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기소는 어렵지만, 전세보증금 출처 밝혀야

[이슈분석] '안기부 X-파일' 처럼 수사 초점 흐려질 수도

등록 2016.07.22 21:53수정 2016.07.22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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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동영상이 위조나 변조됐을 가능성에 대해 영상전문 대학교수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 <뉴스타파> 갈무리


<뉴스타파>가 보도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성매매 의혹 동영상으로 처벌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이 회장이 성매매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22일 내사 착수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동영상을 보면 옷을 다 입고 있다. 지금 단계에선 성매매로 단정하긴 어렵다"거나 "현장에서 돈 거래가 입증돼야 한다"는 등 현재까지 <뉴스타파> 보도 동영상에 나온 상황을 성매매로 단정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뉴스타파>의 21일 보도에 등장한 내용은 입수 동영상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뉴스타파에 제공된 영상은 8시간 분량으로 알려졌다. <뉴스타파> 관계자도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이미 보도한 내용은 선정성 시비를 피하기 위해 낮은 수위의 장면 위주로 구성됐다"고 말했다.

추가로 공개될 동영상을 통해 성매매 정황이 명확해지면 수사 착수의 요건은 갖춰진다. 성매매 의혹 영상이 촬영된 시점은 2011년 12월 11일에서 2013년 6월 3일까지 다섯 차례이고, 성매매 처벌법의 공소시효는 5년이라 수사하지 않을 명분은 없다. 자영업을 하는 한 시민이 22일 이 회장의 성매매 의혹을 규명해 처벌해 달라는 고발장을 대검찰청에 접수, 검찰도 수사의무를 지게 된 상황이다.

하지만 성매수 혐의를 받는 당사자인 이 회장 본인 조사가 어렵다. 이 회장은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현재까지도 의식이 없는 상태라고 전해졌다. 이 회장 본인 조사 없이 동영상을 비롯한 증거나 증인을 통해 혐의를 입증한다 해도 기소하기가 쉽지 않다.   

성매매 대가, 빌라 전세보증금 출처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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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뉴스타파>가 공개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성매매 의혹 동영상의 일부분. 영상 속 이건희 회장이 여성들에게 뭔가를 나눠주고 있다. ⓒ <뉴스타파> 갈무리


정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할 부분은 성매매가 이뤄진 논현동 고급빌라를 둘러싼 의혹이다. 2011년 12월과 2012년 3월 찍힌 영상이 이 빌라 내에서 촬영됐다.


이 빌라는 김인 삼성SDS 고문 명의로 13억 원에 전세계약돼 이 회장의 거처로 제공됐다. 김 고문은 '삼성SDS가 내 명의로 빌렸을 것'이라며 전세계약 사실을 몰랐다고 했지만, 이후 자신이 개인적으로 전세를 냈다고 말을 바꿨다. 

전세계약 자체를 몰랐다는 김 고문의 최초 답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성그룹이 김 고문의 명의를 이용해 이 회장의 거처를 마련했고 전세 보증금도 김 고문이 아니라 삼성그룹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돈으로 이 빌라를 빌렸다면 이 회장에 횡령 혐의가 추가된다. 반대로 삼성그룹의 회계장부에 지출내역이 기재되지 않은 돈이 쓰였다면 비자금 의혹이 제기된다. 이도 아니고, 이 회장 개인의 돈을 김 고문이 운용하면서 김 고문 이름으로 빌라를 전세냈다면 금융실명제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전세보증금뿐 아니라 회당 500만 원씩 지급된 성매매 대가도 출처가 어디냐에 따라 똑같은 혐의가 추가될 수 있다. 

참여연대는 이날 "만일 계열회사 임직원이 이 회장의 성매수를 도왔다면, 이는 총수의 개인적인 성욕을 채우기 위해 계열기업의 자산과 인력을 유용한 것으로, 성매매죄의 공범이나 업무상 배임죄가 문제될 뿐 아니라, 총수일가의 '과도한 사적편익 편취' 비민주적 재벌 지배구조의 맨 얼굴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동영상 촬영 공갈범에 수사 초점 맞춰질 수도

수사 대상은 또 있다. 성매매 의혹 동영상을 공모하고 실행한 이들이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성매매 종사 여성과 선아무개·이아무개씨가 공모해 동영상을 찍었고, 이들은 삼성 측에 동영상을 대가로 거액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을 대상으로는 공갈 혐의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동영상 사건의 수사 초점이 흐려질 우려가 제기된다. 국내 최고 재벌의 성매매·횡령 의혹보다 공갈범의 추적·검거가 훨씬 용이하기도 하고, 수사당국은 삼성그룹 문제와 관련한 중대사건을 처리하면서 사건의 초점을 틀어버린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안전기획부가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학수 삼성그룹 사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주 간의 대화를 불법도청한 '안기부 X 파일'이 폭로됐다. 검찰은 불법 대선자금 제공을 공모한 이들을 공소시효 만료와 불법 증거라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았고, 이 내용을 보도한 기자들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이후 X파일 내 삼성의 로비를 받았다고 언급된 검사들의 명단을 공개한 노회찬 당시 진보신당 국회의원도 통비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 #X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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