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프랑스판 '춘향전'...번역에 얽힌 뒷얘기

퇴계원고 자랑 외국어 진로특강, 이번엔 번역가 윤부한 강의

등록 2016.07.19 14:05수정 2016.07.1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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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8일 교정의 푸르른 녹음이 땅거미에 가려질 무렵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퇴계원고등학교에선 제5차 외국어 진로특강이 진행되었다. 매년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인 직업인들을 초빙해 진행되는 이 행사는 퇴계원고의 특색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그 동안 마스터셰프코리아 시즌3 준우승자 국가비, 스페인 기타리스트 안형수, 한국외대 동시통역대학원 한원덕 교수, 전문번역가 고인경, 한국문학번역원 고영일 번역출판본부장, 외교부 중남미국 장명수 국장, 외교부 이동훈 외무행정관이 행사에 참여해주셨다. 이번 5차 특강엔 한국 문학번역원 윤부한 번역가를 모셨다.

한국외국어 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숙명여대 교수직을 겸임하고 있다. 지금부터 그가 소개하는 우리의 문학 속 숨은 발자취와 역사를 따라가 보자! 윤 번역가가 한 말을 요약해서 정리했다.

그네 탄 춘향이가 프랑스에선 높은 코로 바뀌었다고

우리나라 소설이 가장 처음 외국에 알려진 건 우리 예상보다 훨씬 이른 1892년이었다. 프랑스 유학길에 최초로 오른 조선인 홍종우가 프랑스 소설가와 함께 '춘향전'을 번역했고 당시의 많은 프랑스인들에게 읽혀졌다고 한다.

프랑스 정서에 맞추어 그네를 타는 동양인 춘향이가 높은 코에 쌍커풀 짙은 눈을 가진 서양인으로 바뀌었단 사실은 웃음을 짓게 하는 또 하나의 일화이다. 최초의 번역가인 홍종우는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최초의 조선인이자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을 사살한 사람이기도 하다.

세계인은 우리의 문학을 얼마나 알아줄까?

홍종우가 자국의 소설을 알렸다면, 한국을 사랑해 자국에 알린 외국인도 있다. 제임스 게일(James Scarth Gale, 1863-1937)이란 작가로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을 홀로 번역해 넓은 미국 땅에 홍보했다. 1922년 영어로 번역된 구운몽의 이름은 'The Cloud Dream of Nine'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 우리나라 번역 역사는 잠시 멈춘다. 국가 재정비, 전쟁, 경제성장 등을 이유로 번역과 같은 인문학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 손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번역에 국가가 박차를 기울인 건 2002 한일 월드컵 당시다.

월드컵 개최국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한국 문학에도 옮아오며 시작되었다고 한다. 먹고 살기 급급한 나라에서 번역가와 같은 인문학도들이 살아남기 얼마나 치열했을까.

내가 사는 이 시대가 인문학을 고민하기에 배고프지 않은 시대란 사실에 퇴계원고 학생들은 숙연해졌다.

세계가 박수 치며 인정하는 우리 시대 젊은 작가들

요 근래 세계 번역 시장과 도서시장에서 인정받는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채식주의자>의 한강, <철수>의 배수아, <7년의 밤>의 정유정, <두근두근 내인생>의 김애란이 대표적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쓴 소설은 길게는 10년에서 짧게는 4-5년이 된 작품들이다. 결과물이 세계에 인정받는데 꽤 긴 시간이 걸린 까닭은 우리나라 번역 과정과 수준이 최근 들어 발전했기 때문이다.

물론 근본적으로 그들이 써 내려간 결과물 자체가 우수하단 사실은 우리 모두 동의하고 있다. 작가들과 번역가들의 밤낮 없는 노력에 한국 문학의 위상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배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언어의 폭이 너무 넓어 다른 외국어가 언어의 전문성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의구심을 품었다. 교수님은 다른 견해를 주장하셨다. 우리 언어에 담긴 고유성과 특징만큼이나 세계 모든 언어에는 특유의 고유성이 스며 있기에 번역이 탈락의 이유는 아니라고 말이다.

문학 교류는 같은 눈높이에서 인류에게 말을 거는 행위로 모든 언어는 우수성이나 전문성 면에서 모두 같다고 말하며 강의를 끝마쳤다.

강의 직후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고,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들 표정을 보며 훗날 작가와 번역가가 함께 만들어내는 노벨 문학상이 퇴계원고 학생들 사이에서 나올 수도 있으리란 상상을 했다.

다음은 윤부한 번역가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정확히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크게 네 가지 일을 하는데 하나는 한국문학작품을 번역하는 일 또 그 번역된 작품을 출판하는 일, 그리고 그 출판된 문학작품을 가지고 해외 또는 국내에서 교류행사를 하는 일, 마지막으로 번역일을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번역 아카데미라는 교육기관을 통해 교육을 시키는 일을 한다. 그 중에서도 현재 교류활동 그리고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 강연 내용 중 한국작가 분들의 작품이 번역되어 해외에 문학상후보로 오르거나 수상했다는 사실을 사례로 드셨다. 한글로 된 소설이나 작품들은 풍부하거나 다양한 표현이 외국어로 번역되기에 어려움이 많아서 작품 가치가 저평가된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러한 문제점은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 부분은 없다. 왜냐하면 모든언어는 자신의 감정상태를 나타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어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언어도 또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작품 속에는 굉장히 많은 의성어들이 포함되는데 이 의성어들을 통해 어떤감정을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사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듯이 한국어는 어휘가 풍부해서 외국어로 옮기기 힘들다라는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다른 나라 말을 우리나라 말로 옮길 때도 똑같은 개념이다. 그래서 보통 번역은 집에 비유하게 된다. 한 곳에 있는 집을 다른 곳으로 옮길 때 그 집을 해체하여 그 자재를 배에 싣고 배를 타고 옮겨서 다른 곳에 집을 다시 짓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중간에 오다가 빠진 자재들도 있을 것이고 땅이 고르지 않아 평평하게 집을 못지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집을 짓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옮기기 전의 집과 옮긴 후의 집이 똑같다면 그건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모든 문학작품은 창작에 준하는 그 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 저희 한국 문학이 앞으로 세계에 더 많이 알려지기 위해 학생들이 현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오늘 강연에서 말한 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일단 한국문학에 대해서 애정을 갖는 일이 중요하다. 학교에서 문학작품은 중요한 소일거리이자 시간 보내기 좋은 수단이다. 단순히 시간 보내는 것을 넘어서 문학작품을 많이 읽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문학에 대해서는 풍성한 나라가 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다른 또 하나는 외국어를 학습하는 것이다. 외국어는 굉장히 작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배우고 익히고 익히고 익히면 나중에 어린왕자 구문에서도 말했듯이 자기가 길들여질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 번역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우리나라 작가들도 좋은 번역가를 만난다면 일본작가들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듯이 그 정도 버금 가는 수준에 오를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지 궁금합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노벨상을 받은 일본작가들 작품의 경우 일본어작품보다 영어번역본작품이 더 아름답다고 평하는 사람이 일부 있을 정도로 문학이라는 것은 누가 더 잘쓰고 누가 못쓴다고 따지기 굉장히 어렵다. 왜냐하면 한 나라가 가지고 있는 감정 자체에 대해서 서로 의사를 나눠 소통하기 때문이다.

사실 비교하는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흔히 국제적인 기준에 맞춘다면 한국문학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노벨문학상이라는 것이 올림픽경기처럼 잘하면 받는 것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받을지는 달라질 수 있지만 그 부분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작품이 좋아야 하고 번역 또한 잘 되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작품은 어릿광대가 번역을 해도 그 작품의 본질이 드러난다는 말이 있다. 정말 좋은 작품이라면 어떠한 번역도 견딜 수 있고 그걸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 선생님께서 개인적으로 존경하시는 한국작가가 누구이신지 궁금합니다.
"좋은 작가란 자기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그 이야기를 다른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주관이 너무 강한 작가를 보면 소통을 하려는 의지가 없고 또 소통만 중시하다 보면 본인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 젊은 작가 분들을 보면 '두근두근 내인생'을 쓴 김애란 작가는 해외에 있는 독자들도 쉽게 받아들이는 만큼 보편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다. 외국에서 인정받은 '엄마를 부탁해'를 쓴 신경숙 작가 또한 그렇게 생각된다. 사실 지금 나오고 있는 대다수 작품들은 해외 작품들과 비교해도 크게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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