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좋아야 두 개... '별' 볼 일 없는 세상

[빛 공해①] 인공조명에 가려진 별을 찾아서

등록 2016.07.23 20:21수정 2016.07.2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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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남쪽 하늘에는 가운데 붉은색으로 밝게 빛나는 화성과 그 아래로 ‘S자’ 모양의 전갈자리가 나타난다. ⓒ 박경배 ⓒ 박경배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밤,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에서 별을 볼 수 있다면 외롭지 않을 것이다. 천문학자 이명현은 "사람이 별을 보며 힘을 얻는 이유는 별의 소멸과 생성 과정에서 만들어진 탄소, 수소가 사람의 몸을 이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별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아마추어 천문동호회 '별하늘지기'에서는 4만 명 이상의 회원이 관측소 정보를 교환하고 밤하늘 사진을 공유한다. 인공조명에 가려져 관측하기 어려운 별을 보려고 전국 천문대로 관람객이 모인다.

지난해 10월 경상북도 영양군 반딧불이생태공원이 미국 비영리 민간단체 국제밤하늘협회(IDA: International Dark-Sky Association)에 의해 아시아 최초로 '국제밤하늘보호공원'에 지정됐다. IDA 기준에 맞춰 불빛이 땅으로만 향하는 가로등으로 야간 조명을 바꾼 이 생태공원에서는 은하수, 유성 등을 맨눈으로 볼 수 있다.

반딧불이생태공원은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는 영양읍내에서 약 30킬로미터(km)거리에 있는데, 대중교통 수단이 없어 자가용 승용차 등을 이용해야 한다. <단비뉴스> 환경팀은 지난달 10일 생태공원 내 천문대를 찾아 전국 각지에서 온 관람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어디서 보아도 하나의 하늘이고 같은 별인데, 굳이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무엇인지.

잊고 있던 밤하늘이 펼쳐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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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대 돔이 열리자 구름이 흐르는 하늘 사이로 별들의 무리가 나타났다. ⓒ 박경배


저녁 9시쯤 천문대의 둥그런 지붕, 돔이 열렸다. 계곡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관람객의 탄성이 합창단의 화음처럼 어우러졌다. 가족, 연인 등과 함께 온 10여 명의 관람객은 '헉~'하는 감탄사를 내뱉은 뒤 말을 잃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소리로 만난 하늘이 시야에 뚜렷하게 잡힌다. 큰곰자리 꼬리에 해당하는 북두칠성을 기준으로 북쪽 하늘이 보인다.

천문대의 박제훈(28) 연구사는 여름철 남쪽 하늘에 보이는 전갈자리를 가리키며 "전갈의 꼬리는 지금 산자락에 가려져 있다"며 "새벽이 다가오면 서서히 하늘로 올라온다"고 설명했다. 전갈자리 심장에 해당하는 붉은 별 '안타레스(Antares)'와 화성이 뚜렷하게 보였다. IDA에 의해 최고 등급인 '골드' 하늘로 지정된 곳은 전 세계 22곳으로 대부분 마을과 100km 넘게 떨어진 사막 지역인데, 영양 반딧불이생태공원은 '실버' 등급에 속한다.


"별은 어느 하늘에나 똑같이 있어요. 빛 때문에 못 보는 것 뿐이죠."

5년 차인 박 연구사는 어렸을 때부터 별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충북 청주에서 자라 천문학을 전공한 뒤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도시가 워낙 밝기도 하고 사는 게 바쁘다 보니까 보통 땅만 보고 살지, 하늘을 보며 살진 않잖아요. 하늘을 보면서 여유를 가지면 생각을 다잡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별이 많이 보이면 아이들과 얘깃거리가 될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요."

지난 2005년 영양 반딧불이천문대가 개관한 이래로 1년에 3만 명 정도의 관람객이 찾는다고 한다. 특히 지난해 10월 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된 이후엔 방문객이 더욱 늘고 있다. 박 연구원은 사람들이 이런 시골까지 와서 별을 보는 이유를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기 때문'이라고 꼽았다.

도시에서 바쁘게 사는 현대인은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조차 없다. 별을 보며 마음의 여유를 찾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때 바쁜 일상도 견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 연구사는 "밤하늘을 보호하여 어디서든 별을 볼 수 있게 된다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옛날을 추억하고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깨끗한 밤하늘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파

"(별을 볼 수 있는) 어두운 밤하늘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변하는 거 같아요. (사람에 대한) 혐오증이 생기기도 하고요. 밤의 여러 가지 매력적인 부분 중 하나가 별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젊은 친구들에게 밤의 의미가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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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흘러가는 별똥별. 시인 강은교는 ‘밤새도록 꿈꾸는 너 때문에 밤하늘에 긴 금이 갔다’고 노래했다. ⓒ 윤연정 ⓒ 윤연정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초등학생 자녀 둘을 데리고 온 김희식(42)씨는 "밤이 힐링할 공간이자 시간인데 요즘엔 인공조명이나 공부, 일 등 바쁜 사회생활로 그렇지 못하다"고 걱정했다. 그는 "빛 공해가 제일 없는 곳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분당의) 정자역 주변에는 빛이 너무 밝아서 재수 좋아야 밤하늘에 별 두 개 정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아내 최윤영(38)씨는 "물론 빛 공해가 제일 큰 요소겠지만 기후오염 등 여러 문제가 겹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양군 주민들은 밤하늘보호공원이 지정된 후 협의회를 꾸렸다. 주민 오십 여명으로 구성된 협의회는 지난 2월부터 두 달에 한 번씩 천문대를 찾아 밤하늘 관련 영상을 보고 별자리와 행성을 관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성숙현(54) 주민협의회장은 "밤하늘과 별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있다"며 "밤하늘을 깨끗하게 보존해서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방에서도 보기 어려워진 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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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시의 남쪽 하늘. 가로등과 상점 등 도심의 인공조명과 깨끗하지 못한 대기로 인해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 ⓒ 박경배, 윤연정 ⓒ 박경배, 윤연정


"서울에서는 절대 별 하나 못 봐요. 그냥 달 보면 '와! 달이다' 하지. 원래 서울에 있으면서 야경을 즐겨봤어요. 서울에서는 탁하고 짙은 하늘과 야근하는 직장인들 때문에 켜진 빌딩 불빛들을 주로 봤죠."

충북 제천에서 만난 서울토박이 박지은(19·여) 의 말이다. 대도시에서 자란 이들은 밤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 것 자체에 별 의문을 가지지 않을 만큼 이미 빛 공해에 익숙해져 있다. 바쁜 일상에 쫓겨 밤하늘을 올려다볼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하다.

제천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윤성원(47·여)씨는 "일이 바빠 별을 볼 시간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선명하게 보이던 북두칠성이 희미해진 것은 가로등과 엘이디(LED) 간판 때문"이라며 "정부가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 속에서 살아온 이들은 특히 별을 보기 어렵게 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강원도 태백시에서 공부를 위해 제천으로 온 안선미(19·여)씨는 "별을 보면 심적으로 안정이 된다"며 "인간의 편리를 위해 (인공조명으로) 밤을 밝히다 보니 별을 볼 수 없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볼 권리가 있다"며 "빛 공해를 줄이기 위해서 개개인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두천에서 제천으로 잠수부 일을 하러 왔다는 주성환(43)씨는 "별을 바라보면 동심으로 돌아간다"며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아이들에게 밤하늘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반면 밤거리의 안전을 위해 더 환한 조명이 필요하지, 별을 보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천에서 제천에 있는 학교로 진학한 김세린(19·여)씨는 "요즘 성폭행 사건도 많고, 위험해서 밝은 곳을 찾아다니려고 한다"며 야간 조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치안을 위해 가로등을 늘리더라도 불빛이 위로 퍼지지 않고 아래쪽만 밝게 비추는 방법이 있는데, 이를 아는 시민들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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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공해’ 및 ‘여름철 별자리’를 주제로 한 영상을 시청하기 위해 천문대 안의 천체투영실을 찾은 밤하늘보호공원 주민협의회.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성숙현 주민협의회장. ⓒ 박경배 ⓒ 박경배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별밤 #빛 공해 #인공조명 #반딧불이 천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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