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컴즈 희망퇴직 후 "하루 12시간→일주일 12시간 일합니다"

[1인기업시대 ⑩] 비주얼씽킹 강의·행복화실 운영 정진호 J비주얼스쿨 대표

등록 2016.07.23 14:12수정 2016.08.2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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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사라진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와 기술의 발달은 우리 모두를 일자리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평생직장의 시대는 오래 전 끝났고, 100세시대 누구나 2~3번의 일(業)을 해야 생존한다. 국가도 사회도 답해줄 수 없는 문제, 결국 개인이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내 일은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다. 직장을 다니면서, 또는 홀로서기를 통해 '1인기업'을 운영해온 이들에게서 답을 찾고자 한다. '직장 다닌다고 직업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한 '1인기업가'들의 경험담을 통해 해법을 찾아본다. [편집자말]
1997년 12월 IMF 외환위기 직후, 취업 전선에 뛰어든 남자는 30곳에 이력서를 넣어 31번째 기업으로부터 합격통보를 받았다. 이후 내리 12년간 개발자로 일하다 2010년 대기업 기업문화팀으로 이직해 경력전환에 성공한다.

4년간 기업문화전문가로 가장 행복한 직장생활을 보냈지만 회사의 실적악화로 인해 2013년 12월 희망퇴직자 대열에 서게 됐다. 그리고 3년 후, 그는 대기업이라는 거대한 항공모함을 떠나 작지만 자기만의 배를 띄우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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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매견으로 알려진 사모예드 미호와 함께 포즈를 취한 정진호씨. 정씨는 2014년 11월 파양돼 오갈 곳 없던 미호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후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행복해했다. 가끔 고민거리가 있을 땐 미호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다보면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고 말했다. ⓒ 정진호


비주얼씽킹 및 마인드맵 강사로 활동하며 비전공자들을 위한 미술강좌 '행복화실'을 운영하는 3년차 1인기업가 정진호 J비주얼스쿨 대표(45)는 16년의 직장생활 중에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돕는 '딴짓'에 열심이었다.

"첫 직장에서 맡은 일이 전 직원을 위한 게시판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난감했는데 선배가 알려준 PHP(Hypertext Preprocessor: 프로그래밍언어의 일종)를 사흘 동안 독학하며 웹사이트 첫 페이지를 만들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3시간이면 가능한 일이더라고요. 같은 시행착오를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PHP스쿨'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2년 동안 쌓인 정보를 모아 책도 냈어요. 그 커뮤니티는 7년 만에 2만 명이 찾는 개발자 커뮤니티가 됐죠."

야후코리아에서 일하는 8년 동안에도 그는 단순한 개발자의 역할을 넘어서게 된다. 경력 개발자들이 입사 후 3~4주 정도 받아야 하는 교육이 팀마다 따로 진행되는 점을 눈여겨봤던 정씨는 몇 년 후 직접 커리큘럼을 짜서 24개의 과목을 만들고 총 12명의 사내 강사를 뽑아 3주간 매일 4시간씩 교육하는 '부트캠프'프로그램을 만들어 큰 호응을 얻었다.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을 때 저는 큰 즐거움을 느꼈어요. PHP스쿨 커뮤니티를 운영했던 것도 내가 겪었던 불편한 점을 공유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죠. 야후의 부트캠프도 원래 교육팀이 할 일이지만 엔지니어인 제가 직접 과정을 설계하니 훨씬 효과적이었어요."

개발자→ 테크니컬 에반젤리스트→기업문화전문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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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봄 티켓몬스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정진호씨. ⓒ 정진호


2008년 IT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회사 안팎의 소통을 책임지는 '테크니컬 에반젤리스트'로 소개됐다. 테크니컬 에반젤리스트 직무는 국내에선 다소 생소하지만 MS 등 글로벌IT 기업에선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알려져 있다. 새로운 서비스, 기술, 개념, 플랫폼 등을 조직 밖에 있는 사람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글도 쓰고 사용자도 만나고 강연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에반젤리스트는 '누군가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끔 도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내게 사람과 사람, 그리고 일들을 연결하는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대한민국에서 개발자로 30년 이상 일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어요. 그래서 찾은 것이 '생각 정리' 기술인 '마인드맵(mind map)'이었습니다."

마인드맵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정리하고 또 그것을 새로운 경험과 연결해가는 과정에 매료된 정씨는 마인드맵 공인 강사가 됐다. 직원들을 상대로 3시간짜리 사내 교육을 실시했고 블로그에 올린 강의내용을 정리한 슬라이드를 본 SK컴즈로부터 강의요청을 받게 됐다. 그 일이 인연이 돼 6개월 후 그는 SK컴즈로 이직하게 됐다.

"IT업계에서 계속 일하는 것이 맞나 하는 회의가 들던 차에 SK컴즈에서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얻게 됐어요. 기업문화팀에서는 900명의 직원이 즐겁고 행복하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는 일과 사내게시판을 통한 소통, 방송, 동호회 지원 등 새롭고 다양한 일들을 했어요. 제 직장생활 중 그때가 가장 행복하게 일했던 시기였어요."

5년간 1800시간 그림 그려... 비전공자를 위한 '행복화실'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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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컴즈 재직당시 3년마다 2주의 근속휴가를 받았다. 2013년 여름, 아들과 함께 3주동안 미국에 머물며 그림그리기 여행을 다녔다. 사진은 LA국제공항 풍경을 담은 그림. ⓒ 정진호


많은 양의 업무를 감당하면서도 하루 1시간씩 따로 시간을 나 자신만의 콘텐츠를 쌓아나갔다. 마인드맵에 이어 '비주얼씽킹(Visual Thinking)'을 2년간 공부했고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에 5년간 1800시간을 쏟아부었다.

비전공자의 그림 수업 과정을 그린 <철들고 그림 그리다>(2012년)와 사내 그림 동호회 '행복화실'을 운영하면서 낸 책 <행복화실>을 포함, 총 15권의 저서와 역서를 펴냈다. 당시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대기업이라는 항모에서 옮겨탈 새 배를 준비하던 시기였다.

2013년 겨울 회사의 실적악화로 기업문화팀 전원이 희망퇴직을 신청했고 게임 관련 회사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나이가 너무 많다거나 연봉이 높다는 이유로 퇴짜맞기 일쑤였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었고 생계를 위해 뭐든 해야만 했다. 독립하겠다는 특별한 의지는 없었지만 재취업까지 시간을 번다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다.

"회사 안에서 했던 3가지, 비주얼씽킹 마인드맵 행복화실을 그대로 들고나와 밖에서 해보기로 했어요. 2014년 비주얼씽킹 첫 강좌를 개설했는데 하루 만에 40명 수강인원이 마감되는 것을 보고 가능성이 보이더군요. 3개월 정도 지속했더니 수입도 괜찮았고 직장 다니는 것보다 시간적 여유도 있어 자연스럽게 1인기업으로 활동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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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컴즈 기업문화팀에서 함께 일했던 김민정 팀장이 독립 후 설립한 동화책카페 '달달한작당' 스케치를 하고 있는 정진호씨.(왼쪽) 완성된 달달한작당 카페 풍경을 그림. ⓒ 정진호


3가지 일 중 굳이 수입으로 비중을 나눠본다면 강의(비주얼씽킹 마인드맵) 60%, 행복화실 30%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외에 기업에서 요청하는 PT, 기업문화, 창의력 등에 대한 강의가 10% 정도 된다. 행복화실은 1년에 2번, 12주 과정으로 초등생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다.

"예전엔 하루 10~12시간 일했다면 지금은 일주일에 12시간 정도 일하고 수입은 대기업 다닐 때와 비슷합니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의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 만족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요. 다만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리스크가 있지만 그건 직장 다니는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아내는 좀 불안해하지만 저는 솔직히 별로 어려운 점이 없습니다. 지금처럼 한다면 70세까지도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인기업가로 독립 원한다면 "시장에 팔릴 만한 나만의 가치 만들어라"

1인기업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 없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는 정씨에게 되물었다. 진짜로 힘든 점이 없는지.

"스물두 살 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어디 숨어있었는지 채무자들이 벌떼같이 찾아왔고 집안엔 빨간딱지들이 붙어있었죠. 저와 동생은 재산 한 푼 못 받고 상속 포기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것보다 힘들면 인간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항상 생각하면서 버텼어요. 동생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며 3년을 살다 대학 3학년이던 스물다섯 나이에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어요. 아내는 저에게 구원과도 같았죠."

20대 초반 극한 바닥을 치고 올라왔기에 지금의 그는 매일 하루하루가 즐겁다. 어딜 가서 누굴 만나든 행복하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의 근원에는 행복이 자리잡고 있다. 생각 정리 기술, 그림 그리는 것 모두 그 자신이 행복하기 위한 일이다. 자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란다는 정씨는 1인기업에 도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2가지를 조언했다.

"1인기업이든 직장인이든 중요한 것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라고 봅니다. 조직 안에서 익힌 기술을 갖고 조직 밖에 나와서도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렇게 만들어낸 가치가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것인가 이 2가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일단 나와서 만들면 된다고 하는데 굉장히 무모한 생각입니다. 대기업이 항공모함이라면 15~20년 후에는 내려야 하는데 배 위에 타고 있을 때 새로운 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가 말하는 배 안에서 '새로운 배'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1인기업가 상당수가 내가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증명하기 위해 책을 씁니다. 조직 안에 있을 때 책을 한 권 정도 써보는 게 좋습니다. 하루 1시간씩 1년 300시간만 투자하면 가능합니다. '1만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지만 저는 5년 동안 1800시간을 그림에 투자했습니다. 앞으로 동화작가가 되는 것이 꿈인데 동화책을 2~3권 펴내고 나면 동화작가를 위한 수업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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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겨울 부산위즈돔 상상브릿지 프로그램 강의하는 정진호씨. ⓒ 정진호


#1인기업 #SK컴즈 #야후코리아 #마인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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