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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의 꼽추가 '한남'이라고? 콰지모도를 위한 변론

[사심 실드] 대성당의 시대가 무너진다... 욕망과 사랑의 이야기 <노트르담 드 파리>

16.07.17 11:12최종업데이트16.08.0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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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보고 나오는 길, 함께 관람한 후배가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노트르담 드 파리>가 이렇게까지 "폭력적인 작품"이었냐며 "한남(한국 남자) 파티" 같다고 평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문을 여는 넘버 '대성당의 시대'는 "아름다운 도시 파리, 전능한 신의 시대, 때는 1482년 욕망과 사랑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주요 드라마는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향해 신부 프롤로, 근위대장 페뷔스, 종지기 콰지모도가 투영하는 욕망과 사랑의 이야기이다. 프롤로와 페뷔스의 뒤틀린 욕망과 폭력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가 됐다. 하지만 에스메랄다의 시신 앞에서 울부짖던 꼽추 콰지모도도 '한남'이라고?

후배의 요지는 이렇다. 하나, 외모가 절대적으로 좌우하는 '첫눈에 반하는' 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둘, 프롤로·페뷔스와 마찬가지로 에스메랄다를 육체적으로 욕망한 건 콰지모도도 똑같지 않은가. 셋, 콰지모도 역시 에스메랄다의 외양에 반했는데, 자신의 못생김을 원망하며 잘생긴 페뷔스에게 반한 에스메랄다를 향해 "불공평한 이 세상"을 부르는 게 온당한가. 마지막, 에스메랄다가 좋아한 건 페뷔스인데, 동의도 없이 그녀의 시체를 끌어안고 함께 죽는 건 에스메랄다의 입장에서 끔찍하지 않은가.

수차례 논쟁하였으나 결국 별다른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콰지모도를 한남으로 '기소'한 후배에 맞서, 이 글은 그의 욕망과 사랑이 한남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변론장이다.

첫눈에 반했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 성당의 종들 대성당의 종지기인 콰지모도는 인간을 상징한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종들인 마리아는, 신을 위해 울리지 않고 인간을 위해 울린다. 수태고지를 위해 울리는 대신 결혼 서약을 위해 울리는 종소리가 훨씬 더 황홀하지 않은가. 홍광호의 콰지모도는 지난 2013 시즌보다도 훨씬 더 좋아져서 돌아왔다. 굳이 별다른 평가가 필요 없다.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첫눈에 반하는 게 사랑인가, 아닌가. 이에 대해서는 각자의 연애관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올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누가 보기에는 운명적 만남이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잘생기고 예쁜 철부지 아이들의 불장난일 뿐이다. 첫눈에 반하는 데 상대의 외모가 상당 부분 작용한다는 건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전부를 외모가 대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야심한 시각 가로등 아래에서 눈웃음 지으며 인사했던 그녀에게 반했던 이유에는 먼저 알아보고 인사해주는 친절함이 섞여 있고, 시험 기간 독서실에서 민낯의 그녀가 코끝을 찡그리며 머리를 질끈 묶을 때 반했던 건 무언가에 그토록 열정적으로 집중하는 게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 속 세 남자가 에스메랄다에 반한 건 분명히 이 집시여인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콰지모도 역시 춤추며 노래하던 그녀를 보고 반해버렸다. 하지만 이 역시 단순히 에스메랄다가 예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장애인이자 종지기로서 평생을 이 성당에 묶여있어야 하는 그는 "길들여진 개"의 처지이다. 반면에 집시이자 이방인인 그녀는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고 마음껏 거리를 걷는다. 새처럼 자유롭게 노래하는 그녀에게 콰지모도가 본 건 그녀의 얼굴이나 몸매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첫눈에 반한 것 자체를 사랑이라고 하기 어려울지라도, 그 단초는 분명 될 수 있다. 사랑의 설득력과 개연성은 시작된 계기보다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온다. 콰지모도가 그녀를 향해 '아름답다'며 노래하는 시점을 보자. 사슬에 묶인 콰지모도가 애타게 물을 달라고 노래할 때, 그녀는 그의 무섭게 생긴 외모 때문에 머뭇거리다가도 결국 다가와 물을 건네준다. 콰지모도의 사랑이 더 깊어지는 건 이 시점 이후이다. 미치광이의 교황으로 선출되고, 거리의 소녀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며 피하고, 평생을 조롱과 멸시만 받아왔던 콰지모도였다. 따뜻하게 다가와 물 한 모금 건네는 그녀에게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에로스도 사랑이다, 다만...

▲ 아름답다 세 남자가 한 여자를 향해 부르는 '아름답다(벨, belle)'. 콰지모도와 프롤로, 페뷔스 모두 에스메랄다를 향해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프롤로와 페뷔스의 감정을 사랑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두 남자는 그녀를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사랑에는 순수하고 이상적인 하나의 형태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상대를 향한 여러 종류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뭉쳐있다. 이 중에는 당연히 에로스적 욕망이 포함된다. 사랑하는 상대의 육체를 갈구하는 것 자체가 그릇된 것인가? 욕망의 유무는 문제가 안 된다. 그 욕망이 차지하는 비중, 그리고 그 욕망을 표현하는 방법이 문제이다. 두 남녀가 술자리에서 눈이 맞아 하룻밤 잠자리를 하는 건 사랑일 수도 있지만, 상대방의 동의 없이 강제로 자는 건 매우 심각한 범죄 아닌가.

상대에게 내 욕망을 투영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그 상대를 존재 자체로 존중하고 받아들일 때야 욕망은 사랑으로 승화된다. 프롤로와 페뷔스, 콰지모도 모두 에스메랄다에게 육체적 욕망을 품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선택한 행동은 천양지차이다.

신부 프롤로는 에스메랄다에게 신의 도리를 가르치겠다는 명목으로 콰지모도를 꼬드겨 그녀를 납치하려 한다. 납치가 실패한 이후에도 에스메랄다와 잠자리를 하려는 페뷔스를 질투해 그를 칼로 찌르고, 에스메랄다를 모함하여 감옥에 가둔다. 그녀를 강제로 범하려다가 실패한 이후에는 그녀를 교수형에 처하도록 한다. 아무리 "신부가 되어 한 여자를 이토록 사랑하다니"라고 외쳐봤자, 광기 어린 집착에 불과하다. "나의 사랑을 거절했기에" 죽여 버린다는 게 정상일 리 없지 않은가.

페뷔스는 또 어떤가. 그는 사랑의 맹세를 두 번이나 배신했다. 원래 약혼했던 플뢰르 드 리스와의 맹약을 저버리고 에스메랄다에게 접근한다. 페뷔스에게 정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에스메랄다가 알 리가 없다. 그런 그가 에스메랄다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잠자리를 하려던 건 발 다무르 카바레의 현장이다. 사랑을 사고파는 그곳. "사랑에 굶주릴 때면 난 이곳을 찾아오지"라는 페뷔스는 아무리 봐도 여기가 처음이 아니다. 이런 장소에서 하는 사랑의 맹약 따위 애초부터 거짓과 모순이다.

"오 발 다무르, 그곳에선 몇 푼에 사랑을 팔지. 황금도 달콤한 말도 거기선 다 필요 없어. 그곳에선 사랑 따윈 몇 푼이면 살 수 있지." -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제1막 No.26 '발 다무르 카바레' 중에서

▲ 노트르담 습격 안식처를 찾아 헤매는 집시들. 하지만 노트르담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주민과 이방인은 충돌하고야 만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장점 중 하나는, 중심 드라마를 해치지 않으면서 시대적 갈등을 충실하게 잘 표현했다는 것이다. 서범석 배우는 프롤로 장인이라 칭해도 과하지 않다. 박송권 클로팽의 카리스마도 발군이다.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페뷔스란 이름의 뜻을 묻는 에스메랄다에게, 시인 그랭구와르는 '태양'이라고 답한다. 귀족 가문의 근위대장. 훤칠하고 잘생긴 데다가 빛나는 갑옷을 입고 말은 탄 그는 태양처럼 빛났다. 그러나 태양은 너무 밝고 뜨거워서 아무도 그 본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 사이사이에 박힌 흑점은 더더욱. 페뷔스는 외양 뒤에 자신의 검은 욕망을 감춘다.

에스메랄다가 페뷔스에게 품었던 감정은 진짜지만, 그건 페뷔스의 실체를 알기 전이다. 자유와 해방을 위해 폭동을 일으킨 집시들을 페뷔스는 무참히 진압한다. 그 과정에서 에스메랄다의 아버지 클로팽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살해한다. 나머지 무리도 모두 추방하거나 유배 보낸다. 그때에야 에스메랄다는 빛 뒤에 숨어있던 페뷔스의 진짜 정체를 깨닫는다.

페뷔스는 에스메랄다가 모함으로 인해 갇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플뢰르에게 돌아가 정말로 사랑하는 건 그대라며, 보헤미안 마녀 에스메랄다에게 잠시 홀렸던 것뿐이라고 변명한다. 이렇게 그는 에스메랄다에게 했던 사랑의 맹세를 또 한 번 어긴다. 본인이 먼저 추파를 던졌으면서 에스메랄다에게 유혹의 책임을 돌린다. 불륜 문제에서 여성만 '나쁜 년'으로 몰아 마녀 사냥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것

▲ 새장 속에 갇힌 새 페뷔스를 상해했다는 모함으로 감옥에 갇힌 에스메랄다. 페뷔스가 죽은 줄 알고 있는 그녀는 콰지모도를 애타게 찾고, 콰지모도 역시 그녀의 행방을 몰라 걱정한다. 두 사람에게는 분명 쉽게 예단할 수 없는 감정선이 존재한다. 전나영의 에스메랄다는 세 에스메랄다 중 가장 '집시' 여인의 느낌이 강하다.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페뷔스를 이미 사랑하고 있으므로, 에스메랄다가 콰지모도에게 직접 연애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은 작품 속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강한 신뢰관계로 묶여 있었다. 에스메랄다는 콰지모도가 "무섭지 않다"고 말하며, 성당의 석상들처럼 겉보기와 달리 친근한 구석이 있음을 토로한다. 그녀가 위기에 빠졌을 때 애타게 찾는 것도 콰지모도이다.

"지금은 어디 있나요. 어딘가요, 콰지모도. 갇힌 나를 풀어줘요. 어서 내게 와 줘요. 당신이 묶여있던 날, 당신에게 물을 줬죠. 그날 이후로 우리는 영원한 친구가 됐죠. 무엇인지 모를 힘이 우리를 묶어주었죠." -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2막 No.04 '새장 속에 갇힌 새' 중에서

페뷔스가 태양이라면 콰지모도는 달이다. 태양처럼 밝지는 않지만, 때로는 태양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그 자리에서 에스메랄다를 바라보고 있다. 프롤로와 페뷔스가 에스메랄다를 파괴하려고 할 때, 에스메랄다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건 콰지모도이다. 에스메랄다가 고통스러워할 때 눈물 흘리는 이도 콰지모도뿐이다. 콰지모도가 노래하는 '불공평한 이 세상'은, 타고난 외모를 원망하는 것을 뛰어넘는다. 태양에 눈이 멀어 페뷔스의 흑점을, 거짓 맹세를 보지 못하는 에스메랄다를 향한 안타까움이다.

"불공평한 이 세상, 그와 난 너무 달라. 그는 그 어떤 말도 눈길도 주지 않고, 그대 모든 사랑을 전부 가져갔는데. 그의 거짓맹세는 그대 눈을 가리고. 인생을 바치겠죠, 그를 위해서라면." -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2막 No.17 '불공평한 이 세상' 중에서

▲ 이방인의 아베마리아 프롤로와 페뷔스가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이자 도구로 에스메랄다를 이용하는 반면, 콰지모도는 지고지순하게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그 사랑 속에 육체적 욕망이 포함되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케이윌의 콰지모도는 첫 도전치고 나쁘지 않다. 기본적으로 노래가 받쳐주고, 다소 아쉬운 점은 있지만 연기를 위해서도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게 무대 위에서 느껴진다. 이전에도 몇 번 얘기했지만, 윤공주는 못 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에게 바라는 건, 자신의 욕망이라는 틀 안에 그녀를 가두는 게 아니라, 그녀가 가장 그녀답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새장 속에 갇힌 새' 대신, 자유롭게 춤추고 노래하는 집시여인으로.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 노래해요, 에스메랄다. 내 품에서 잘 자요. 죽도록 그대를 사랑해. 저 세상 그 끝까지, 죽음도 두렵지 않다. 함께 갈 수 있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아." -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2막 No.23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 중에서

에스메랄다가 죽은 뒤, 그녀의 시신을 수습해 그 옆에서 노래 부르고 숨을 거두는 유일한 이 콰지모도. 에스메랄다는 더는 페뷔스를 사랑하지 않고,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에스메랄다가 비록 콰지모도를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영원한 친구가 그녀의 옆에서 함께 백골이 되는 걸 거부할까.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가능성도 크다. 단정적으로 선을 긋기는 어렵다.

자, 이제 콰지모도의 변호를 마칠 시간이다. 국내 100만 관객을 돌파한 <노트르담 드 파리>는 프랑스 뮤지컬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히는 극이다. 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단점(개연성, 신별 연결고리)은 최소화하고, 장점(대중적이고 팝적인 넘버, 화려한 안무) 등은 극대화했다. 특히 신의 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르네상스가 태동하는 당시 역사를 사랑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원작자 빅토르 위고만의 휴머니즘과 낭만주의도 극 안에서 돋보이도록 잘 살렸다.

교권을 상징하는 프롤로와 왕권을 상징하는 페뷔스는 민중을 탄압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배척받는 장애인 콰지모도는 가장 비인간적인 외모의 존재가 가장 인간적일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 그리고 역시나 가장 핍박받는 위치의 여인 에스메랄다를 사랑한다. 과연 그의 욕망은 인정받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인가. 콰지모도 역시 다른 캐릭터들처럼 여성의 육체만을 욕망한 한남인가, 아니면 진정한 사랑을 꿈꾼 인간인가. 판관이 되고 싶은 독자는 지금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로 향하면 된다.

▲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포스터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지난 6월 12일,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개막했다. 오는 8월 21일 서울 공연을 마친 후 지방공연에 들어간다. 스테디셀러에는, 스테디셀러인 이유가 있다. 왜 <노트르담 드 파리>가 이토록 국내 팬에게 사랑받는지 직접 가서 확인하자. 콰지모도에 대한 평가는 덤으로.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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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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