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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투성이 <사냥>, 그래도 놓치지 않고 싶었다

[주철진의 독(讀)한리뷰] 늙고 낡은 것들의 활약이 돋보인 영화 <사냥>

16.07.21 15:31최종업데이트16.07.2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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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고 독하게 영화 속의 메시지를 읽고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청년의 통통 튀는 감성을 담아 표현하고 소통하겠습니다. [편집자말]
요즘 웹툰을 보는 누리꾼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 있다. 바로 '할아브'라는 말이다. 이 말은 네이버의 웹툰 <하이브>에서 유래한 말인데 만화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흰머리에 '개장수'라고 불리는 할아버지가 엄청난 활약을 하면서 생긴 말로 할아버지와 하이브를 합쳐서 할아브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이브>에서 일명 할아브는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다 쓸어버리고 혼자서 무쌍을 찍는다. 답답한 주인공과 다르게 쌓여온 경험과 정확한 판단력을 무기로 활약하는 할아버지에게 모두가 환호하고 있다.

이우철 감독의 <사냥>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 바로 '할아브'를 만날 때와 비슷했다. 영화 내내 어리숙하고 겁 많은 모습을 보이는 맹준호(권율 분)과 자꾸만 악만 지르는 동근(조진웅 분)를 필두로 한 어설픈 엽사 무리와 대비되는 기성(안성기 분)의 모습은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사냥>의 할아브인 기성의 존재감을 부각한다.

하지만, <하이브>에서 할아브의 활약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긴박한 상황들이 계속 몰아치는 상황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서 <사냥>의 기성이 완벽한 활약을 보이며 관객들을 이끌기에는 주어진 상황의 절박함이나 개연성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들은 분명히 있다.

'사냥'과 '산'을 통해 새로운 추격극을 노리다

사냥이라는 소재의 선택은 적절했다. 사냥을 떠난 엽사들과 종종 사냥을 즐기던 할아버지라면 총이 등장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기때문이다. 총을 든 기성은 여러 명의 젊은 동근의 무리와 긴장감 넘치는 추격신을 만들어낸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주요 소재를 '사냥'으로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기존에 한국식 추격물들은 대부분 달리고 또 달렸다. 때로는 오토바이나 차 같은 탈 것을 등장시켜서 속도감을 증가시키기도 했지만 많은 영화의 추격신은 대동소이했다. 총기를 소지하는 것이 금지된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많은 영화는 할리우드와 같은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총격신이 등장시키지 못했다.

총기류가 등장하지 못하는 것의 의미는 단지 박진감이나 스릴의 부진을 뜻하지만은 않는다. 한국 영화들은 총기류가 등장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를 보고 우리가 몰입할 수 있었던 것처럼 숨 막히는 분위기와 인물들의 치밀한 심리묘사 등을 통하여 충분히 전율과 박진감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총기류의 부재는 추격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 제한을 두도록 한다. 제대로 쏘기만 하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총의 속성은 그것을 사용하는 인물이 여성이나 힘없는 노인이라고 할지라도 똑같이 적용된다. 즉, 총이 사용된다면 연약한 여성이나 힘없는 노인이 주인공이 될지라도 추격물을 이끌어나가는 데 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물론, <하이브>의 할아브처럼 엄청난 격투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총이 아니라고 해도 문제가 없을 테지만 남자를 가볍게 제압할 수 있는 여성이나 젊은이들을 상대로 지지 않는 격투 실력을 가진 노인이라는 설정은 필연적으로 그들에게 비밀스러운 과거를 만들도록 강요하게 된다. 텃밭을 가꾸던 평범한 옆집 할아버지가 갑자기 악당들을 쓸어버리는 전개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사냥이라는 소재의 선택은 적절했다. 사냥을 떠난 엽사들과 종종 사냥을 즐기던 할아버지라면 총이 등장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총을 든 기성은 여러 명의 젊은 동근의 무리와 긴장감 넘치는 추격신을 만들어낸다. 여기에는 산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특성이 몫을 보탠다.

산이 가지는 특성, 특히 외진 지역에 있는 산이 가지는 특성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폐쇄적인 공간이라는 것이다.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져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을 것 같은 산에서는 총성이 시원하게 울려 퍼지고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발생하지만, 외부와 차단된 채로 사건이 진행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 그로 인해 기성과 동근 등은 자신들만의 16시간을 가지고 추격신을 만들어간다.

아쉬운 점이 많은 <사냥>

탐욕에 눈이 멀어 냉혹하게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인다고 하기에는 인물들에게 허술함이 많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금에 눈이 먼 사람들의 탐욕을 느끼기에는 그들의 광기는 턱없이 약하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우철 감독의 시도는 분명 신선했다. 사냥과 산이라는 소재들을 가지고 기존의 영화들에서는 쉽지 않았던 총성이 울려 퍼지는 추격극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상당히 많다.

우선, 영화 내에 설정들이 탄탄하게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각본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지는 천진우 감독과 각색을 맡은 김한민 감독의 의견 차이로 인해서 이우철 감독으로 메가폰이 옮겨진 까닭인지 몰라도 영화에 등장하는 설정들이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기성은 탄광이 붕괴하는 사고에서 홀로 살아나온 사람이다. 그는 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산에 집착하며 자꾸만 사냥하러 산을 오른다. 과거 회상장면을 통하여 그가 홀로 살아나온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나 양순(한예리 분)과의 관계가 단지 죽은 동료의 딸이기 때문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 아님을 예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는 하지만 그의 비정상적인 행동들을 이해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또한, 쌍둥이 형제로 설정된 동근과 명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명근의 역할이 기성에게 쓰러진 동근을 한 번 더 재활용하는 것으로 느껴질 만큼 명근이 존재했어야 할 필요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동근과 명근이 쌍둥이라는 사실은 단지 양순의 할머니(예수정 분)이나 양순이 작은 오해를 하도록 만든 이후 별다른 메리트를 가지지 못한다. 명근이 아니라 동근 혼자뿐이라고 해도 전혀 상관이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무게감도 다소 부족하다. 금맥을 발견했다는 동근의 부름에 모인 엽사들이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 관객들에게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그들이 함께 하는 이유가 금에 대한 탐욕이라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이것이 양순의 할머니를 죽이고 기성을 죽이기 위해 발악을 해야 될 만큼 무게감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는 다소 의아하다. 탐욕에 눈이 멀어 냉혹하게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인다고 하기에는 인물들에게 허술함이 많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금에 눈이 먼 사람들의 탐욕을 느끼기에는 그들의 광기는 턱없이 약하다.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이 늙은 기성과 낡은 공기총은 젊고 새로운 것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무수한 총격 속에서 얻어 맞아 기절하기도 하고 죽을뻔하기도 하지만 기성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총격을 날린다. 여기서 나는 늙고 낡은 것의 절실함과 끈질김을 느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다만, 이우철 감독의 <사냥>에는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먼저, 사냥과 산이라는 소재를 통해 기존의 추격극에 변화를 시도했다는 점은 분명 칭찬하고 싶다. 이런 시도들은 분명 한국 영화를 더욱 다양하게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좋았던 점은 추격신을 메인으로 하는 영화에 안성기라는 배우를 캐스팅하여 이끌어나갔다는 점이다. 안성기씨는 그동안 2003년도 <실미도>, 2011년도 <부러진 화살> 등을 연기해 왔다. <실미도>에서는 교관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줬고, <부러진 화살>에서는 불같고 통쾌한 인물인 김경호 역할을 맡기도 했다. 기존의 작품들에서 안성기씨가 탁월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침착하고 차분하게 영화를 이끌었다면 이번 <사냥>에서는 그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안성기씨가 연기하는 기성은 나이 많은 노인이다. 게다가 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산에 집착할 정도로 과거에 붙잡혀 사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남들보다 뛰어난 지능도 힘도 없다. 그가 가진 것은 오로지 주인과 함께 낡아 버린 공기총뿐이다.

하지만, 이 늙은 기성과 낡은 공기총은 젊고 새로운 것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무수한 총격 속에서 얻어 맞아 기절하기도 하고 죽을뻔하기도 하지만 기성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총격을 날린다. 여기서 나는 늙고 낡은 것의 절실함과 끈질김을 느꼈다.

새롭고 좋은 것들에게 밀려 사라져 가는 오래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칼을 만들던 장인들은 공장에서 나오는 칼들에게 밀려 생계에 위협을 받으며 사라지고, 장인들에 손에서 만들어져 매번 다르게 탄생했던 도장들은 어느새 기계로 일관되게 만들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늙고 오래된 것들이 새롭고 신식의 것들에게 밀리는 요즘이다. 그와 함께 오래된 것들이 가지고 있던 추억과 열정 또한 보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냥>의 기성과 낡은 공기총은 쉽게 사라져주지 않는다. 새로운 것들의 격한 공격에도 "아직 쓸만하다!"라고 외치는 것처럼 끈질기게 저항한다. 마치 장인들과 오래된 것들의 한이 기성에 손에서 총격으로 쏟아져 나오는 듯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쉬운 점이 많은 영화이긴 하지만 그냥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똑똑한 주인공이 활약하고 엄청난 격투기술을 가진 주인공들이 활약하는 영화들이 많은 틈에서 <비밀은 없다>의 엄마인 손예진이 절박한 모성을 보이며 어설펐지만, 진실을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곡성>의 곽도원이 경찰로서 냉철한 모습이 아니라 딸의 아버지로서 미칠듯한 부성으로 현혹되며 흥미롭게 만들었다. 특별함이 없었기에 더욱 절박하고 진심일 수 있었던 <비밀은 없다>의 손예진과 <곡성>의 곽도원처럼 <사냥>의 안성기씨도 그 절박함이 나는 마음에 든다. 그러므로 비슷한 영화들이 더욱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절박함 사냥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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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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