 그녀의 동생, 대학 선배들을 조사하던 고진은 피고인을 둘러싼 인간관계가 뭔가 수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진이 조사를 거듭할 때마다 사건의 진실은 점점 미궁으로 나아가고, 법정은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추리소설 쓰는 법관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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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표지. ⓒ 황금가지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추리소설 쓰는 법관으로 유명한 도진기 판사의 신간이다. 도진기 판사는 그동안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해결하는 마성의 변호사 '고진'이 등장하는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를 집필해왔다. 이 책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역시 판사를 그만두고 뒷골목에서 차가운 논리에 기반해 추리를 진행하는 매력적인 인물 고진이 주인공이다. 이번에는 뒷골목이 아닌 법정이 고진의 활동 무대다.

명색이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의 주인공인 고진이지만, 그동안 한 번도 변호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전작인 <붉은 집 살인사건>, <유다의 별>에서도 냉철한 추리만으로 활동해왔던 그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아름다운 피고인을 위해 검사와 싸우는 변호인이 되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고진의 '아는 동생' 광역수사대 경찰 유현과 함께 법원에 드나들게 된다.

고진의 의뢰인 김명진은 사람을 홀리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는 현재 자신의 남편을 낚싯줄로 교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 신창순이 발견된 곳이 한국인이 적게 사는 외지인 블라디보스토크인 탓에 배우자인 그녀가 가장 큰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여자의 입가에 웃을 듯 말 듯한 미소가 새겨졌다. 수줍음이 사라진 시대, 그 조그만 웃음에는 세파에 찌든 남자의 마음을 잡아끄는 기묘한 매력이 있었다. 고진도 물론 그런 종류의 매력에 열광하는 인파에 들어갈 것임에 틀림없다. 위태로운 경계선까지 걸어가 버린 이성을 되부르듯 고진은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본문 10쪽)

판사를 그만둔 이후 처음으로 법정에 나가서 피고인을 변호하게 된 고진. 그의 상대방은 피도 눈물도 없는 독사같은 검사 조현철이다. 그는 자신의 기소를 유죄로 확정짓기 위해서는 어떤 행위도 마다치 않는다. 피고인을 유죄로 만들기 위해서 작은 증거 하나도 놓지지 않고 찾아내고야 마는 독한 검사다. 그런 조현철 검사가 뜬금없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다.

원래 국민 배심원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은 준비를 위해 품이 많이 드는 데다가 배심원들의 성향을 예측하기 어려워 검사들이 꺼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조현철은 자신에게 불리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다. 그리고 김명진을 옥죄기 위한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고진은 조현철의 악랄한 공격에 재치있는 응수로 맞서지만, 조현철의 만만치 않은 공격을 궁극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 그는 김명진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동생과 대학 선배들을 조사한다. 그리고 20년 전 있었던 달리기 시합의 뒷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그들의 과거와 사건의 진실로 나아가게 된다.

끝까지 손에 땀을 쥐면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마침내 마주하게 된 그들의 진실 앞에서 동요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484쪽 분량이 너무 짧다고 아쉬워하며 탄식하게 되는 것은 덤이다.

이미 여러 차례 추리소설을 출판했고, 전작 <유다의 별>로 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한 도진기 판사의 소설이기 때문에 완성도는 검증되어 있다. 다른 시리즈를 읽지 않았어도 주된 내용을 파악하는 데 무리가 없다.

작품 내에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분위기가 살아있으며, 보는 사람까지 당황하게 하는 고진의 재치와 언변 역시 흥미롭다. 추리소설이나, 법정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좋아하는 이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도진기 지음,
황금가지, 2016


#추리 #법정 #살인 #도진기 #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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