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에 집착하는 아이, 왜 그럴까

[육아] 일상에 젖어든 1등 타령... 그저 지금 이순간 행복하렴

등록 2016.07.23 20:38수정 2016.07.2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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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등이야!" 숲 속에서 달리기하는 아이들 [그림-권순지] ⓒ 권순지


4살이 된 후 큰아이는 1등에 대한 집착과 욕구가 급격히 강해졌다.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 중에 불편스레 듣는 아이의 그 말들엔 늘 '1등'과 '내가 먼저'가 있다. 한 살 차이의 동생을 일찌감치 곁에 두어서 일까.


일찍부터 맺어야만 했던 동생과의 관계에서 지기 싫어하는 마음은 엄마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시작되었을까. 무엇이든 동생보다 늘 먼저 해주길 바란다. 늘 동생보다 먼저인 사람이 되길 원한다. 경쟁 심리는 언제 어디서부터 작동되었을까.

'1등'이란 말을 아이에게 가장 처음 가르쳐준 사람은 아이의 외할머니이다. 한창 밥 먹는 것을 싫어하고, 동생에 비해 밥 먹는 속도가 현저히 느렸던 큰애에게,

"얼른 먹어서 1등해야지."
"동생보다 더 빨리 먹으려면 얼른 먹어야겠네."

자주 승부를 운운하던 외할머니의 한 마디 효과는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전체로 흘러갔다. 함께 하는 아침식사, 저녁식사 때에는 꼭 1등이 등장한다.

"내가 1등 해서 다 먹어 버릴 거야."
"내가 1등 해 버릴 거야." 


자랑스럽고 흡족한 표정을 만면에 띠고 "엄마 내가 1등으로 다 먹었어요" 아이가 말했을 때, "엄청 잘했네. 1등 하다니 멋지다"라고 맞장구 쳤던 순간을 후회하게 되었다. 어린 동생보다 밥을 더 빨리 먹어서 칭찬을 하는 엄마라니. 뒤돌아서면 부끄러운 순간이 한 둘이 아니지만, 아이의 1등에 대한 집착을 그때 잡아줬어야 했다. "그래 열심히 먹느라 고생했어. 밥 열심히 먹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멋지구나"라고 말이다.

한동안 아이에게 밥 먹는 일에 관한 화두는 정해져 있는 듯 일정했다. 어린이집 하원 후 "오늘은 어떻게 지냈어? 잘 지냈어? 밥은 잘 먹었고?" 궁금한 엄마의 쏟아지는 질문이 끝나면 녀석 특유의 표정으로 대답한다.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나 무언가 기분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짓는 찡그리는 눈썹의 움직임. 그리고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는 듯 삐죽 내민 입술로 대답을 시작하는 것이다.

"응. 맛있는 거 나와서 내가 1등으로 다 먹었어."

오늘 밤에도 자기 전에 목마르다며 물 달라고 얘기하는 동생 옆에서 달려 나와 "나도 물 먹고 싶어. 나 먼저 줘. 내가 1등이야" 했던 큰 아이. 자연스레 작은아이는 똑같이 배운다.

"내가 1등이거든." 

미등 하나만 켜둔 고요하고 어두컴컴한 밤에 다투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격앙된 내 목소리마저 가세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각자의 컵에 물을 담아 동시에 건넸다. 다행히도 아름다운 밤의 적막은 깨지지 않았다.

1등의 나비효과는 아침전쟁에도 한몫 거든다. 차량운행을 하지 않는 어린이집 등원을 위해 아침엔 직접 차에 태워 바래다주는데, 각자의 카시트에 태울 때에도 큰아이의 1등 불꽃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되곤 한다.

먼저 곁으로 온 작은 아이를 뒷좌석 한 곳에 앉혔을 때 주차장을 떠나가라 소리치며 고집 피우다 반응 없는 엄마를 살피며 울먹이기까지 했던 큰아이의 슬픔의 불길은 좌절이었다. 어린이집에 도착하기까지 내내 눈물을 훌쩍이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비슷한 내용의 반복이었다.

"동생이 먼저 탈 수도 있는 거야."
"매번 너만 먼저 태울 순 없지."
"먼저 타고 나중에 타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이번엔 동생이 먼저 탔으니 다음엔 네가 꼭 먼저 타자." 
"엄마가 널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동생을 먼저 태운거야. 너무 슬퍼 하지마."

눈물을 닦고 참으며 겨우 고개를 끄덕이고는 알았다고 대답하는 아이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앞으로도 저런 좌절은 많고도 많을 텐데, 그때마다 이렇게 슬퍼하지는 말아주길. 지금보다 더 단단하게 이겨 내주길. 어차피 인생은 좌절의 연속인데. 바깥에서 신나게 달리기 하며 놀 때도 늘 1등을 하고 싶어 한다. 어쩌다 내가 더 빨리 달려 이기려고 하면,

"엄마는 1등하지마. 꼴등해." 

얼굴이 빨개지며 뛰면서 숨이 차면서도 그 말은 해야겠다는 듯 소리치는 것이다. 엄마는 꼴등하란다.

"1등하지 않아도 괜찮아. 1등도, 2등도, 3등도, 그리고 꼴찌도 잘한 거라고. 너도 얘기해 봐. 꼴등도 잘한 거라고 말이야."

아직은 그런 말을 듣고 따라 얘기하는 것조차 어색해 하는, 아직 잘 모르는 어린 아이. 아이가 그저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즐기며 살았으면 한다. 엄마와 달리며 느꼈던 저녁 공기의 서늘한 냄새와 옆에서 보며 환하게 웃는 동생의 웃음 소리와 그 표정. 달리는 동안 온몸의 근육이 움직이는 듯한 살아있는 몸의 감촉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저 그렇게 행복하면 되는 거라고. 우리 이렇게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자고.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rnjstnswl3 중복게재
#1등 #내가 1등 #꼴찌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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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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