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 불안", 맞는 말이지만

[주장] 사실상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 임기... 의무 불성실하면 국민이 흔들 수도

등록 2016.07.23 16:40수정 2016.07.2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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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도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국민을 지켜내기 위해 해야할 것은 최선을 다해 지켜낼 것이다."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가지 마시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 가시기 바란다."

지난 21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했던 발언이다. 청와대는 요즈음 안팎으로 시끄러울 것 같다. 그 안의 분위기를 알 수 없으니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정국에 분위기가 좋을 수 없다.

우선 사드(THAAD) 문제가 있다. 갑작스럽게 발표된 사드 배치에 중국이 발끈했고, 역시나 갑작스럽게 발표된 배치 지역에 성주 주민들이 발끈했다. 수차례 정상회담을 가지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상당히 우호적이었던 중국. 그리고 지난 대선 박근혜 대통령에게 86%의 표를 몰아줬던 성주. 이 미묘한 관계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도 있다. 구속된 진경준 검사장과 유사한 비리가 우 수석에게서 포착되고 있다. 단순한 비리를 넘어, 정부 권력기관 도처에 '우병우 사단'이 포진해 있어 '문고리 권력'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새누리당 안의 갈등도 빼놓을 수 없다. 친박 핵심 인사였던 윤상현, 최경환 의원이 지난 총선 공천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공개됐다. 친박계 전체가 큰 타격을 입었다. 다가오는 전당대회에선 비박계의 낙승이 예견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계산도 복잡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꺼낸 발언이었다.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 흔들릴 것 같은 상황에서, 흔들려야 마땅한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흔들리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지는 것일까.

대통령은 국민 다수에 의해 선택된 사람이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임된 사람이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51.6%라는 지지율을 등에 업고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박근혜 대통령 선출 당시, 투표율은 아주 오랜만에 반등해 75%를 넘겼다.


유권자의 4분의 3이 투표한 선거에서, 절반 이상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대통령. 이 과정에서 어떤 부정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정통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전임 대통령과 비교해 보면 훨씬 명확해진다. 대통령직선제 실시 이래로, 과반수 득표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일하다.

노태우 대통령은 36%라는 초라한 지지율로 당선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위와의 격차를 20% 넘게 벌리는 놀라운 결과를 냈지만, 투표율은 60%선에 그쳤다. 박근혜 대통령은 투표율과 지지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당선자였다.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끌어갈 국정을 신뢰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권리가 있다. 본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국정을 이끌어나가고, 때로 그것이 반대와 비판에 부딪히더라도 소신껏 국가를 이끌어나갈 권리가 있다.

탄핵 소추나 국민투표와 같은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제한되지 않는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권한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51.6%의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바로 그 권한을 제공했다.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고, 사드를 배치하고,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다가 마지막에는 "고심 끝에 해체" 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잦은 해외 순방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고, 국회를 무시하는 태도가 불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얼마든지 비판을 할 수 있고,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집회를 할 수 있다. 국민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박근혜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리도 있다. 법률이 제한하는 범위 안에서, 원하는 방식대로 국가를 이끌어나갈 권리가 대통령에겐 있다. 헌법과 법률이 규정하는 선, 그 선 안의 일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게 위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선을 넘지 않는 한, 자유로이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을 지닌다. 따라서 사드 배치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다. 물론 헌법상 필요한 사안이라면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대통령은 행정 각부에 대한 통솔권을 지닌다. 따라서 특정 조직을 해체하고 개편할 수 있다.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이다. 따라서 교과서의 발행 체제를 개편할 수 있다.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한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해외를 순방할 수도 있다.

대통령은 법률에 대한 거부권을 가진다. 따라서 국회에서 제출한 법을 폐기할 수 있다. 국회가 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헌법에 규정된 바에 따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된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거부권은 무력화된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임의로 박탈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한 표의 가치가 소중한 것이고, 그렇기에 유권자의 책임이 중대한 것이다.

대통령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때로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의 뜻을 표하더라도,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절차에 따른 규제가 아니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소신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 정당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의견이 대통령을 함부로 흔들면, 원칙이 설 땅이 사라진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자리가 무거운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자리가 무거운 것은 꼭 그 자리가 가지고 있는 권리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은 그 권리만큼이나 막중한 의무를 지고 있다.

민주주의적 절차에 따라 선임된 대통령은, 민주주의적 원칙을 수호할 의무를 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식장에서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언했으며, 그 헌법은 첫머리부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선언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무엇인가. 합의와 설득이다. 대화와 소통이다. 언급했듯 박근혜 대통령은 원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 때로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사안이라도, 대통령의 권한 안에서 밀어붙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대화와 소통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이 져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몇 번이나 기자회견을 했는가? 그 중에 연출되지 않은, 기자들의 '자유로운' 질문을 받은 것은 몇 번이나 되는가? 국민들의 의견을 직접 듣겠다고 시도한 일은 있는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인 국민은 어떻게 대우했는가. 공권력의 진압 과정에서 쓰러져 중태에 빠진 농민은 기억이나 하고 있는가. 국가의 부재를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들어본 적 있는가. 소통과 합의의 기술이 없다면, 대통령은 차치하고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적 개인으로서부터 자격 미달이다.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는 것 역시 대통령으로서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다. 헌법 66조는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사례도 많다. 개성공단 폐쇄가 대표적이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은, 개성공단의 가동 중지를 위해서는 통일부 장관이 관계 행정기관장과 협의해서 결정해야 하고, 반드시 청문을 실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개성공단 가동 중지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으며, 청문도 실시되지 않았다.

지난 총선 때는 대구를 포함한 각지를 돌아다니며 사실상 지원유세에 나섰던 박근혜 대통령이다. 7.30 재보궐 선거 당시에는 나경원 후보에게 "꼭 승리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선거법을 넘어 헌법 위반 사항이며, 탄핵까지 가능한 사안이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도 이 사안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소추한 바 있지 않았던가.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고 있다는 지점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은 헌법상 권리와 의무가 보장되어 있는 헌법기관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행정권을 통솔하며, 국회가 통솔하고 있는 입법권과는 완전히 별개의 권력이다. 삼권분립의 원칙은 민주주의 국가 운영의 기초다. 대통령은 국회를 존중하고 협력하며 국가를 운영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는 이러한 기초적인 내용도 잘 포착되지 않는다. 국회법 파동, 유승민 원내대표 축출, 직권상정을 위한 무례한 국회의장 압박, 꾸준한 국회 비판과 '세비 반납' 요구까지. 입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문고리 권력' 논란은 또 어떤가. 대통령은 본인과 함께 공적인 일을 담당하는 참모를 투명하게 공개할 의무가 있다.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이력을 밟아 왔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장관이나 총리에 대한 청문회가 괜히 실시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들을 참모로 이용하고 있다는 증언은 집권 초기부터 쏟아졌다. 직접 기초연금 공약을 설계한 진영 전 복지부 장관은, 제대로 된 설명도 없는 공약 파기에 결국 사퇴해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왔다.

'7인회 논란'이나 '정윤회 파문',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 논란' 등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참모진이 내각 위에 군림한다는 의혹이 임기 내내 이어졌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 역시 '문고리 권력'이라는 논란이 피어나고 있다.

합법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통해 선임되지 않은 이들이 국정 운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은, 정부의 운영 메커니즘이 원칙과 신뢰와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박근혜 대통령은 민주주의 사회가 합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민주주의 사회가 합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의무 역시 충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반대하는 시민들에게, 대화보다는 차벽을 앞세우는 정부. 소통의 의무는커녕 집회에 나선 국민을 폭행하는 정부. 최소한의 헌법과 법률마저 어기는 정부, 그리고 삼권분립의 원칙조차 지키지 못하는 정부. 박근혜 대통령은 바로 이런 정부를 이끌고 있다.

아무런 의무의 이행 없이 권리만을 주장하는 정부가, 국민 앞에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권리에 정당성이 존재한다고 믿는가.

그런 의미에서라면, 대통령은 흔들려야 한다. 헌법과 법률에 의해 흔들려야 한다. 정당한 절차에 의해 흔들려야 한다. 민주주의적 원칙에 의해 흔들려야 한다. 권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무에 의해서 흔들려야 한다.

제대로 흔들려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가진 대부분의 문제는 어디서 흔들려야 하고, 어디서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구분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3년 반 정도 흘렀다.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는 2018년 2월 24일까지, 1년 반 정도의 기간이 남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임덕이 시작될 것이고,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 사실상 대통령으로서 어떤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벅차다. 박근혜 대통령 사실상의 임기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찌됐든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통솔하는 자리에 서 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박근혜 정부가 국가를 잘 꾸려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제 남은 짧은 임기 동안이라도, 의무와 권리를 함께 지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대통령이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방식으로 흔들릴 수 있기를 바란다.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
"국가와 국민을 지켜내기 위해 해야할 것은 최선을 다해 지켜낼 것이다."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가지 마시라."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그 권리와 의무의 무게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제대로 흔들리지 못한다면, 가장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소명의 시간"이 오기 전에, "국가와 국민을 지켜내기 위해" 국민 스스로 "대통령을 흔들"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블로그 <비더슈탄트, 세상을 읽다>와 팀블로그 <이승로그>에 게재됩니다. 딴지일보 독투불패 게시판에도 올라가며, <이승로그>에 올라간 글은 <직썰>에 중복 게재될 수도 있습니다.
#청와대 #삼권분립 #헌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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