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켓몬' 하러 속초마을 가기 전에, 잠깐만요

회사 월차 써가며 속초로 향하는 이유, '추억팔이' 아니다

등록 2016.07.23 20:38수정 2016.07.2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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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미국, 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 출시된 증강현실(AR) 스마트폰 게임 ‘포켓몬 고’ 열풍이 거셉니다. ⓒ 나이안틱


게임 하나가 전 세계를 들쑤시며 뒤집어놓고 있다. 범인은 바로 미국의 회사 나이앤틱에서 개발한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아래 고켓몬)'다. 지인에게 고켓몬의 인기를 슬쩍 귀띔해주었더니 '아직도 포켓몬스터 게임을 한단 말이야?'라는 반응을 보였다. 최근까지 출시된 모든 포켓몬스터 게임을 재미있게 플레이한 팬으로서 몹시 서운한 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포켓몬스터는 이미 어렸을 적에 즐기던 추억 속의 게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켓몬의 인기는 파이리의 불꽃만큼 뜨겁다. TV와 신문에서는 연일 고켓몬의 인기를 분석하고 신종 마약의 위험성을 설파한다. 인터넷에는 가뜩이나 욕먹을 일 많은 헬조선이 고켓몬을 플레이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더더욱 욕을 먹고 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고켓몬을 즐기고 말겠다는 포켓몬 마니아들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켓몬이 플레이 가능한 성지 속초마을(포켓몬 구버전의 시작 마을인 태초마을을 속초에 비유)로 몰려가고 있다. 속초시에는 고켓몬을 담당하는 특별부서까지 생겼다고 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고켓몬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연일 일어나고 있으니 그 파급력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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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익히 알던 추억의 스타팅 포켓몬, 이상해씨, 파이리, 꼬부기였다. '남자는 불!'을 외치며 파이리에게 몬스터볼을 던졌다 ⓒ 김정재


오랜 포켓몬 팬으로서 이렇게 대단한 게임을 놓칠 수는 없었다. 일부 지방을 제외한 국내 전 지역에서는 고켓몬을 플레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필자는 고켓몬을 설치했다. 최근에 이렇게 떨리는 순간이 있었던가! 수준 낮은 영어 실력을 동원해 튜토리얼을 겨우겨우 읽자 눈앞에 세 마리의 포켓몬이 나타났다.

우리가 익히 알던 추억의 스타팅 포켓몬, 이상해씨, 파이리, 꼬부기였다. '남자는 불!'을 외치며 파이리에게 몬스터볼을 던졌다. 포켓몬을 잡는 포켓몬 트레이너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뿌듯함이 추억 속에서 피어올라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기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화면을 보니 이게 웬걸, 필자의 캐릭터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홀로 서있었다. 전국의 모든 포켓몬 트레이너들이 이 시점에서 느꼈을 실망감과 당혹감에 애도를 표한다. 당장 국내에서 고켓몬을 플레이할 수 있게 법을 바꾸라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일개 개돼지 포켓몬 트레이너가 어쩌겠는가. 눈물을 머금고 고켓몬을 종료했다. 안녕 내 파이리, 속초에서 다시 보자!

피카츄 라이츄 파이리 꼬부기... 우리는 모두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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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에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녔던 사람들, 즉 지금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즈음 되는 사람들이라면 포켓몬에 대한 추억을 산더미만큼 가지고 있을 것이다. ⓒ Flickr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에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녔던 사람들, 즉 지금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즈음 되는 사람들이라면 포켓몬에 대한 추억을 산더미만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첫 포켓몬 게임인 <포켓몬스터 레드·그린>은 1996년에 일본에서 처음 발매되었다고 하지만 한국어로는 플레이해본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휴대용 게임기를 가지고 있던 아이들이 별로 없었고 포켓몬스터의 존재를 모르고 있던 아이들이 상당수였다. 하지만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상황은 급변했다.

필자는 아직도 포켓몬 애니메이션의 1화의 감동을 기억한다. 주인공 지우가 피카츄와 만나는 내용이었는데 어찌 그리 재미있던지. 포켓몬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는 아이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 정도로 포켓몬 애니메이션의 인기는 대단했다.

'피카츄, 라이츄, 파이리, 꼬부기~'로 시작되는 포켓몬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는 필자 또래라면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포켓몬스터는 꿈과 희망이었고 아이들의 장래희망은 포켓몬 마스터였다. 포켓몬스터가 방영하는 날은 거리에 공놀이하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집에서 포켓몬스터를 보고 있으니 아이가 있을 리가.

애니메이션의 인기에 힘입어 포켓몬 빵도 출시되었다. 당시 빵 속에는 '띠부띠부씰'이라고 하는 포켓몬 스티커가 붙어있었는데 151마리의 포켓몬을 모두 모으는 것이 아이들의 소원이었다. 책받침이나 공책 뒷면, 필통 뚜껑에 띠부띠부씰을 모으고 친구들과 교환하는 것 또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스티커가 목적이고 빵은 뒷전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빵을 잔뜩 사서 스티커만 모으고 빵을 버리는 아이나 슈퍼에서 빵을 몰래 뜯어 스티커만 가져가다 걸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필자도 파란색 책받침에 띠부띠부씰을 모았다. 희귀한 포켓몬 한두 마리만 모으면 151마리를 다 모을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머리가 커가며 수집에 흥미를 잃자, 그 책받침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지금에 와서는 굉장히 아쉬운 일이다.

국내에서는 애니메이션이 시작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포켓몬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었다. <포켓몬스터 금·은>, 혹은 골드·실버 버전이라고 부르는 작품이었다. 포켓몬스터를 플레이할 수 있는 휴대용 게임기는 게임보이라고 불렸는데 당시에는 꽤 비싼 가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소위 '노가다'로 불리며 기피할 레벨업을 위한 반복행위도 그 당시에는 너무나 재미있었다. 아마 포켓몬 게임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웠던 듯하다.

중학교까지도 포켓몬 게임을 즐기고 애니메이션을 보는 친구들은 많았고 <포켓몬스터 스페셜>이라는 만화책까지 나와서 포켓몬의 인기는 꾸준히 유지되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이 나이를 먹어가며 다른 취미를 찾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포켓몬의 인기는 점점 식어갔다.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하는 게임들 사이에서 구식 게임보이의 그래픽은 경쟁이 되지 않았다. 포켓몬 스티커를 모으는 아이들도 점점 사라졌다. 친구들은 만화를 보지 않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동네 슈퍼의 포켓몬 빵이 있던 자리에는 케로로 빵이 놓여있었다.

속초에 가는 게 아니라 '속초마을'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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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속초 해수욕장 입구의 한 건물 뒷편에 포켓몬 GO 게이머들이 자리를 깔고 게임을 하고 있다. 이 자리는 4개의 포켓스탑이 겹치는 자리라 게이머들 사이에서 '명당'으로 꼽힌다. ⓒ 김동환


포켓몬은 가상의 존재였다. 아무리 포켓몬을 사랑하고 즐긴다고 해도 우리의 현실에 포켓몬은 없었다. 하지만 고켓몬은 증강현실 기술로 그 구분을 무너뜨렸다. 피카츄를 좋아하던 죽은 동생의 무덤에서 피카츄가 나왔다거나 파이리를 좋아하던 팬이 자신의 인형 틈에서 파이리를 발견했다는 사건 등은 포켓몬을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준다. 만날 수 없던 존재를 내 주변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참 매력적이다. 비록 반쪽짜리 현실이지만 우리에겐 그 반쪽이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포켓몬 시리즈의 장수 비결과 고켓몬의 흥행 요인을 분석하자는 것이 아니다. 고켓몬의 인기는 단순한 추억팔이 덕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포켓몬 시리즈는 시대와 연령, 지역을 불문하고 항상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다니는 중학생도,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우리 또래도,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도 포켓몬을 쉽고 즐겁게 즐길 수 있다. 포켓몬은 추억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다.

우리는 왜 속초로 가는가? 회사에 월차를 내고, 학교를 조퇴해가며 속초를 찾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쯤에서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줄거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연히 포켓몬을 얻게 된 신참내기 포켓몬 트레이너가 자신의 친구 포켓몬들과 함께 모험을 하며 수많은 역경을 딛고 최고의 포켓몬 마스터가 되는 것이다.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다. 마치 고켓몬을 즐기는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하다.

고켓몬을 통해 우리는 포켓몬스터 세계 속의 주인공이 된다. 포켓몬스터 세계에는 꿈과 희망, 모험, 열정이 있다. 치열한 현실의 삶 속에서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가치들이다.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떠나는 고켓몬의 여행에는 그 가치들이 살아있다. 우리는 실존주의적 물음을 얻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실존에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기 위해 가는 것이다.  우리는 속초에 가지 않는다. 우리는 속초마을에 간다.
#포켓몬고 #포켓몬 #속초마을 #속초 #피카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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