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에 경제 독립한 딸, 고물사업 덕분이었죠

10년 전 휴대전화 비용 마련 위해 제안... 경제 관념 바꿔

등록 2016.07.17 21:16수정 2016.07.1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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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었다. 딸아이가 중1때 휴대폰을 사달라고 해서 일어난 일(관련 기사 : 딸아이와 역사적인 '고물수집협약' 맺다, 처음으로 딸아이가 고물 팔아 돈 벌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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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정리 고물사업이라고 하니 거창한듯 보이지만, 사실 가정에서 나오는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해서 고물상에 가져다 파는 사업이다. 이걸로 딸아이가 중3년,고3년 동안 휴대폰요금을 충당했었다. ⓒ 송상호


"아빠! 저 휴대폰 사주세요."

딸아이의 그 말을 듣고 3초를 생각했다. 나의 대답이 이어졌다.

"콜."

딸아이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하지만, 세상부모들이 다 그렇듯 그 '콜'은 단순한 '콜'이 아니라 단서가 붙었다. 그 단서란 바로 이런 거였다.

"휴대폰을 사주는 대신 매월 내야 하는 휴대폰 요금에 대한 계획이 있니?"


방금 전 희색이 돌던 딸아이의 얼굴은 그야말로 똥 씹은 얼굴이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이때 내가 제시한 협상카드는 이랬다.

"그럼. 내가 제시할 협상카드를 들어보겠니?"

딸에겐 이미 "예" 말고는 내밀 카드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딸 앞에서 파워포인트(PPT) 없이 즉석 요약정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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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정리 우리 집에 놀러온 딸아이의 친구와 딸아이가 고물을 정리하고 있다. 이때 수입은 딸아이가 7, 친구가 3정도 가져간 걸로 기억하고 있다. 이 모습이 딸아이가 생애최초로 돈을 벌려고 땀흘리는 중1때 모습이다. ⓒ 송상호


"매월 휴대폰 요금은 네가 감당한다. 그것은 고물을 모아 매월 처분해서 나오는 돈으로 한다. 어때? 물론 지금 당장 답은 안 해도 좋다. 1주일 뒤에 가부를 결정해서 말해다오."

어떠신가. 좀 가혹하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지면이 한정되어, 딸에게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한 것은 생략했다. 1주일 뒤 딸아이가 나에게 말해왔다.

"콜."

이렇게 시작한 '고물 사업'은 딸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물론 그동안 막둥이 아들도 함께 동참했었다. 어떤 때는 딸아이가 사장, 아들아이가 직원, 나는 운전기사를 하며, 그 일을 수행하기도 했다. 거기서 나온 수입을 분배하는 영업도 함께 했었다.

'고물 사업'이 시작된 건 순전히 나의 경험 때문이었다. 1999년 부산에서 무작정 경기도 광주 곤지암으로 이사한 뒤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몇 달 동안 트럭으로 고물장수를 했었다. 하여튼 딸아이가 '콜'을 해줘서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었다.

물론 '고물 사업'이라고 해서 거창한 게 아니었다. 집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하는 게 기본이었다. 학교에 갔다가 오면서 거리에서 손에 잡히는 고물들을 가져오는 정도였다. 무엇보다 이 일을 한다고 하니까, 지인들이 기특하다며 고물들을 가져가라고 했다.

내가 그 고물들을 차로 가져왔다. 사실 아이들이 모은 고물이 20%면 지인들이 챙겨준 고물은 8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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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딸아이와 딸친구가 생애 최초로 노동한 대가를 받는 장면이다. 아마도 딸은 어른이 되어 이 장면을 보며 뿌듯해할 것이다. ⓒ 송상호


어쨌거나 그러는 바람에 딸아이의 휴대폰 요금은 매월 신기하게도 해결되었다. 말하자면 딸아이는 한 번도 부모에게 휴대폰 요금을 내게 하지 않았던 게다. 이러던 딸아이가 6년을 경영한 후,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 3학년(23세)에 재학 중이다. 자기가 원하는 디자인과를 갔다.

이렇게 훈련한 딸아이는 20세가 되던 그 해 설 명절에 친척들 앞에서 '성인 독립식'을 했다. 사실 이런 일련의 과정(고물사업부터 성인독립식까지)을 다룬 나의 책 <자녀독립만세(삼인출판)>에는 길고도 자세하게 기록 되어있다.

"나는 이제 어른으로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독립할 것을 친척들 앞에서 선서합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딸아이는 대학등록금과 차비와 생활비 모두를 혼자서 해결하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장학금을 타고, 학자금대출을 받아서 해결했다. 20세 초기 상당히 힘들어 하던 딸은 이제 삶의 균형감을 잡고 있다.

그런 딸아이가 너무나도 고맙고 자랑스럽다.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 바라지 않으니, 서로 부담스럽지 않다. 가끔씩 큰돈으로 딸아이에게 뭔가를 해주면, 그렇게 고마워할 수가 없다.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인데, 어려울 때 부모가 도와준다고 느낀다.

그럼 그렇지. 고물사업을 통해 탄탄하게 만든 딸인데. 하하하하. 딸도 나도 잘 안다. 물려줄 재산도 없거니와 있어도 아빠가 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아빠가 물려줄 거라고는 독립정신, 자기인생을 주도하는 자기주도정신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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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원 오늘(11일), 딸아이는 퇴직했지만, 혼자서 집에 모아둔 분리수거 재활용품들을 정리해서 판 돈 2만원이다. 이 돈으로 나는 차량기름을 넣었다. 자원을 팔아 자원을 만든 셈이다. 딸아이는 이런 정신을 잘 알고 20세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잘 살고 있다. ⓒ 송상호


지난 11일, 딸아이는 퇴직했지만 집안 고물을 정리해서 팔았다. 택배박스, 생활쓰레기, 손님쓰레기 등을 모아서 팔았다. 2만 원이나 벌었다. "땅을 파봐라. 돈이 나오나"라는 말이 있듯이, 정말 큰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자동차 기름을 넣었다. 자원을 모아 또 다시 자원을 만들었다.

분리수거도 하고, 휴대폰 요금도 내고, 자원도 재활용하고, 환경정신도 키우고, 독립정신도 키우는, 고물사업 어떤가?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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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독립만세, 삼인출판사, 2013.3.19, 송상호 ⓒ 삼인출판


#재활용 #고물 #분리수거 #독립정신 #더아모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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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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